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갈구하는 부르짖음(로버트 맥체인)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6)
(Wilt thou not revive us again: that thy people may rejoice in thee?)
이 기도가 드려진 때를 살피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자비의 때였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주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이끄신 때였고, 많은 죄악을 덮으신 때였습니다.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이제 그들은 자비의 또 다른 방문의 필요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구해야 할 것
"우리를 다시 살리사," 또는 글자 그대로, 돌아오셔서 우리를 다시 살게 만드소서.
이것은 약간의 생명을 받은 자들, 그러나 더 많은 필요로 느끼는 자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숨겨져 있는, 신적 생명의 탁월성과 달콤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갈망했습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당면한 논의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도록."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이 일을 행하시도록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그 기쁨이 주님 안에서 그러하도록 -- 그들의 의로우신 주님 안에서 -- 주님 안에서 그들이 강건해 지도록.
1.언제 이 기도가 필요한가
1)타락과 배교의 때에
에베소서처럼,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첫사랑을 잃고, 죄악이 가득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져가는 많은 시기들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가깝고도 친근한 교제를 상실합니다. 그들은 가장 거룩한 분과 관계없이 행하며,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커튼을 드리우고 멀리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은밀한 기도에서 누리는 열정, 달콤함, 충만함을 상실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선명한 이해(발견)들을 상실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나 희미하고 막연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그리스도의 선하신 치유의 향기 -- 그리스도의 겉옷을 붙드는 것을 상실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찾으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 위에 붙들어 두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빈약한 상태로 그들의 영혼에 거하십니다. 생수가 그들 안에서 거의 메마른 것처럼 보입니다. 영혼은 메마르고 무익합니다. 타락과 부패는 강하고 : 은혜는 매우 연약합니다.
형제애는 점점 사라집니다. 합심기도는 무시됩니다. 작은 모임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회심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동정심은 미미하며 냉랭합니다. 목전에 행해진 죄 조차도 책망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아마 영혼은 죄에 빠져들고, 돌이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거하며, 광야 거친 곳에서 유숙합니다.
오! 바로 이런 지경은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위험의 시기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당신의 영혼에 찾아와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단코 돌아오도록 설득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기도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신자의 영혼은 매순간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더 많은 은혜를 필요로 하는 시기들이 있습니다. 마치 몸이 지속적으로 음식을 필요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다른 어떤 때보다 더 음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모든 힘이 발휘되어야 할 때, 즉 육체적으로 엄청난 수고를 들여야 할 때가 그러할 때입니다.
때때로 신자들의 영혼은 뜨거운 핍박에 노출된다. 비난이 마치 머리 위에 작렬하는 태양처럼 두들겨 마음을 부수어 놓는다. "나의 사랑 때문에 그들의 나의 대적자들이 된다." 종종 우리를 비난하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일 때, 우리를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한다. 영혼은 죽음을 준비하고 침체 속으로 깊이 침몰해 들어간다.
또 때로 아첨이 우리 영혼을 유혹한다. 세상이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는 자랑과 허망함에 유혹된다. 이것은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종종 사탄은 우리 안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때까지 가공할만한 부패성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쓴다. 오? 이 글을 읽고 있는 자 중에서 유혹 가운데 있는 영혼이 있나요?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당신은 더 큰 평안을 필요로 합니다. 사단이 은혜의 불 위에 물을 끼얻을 때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 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부르짖음으로 호소해야 합니다.
2)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때에
“늦은 비의 때에 주님께 비를 구하라” 하나님께서 한 곳에서 그분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실 때 -- 이슬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 바로 그 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 당신의 손을 거두지 마시고 -- 우리에게 흡족한 소낙비를 주옵소서 -- 메마른 상태로 우리를 두지 마옵소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으시렵니까?"
2.누가 이러한 부흥을 필요로 하는가?
1)목회자에게 이러한 부흥이 필요합니다.
목회자들도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굳고 불신앙자들입니다.(Mark 6:14),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주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십니다.
목회자들이 가진 믿음은 모두 위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들이 주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진리를 능력 있게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이나 과거 경험으로는 능력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열적으로 설교하려고 한다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현재적으로 느끼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입안에서 그 맛을 보지 않는다면 숨겨진 만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서 샘솟지 않는다면 그 생수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 처럼, 우리는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우리는 스데반이 본 것처럼 우리의 눈으로 본 그리스도와 함께 설교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노라."
우리는 용서하시는 실제적 감각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실제적 감각으로부터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말들은 차갑고 생명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로부터 소생되는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낙심되기가 쉽습니다. 목회자들은 기준이 되는 일꾼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너무나 사모해 합니다.
오! 그리스도의 충만한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공급이 얼마나 필요한지! 사랑하는 자여, 기도하라,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이 기도가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2)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부흥이 필요합니다.
신적인 삶은 전부 위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기 전에는 누구도 아무런 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인자의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시지 않고는 당신 안에 생명은 없습니다." 이제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유지됩니다.
매순간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부터 신선한 공급물을 얻는 것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있노라." 어떤 신자들에게는 이러한 삶이 성령의 지속적인 공급으로 말미암아 유지됩니다. -- “내가 매순간 물을 부어주겠다” -- 마치 가지가 줄기로부터 받는 공급이 지속적인 것처럼.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최고의 최상의 행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조수가 넘쳐흘러 더 높이 공급되어 집니다. 가끔 그들은 지난 한 달 동안 공급받은 것 보다 많은 것을 단 하루에 얻기도 합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는 강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제때에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습니다. 여전히 이 두 경우에도 부흥의 필요는 여전합니다. 자연적인 마음은 쉽게 시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여름날 정원처럼, 물이 없으면 말라버립니다. 영혼은 희미해지고 선행을 행함에도 시들어 버립니다. 은혜는 마음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옛 마음은 항상 마르고 쇠퇴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찾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엘리야의 종이 바다너머의 작은 구름을 찾듯이 말입니다. 당신은 지속적으로 생수의 샘 가까이로 밀어붙어 나아가야 합니다. 참으로 , 구원의 우물가에 그 생수를 마시면서 누워야 합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시겠나이까?”
3)이전에 각성했던 자들도 이러한 부흥이 필요합니다.
한 방울이라도 하늘로부터 내러와 그들의 마음 위에 떨어졌을 때, 그들은 떨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소나기는 지나가고, 바위투성이의 마음은 진동하기를 멈추었습니다. 그 눈은 닫혀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입술은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 이런 상태가 슬프게도 얼마나 보편적인가요! 시온의 왕이 이 곳에서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무덤에 누웠던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가고, 이제는 죽은 영혼의 은혜 속으로 침몰해 잠겨버렸습니다. 아! 얼마나 참혹한 상태입니까! 죽은 것과 방불해 지다니, 죽음을 사모하다니, 당신의 영혼을 멸망시키다니. 이러한 자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다른 외침이 있었습니다. "깨어라, 너 잠자는 자여,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주시리라." 당신을 위해 내가 기도하는 대부분은 "여호와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결실치 못하는 무화과 나무들이 이러한 부흥이 필요합니다.
당신들의 얼마는 이 포도밭에 심기웠습니다. 당신은 태양과 소나기를 즐겼습니다. 당신은 감동되지도 않고 이 모든 각성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죽어있고, 결실하지 못하며, 회심하지 못하고 있군요.
아! 당신에게 이 기도 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보통의 시간들은 당신을 감동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훨씬 더 굳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깊고, 순전하고,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당신이 기도하며 구해야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그냥 무덤덤히 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당신들 중 많은 사람든 지금보다 더 큰 충격에도 견디어 낼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며, 성령을 소멸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오, 산들을 옮길 때를 위해 기도하라. 전능하신 성령님만이 당신의 굳은 마음을 만지실 수 있습니다. "네가 누구냐, 큰산아? 스룹바벨 앞에서 평탄케 될 지어다." "여호와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구를 위해 부흥이 오는가?
우리를 다시 살리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간이 그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예레미야 17장의 그 저주만을 받을 것입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주님은 그의 팔에 모든 사람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인자는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별들은 그의 사역자들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주권으로 그들을 들어올리시기도 하시고 낮아지게도 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모든 빛을 주시기도 하시고 가져가시기도 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붙드셔서 밝은 빛을 비추게도 하시고, 그들을 그의 팔의 빈곳에 두시기도 하지만 그 또한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종종 주님은 그들로 한 지역, 한 국가, 또 다른 지역에 비추게도 하십니다. 그들은 그 지역이 주님께로 인도되도록 만 비춥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이끄는 별은 방황하는 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별을 영원한 어둠 속에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역자들이 우리 위에 빛을 비추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충만한 성령님을 가지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구속의 모든 사역을 예수님의 손에 위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예수께 주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시고 원하는 자를 소생시키시는 것처럼, 그렇게 아들로 자신 안에 생명을 갖게 사사 아들이 원하는 자로 소생시키게 하셨습니다."
자기 자녀를 매일 생명력 있게 돌보시는 분은 아버지십니다. 그는 생수의 샘이십니다. 그의 자녀들은 잔잔한 물가에 눕습니다. 그리고 매순간 아버지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마십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다윗의 집에 은혜와 간구의 성령을 부을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부을 것이다." 진실로, 처음부터 끝가지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부으시기 전까지는 모든 방법들이 헛될 것입니다.(Isaiah 32:15):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엉겅퀴가 날 것이다.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질 때까지." 우리가 공적으로 설교하고, 이집 저집으로 다니며, 젊은 자를 가르치며, 나이든 자를 책망할지라도 모두 헛될 것이다.;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지기 전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자랄 것이다. 우리의 포도원은 게으름뱅이의 포도원같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깨시기만을 필요로 한다. ; 주께서 예전처럼 우리에게 주님의 팔을 드러내시고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를 기뻐해야 합니다. 약속을 의지하고 구해야 합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을 때,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I사 41:17). 여호와께 네가 가련하고 빈핍함을 아뢰라. 그분 앞에 너의 필요를 펼쳐 보여라. 그분의 충만하심에 너의 비어있는 것을 가져가라. 네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한없는 공급이 주께로부터 있을 것이다.
사악한 자들이여, 우리에게는 아무런 약속이 없다고 너는 말하는구나. 그러나 네가 시련 68:28절을 받아들인다면 약속은 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당신이 반역자입니까? 가서 주님께 그렇게 말하십시오.
오, 당신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기를 원합니까? 또 당신의 반역하는 심령이 변화되기를 원합니까? 가서 주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에 생수를 주실 것입니다. 잠언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가서 그분께 말하라. 네가 정말 비천하고, 경멸받을 자임을” 에스겔 34:26절에 약속하신 것을 행하시도록 주님께 구하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지금은 당신이 시온의 언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시온의 언덕 주위에 있음을 말할 수 있다. 오, 부르짖어라, "여호와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지 않으시렵니까? "
부흥의 영향
여호와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기뻐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이다.
성령이 부음바 될 때, 주 예수에 대한 매우 가깝고 분명한 안목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신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주께 나아간다. 그들은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맛본다. 그의 피와 의는 무한히 완전하고 충만하며 그들의 영혼에 거져 주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주의 그늘 아래 앉는다. 그들은 바위틈에 안식한다. 반석이 방패가 된다. 그들은 사랑하는 분께 기대어 앉는다. 그들은 자기 영혼에 소용될 무한한 힘을 주님 안에서 발견한다. 죽을 때까지 어떤 고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그들이 필요로 할 수 있는 것은 은혜 위의 은혜이다.
그 때에 우리는 주님에 의해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기업을 얻는다. -- 방패, 분에 넘치는 상급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의 충만함을 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그분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보시기를 즐겨하신다.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활력을 보시기를 기뻐하신다. 취하라 그리고 간구하라 ‘오 하나님께서 갈급한 자에게 부어주신다면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기도할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눈물, 기쁨, 염려, 위로 등 주님께 말해져야 할 모든 것을 열어 주님께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떼지어 몰려온다. "구름처럼, 비둘기처럼 나르는 이들이 누구인가?" "마치 주님께 몰려드는 사람들 같구나." 모든 피조물이 방주로 나아오듯 비천한 죄인들이 그들이 겉옷을 버려두고(Mark 10:50), 열심히 방주 되신 예수님께 몰려 피하여 들어온다. 오 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장면은 없으리로다.
영혼들이 구원받는다. "이는 불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웠느니라."
하나님께 영광되도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인정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의 사랑과 은혜를 고백한다. 그의 입은 찬양으로 가득하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l! " 그는 여호와의 형상을 갈망하기 시작하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도다. 하늘에는 기쁨이요, 땅에서도 기쁨이로다. 그러한 날을 위해 기도하라.
지나갔던 날의 각성이 다시 있다. 우리가 성령의 부어지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일단 그리스도를 찾았으나 돌아간 자들은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멸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전보다 더 악해진다. 가끔씩 그들은 조롱하며 그 때의 일을 농담거리로 여긴다. 사단을 다 악한데, 그는 한때 천사였다. 그래서 사단은 더 사악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죄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놀랍도록 부어주신다면 굳은 심령도 녹아질 것이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
건방진 죄인들의 각성도 있다.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담대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대중들이 공개적으로 안식일을 어기고 공개적으로 선술집을 드나드는 것. 죄인들이 죄 가운데 살면서 말씀이 설교되어지는 데도 감동 받지 않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죄이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기를 기뻐하신다면 이러한 상태도 변화될 것이다.
나는 확신컨대 당신이 당신의 비참한 영혼에 영원한 파멸을 가져다 줄 죄와 부끄러운 일에 사로잡혀 선술집을 드나드는 것보다도, 기도의 집에 기도모임을 위해 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더 사랑스러운 장면은 없을 것입니다. 맹세의 소리와 씨끌거리는 농의 소리, 거만한 말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조롱의 말보다 당신이 골방에서 기도하는 부르짖음을 듣는 것이 훨씬 더 달콤할 것입니다. 세상과 헛된 우상을 돌이켜 쫓아가는 것을 보느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거룩과 영광과 예수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오, 그러한 때에 당신의 마음을 주께로 끌어올리시오.
약속을 열정적으로 주장하십시오. "내가 모든 육체 위에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 때 이 황무함이 변하여 열매 맺는 옥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주께서 거기 계시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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