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개혁주의 신학이 문제인가, 목사의 미숙함이 문제인가?

장재훈목사(군산)

by 김경호 진실 2011. 3. 19. 15:48

본문

개혁주의 신학이 문제인가,

개혁주의 목회방식을 적용하는 목사의 미숙함이 문제인가?

 

장재훈 목사(군산 내흥교회)

 

 

작년 (합신)총동문회 수련회 중 포럼에서 개혁주의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여러 명의 국내외 패널 목사들이 매우 강도 높게 공격했다. 개혁주의가 마치 현대 목회에 별로 도움도 안 되고 교회부흥과 성장에 영양가가 없는 신학이나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목회방식이나 내용처럼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 일부는 긍정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동문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패널들의 이런 저런 말들을 들으면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그냥 지나갔다.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개혁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교회부흥과 성장 때문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개혁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부흥과 성장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말하고 싶다. 성장이나 부흥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교회운동을 하기 위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짝한 줄로 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회부흥과 성장이 더디거나 답보 상태에 있다고 하여 다른 신학사상과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거나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요 자본주의 사고에 물든 자요 성장제일주의 사고에 중독된 자요 상대주의 가치관에 사로잡힌 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의 출처나 기준이나 근거도 신뢰할 수가 없다. 교회부흥과 성장이 더디거나 답보상태에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 근거이며 누가 만든 근거와 기준인가? 그 기준과 근거가 성경적인 것인가? 아니면 가시적이거나 외형적으로 부흥하는 일부 교회를 기준으로 한 것인가? 만일 외형적인 것이나 다른 신학과 프로그램 등의 상대적인 것이 바른 것이라는 기준과 근거라면 성경의 가치와 사상에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상대적인 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평가를 하며, 불완전한 사람이 정확무오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물이나 동물이나 나무나 사람이나 교회나 신학이나 각기 다르며 외형적인 크기나 규모의 획일적인 잣대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잊고 부흥과 성장의 외형적이고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열매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잘잘못을 평가한다면 성경에 반하는 매우 잘못된 시각과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가 끝날 때까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서 평가하되 그것도 성경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를 해야 정확하다. 아직 목회경기도 끝나지 않고 경기 중인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확정적인 결과나 판단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만물은 성장이 빠른 것도 있고 더딘 것도 있고 어느 정도 되면 답보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외적 부흥과 성장과 얼마동안의 호황에만 초점을 맞추어 판단하고 이에 부응하지 않는 목사나 교회나 사람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결론이며 코미디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일을 해도 동일한 결과를 맺지 못하는 것은 상식이다. 비근한 예로 달리기나 마라톤 경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동일한 출발 선상에서 동일하게 출발해도 그 결과는 각기 다 다르다. 누구는 기록이 좋고 누구는 기록이 저조할 수 있다. 기록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 연습이나 훈련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거나 선수 자체가 문제가 있으니 선수를 바꾸거나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다. 경기 결과에 대하여 분석하고 평가하고 반성하고 분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단지 결과만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은 옳지 않다. 결과가 좋든지 결과가 나쁘든지 항상 차이가 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틀린 것이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기를 잘하고도 결과가 나쁠 수가 있고 경기를 잘 못했는데도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가? 결과만을 가지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모든 판단을 결과 지상주의로 접근하고 결정한다면 학원이나 학교에 다니면서도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은 모두 용도폐기 해야 한다. 또한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며 사는 데도 불구하고 부자로 살지 못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능한 사람들로 판단하여 모두 폐기처분해야 한다. 말과 주장이라고 해서 다 옳은 말이나 주장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상식과 일반 정서에 맞아야 하고 그리고 성경 사상과 가치관에 맞아야 바른 말이고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기준과 상대적인 가치관과 결과주의에 따라 잘잘못을 판단하는 목사가 있다면 성숙한 목사나 정상적인 목사가 아니라 변질되고 세속적인 의식에 사로잡힌 목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목사는 교회사역을 그만 두고 일반 회사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코드가 맞는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세상과 회사나 기업은 상대주의와 결과 중심적인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교회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목사라고 한다면 주관적이고 세속적인 상대평가나 가치관으로 말하거나 기업적이고 자본주의나 시장만능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서 그리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시종일관 성경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말과 주장을 해야 맞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이나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공격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구분하고 가려서 해야 한다. 개혁주의의 무엇이 잘못인지 아니면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목사의 적용과 사역의 미숙함에서 나온 잘못인지를 인지하고 지적하고 비판해야 옳다. 명확하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막연한 지적과 공격은 설득력이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이렇다. 매일 같이 자동차 사고로 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사고의 95% 이상이 운전자 과실이라고 한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하여 비판과 지적과 공격을 하려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자동차 자체가 문제 있는지 아니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 미숙이나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문제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판단하여 자동차나 운전자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 황당한 주장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자동차가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운전자가 문제인지를 평가해서 개선하면 된다. 무슨 말인가? 개혁주의라는 자동차 자체가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목사의 목회적용의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고 파악해서 그에 걸맞게 대안을 내고 개선을 해야 옳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개혁주의 신학이나 개혁주의로 목회하는 것은 교회부흥과 성장과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른 신학이나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목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즉 개혁주의 신학 자체가 성경적으로 볼 때 하자가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하여 지적하고 고치면 될 것이고, 개혁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목사가 교회사역에 적용을 잘못하거나 미숙하면 그 부분을 파악하고 지적하고 개선하고 지도하고 보완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에 맞게 목회를 하는 목사와 교회 중에는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도 있고 더디게 성장하거나 답보 상태에 있는 교회도 있다. 다른 교단이나 신학을 추구하고 마케팅적인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사용하는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드시 어떤 방식과 방법으로만 해야 교회가 부흥되고 전도가 잘된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그런즉 개혁주의 사상으로 목회하는 목사나 교회 전체를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 가장 가깝다고 믿는 개혁주의 신학 사상을 추구하는 교단에 있으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목회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목사가 있다면 자기와 코드가 맞는 곳을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기 아내나 남편과 살면서 자기 남편이나 아내가 무능하고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하여 다른 세련된 이성을 들먹이고 말하고 찾고 받아들이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 바라기는 앞으로라도 개혁주의를 말하면 짜증을 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전체를 매도하지 말고 성경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잘못하고 있는 교회와 목사를 지적하고 비판하되 구체적으로 꾸중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이고 막연하게 전체를 비판이나 지적을 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개혁주의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자라고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비판이나 지적하고 싶으면 오해받지 않도록 잘못된 면에 있어서 구체적이고 정확하고 예리한 비판과 지적을 하되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인 평가가 아닌 성경에 근거하고 그에 따른 대안까지 제시하면서 해야 진정성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기독교개혁신보>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