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일어난 다툼(맥체인)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창 13:7-8)
가정의 불화란 정말 참기 힘든 일입니다. 성도들은 대부분 아무 역경을 겪지 않고 그냥 곱게 하늘나라로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을 잃는 슬픔을 겪고 나서 하늘나라로 가고 싶었겠습니까? 그리고 다윗도 웬만하면 압살롬을 잃는 시험을 겪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성경 본문처럼 롯과 다투는 일 따위는 겪지 않고 그냥 무탈하게 지내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싶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은 그렇게 순탄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가정적인 불화가 왜 일어나겠습니까? 우선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로 보아야 합니다. 보석 세공인이 금을 도가니에 왜 넣습니까? 금을 파괴시키려구요? 아닙니다.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련들은 우리의 신앙을 순수하게 정화시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더 좋은 나라를 열망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이 땅이 우리의 집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시고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1. 가정적인 시험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란에 이주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땅에 정착했을 때, 이젠 시험은 다 끝났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강이 굽이쳐 흘러 결국은 바다에 안착하듯이, 이제는 험한 여정도 끝이 난 거라고, 앞으로는 순탄한 길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란 말입니다. 이제 하늘 나라에 닿기까지 아무 이변도 없이 모든 일이 술술술 잘 풀려갈 거라고 확신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의 종과 롯의 종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기분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이 다툼은 매우 악한 싸움입니다. 양편은 모두 부자들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창 13:2)“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5절도 읽어봅시다.
(창 13: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들은 재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 지도 그 많은 재산만큼이나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부자였고 하나는 가난한 자였다면, 분쟁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난하던 가족이 부를 얻으면, 뒤이어 다툼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 싸움이 악한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그건 이들이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롯의 영적인 아버지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비 집을 떠날 때 롯을 찾아가지 않았겠습니까? 거기다 그들은 사촌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자, 이 싸움을 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이 주님 안에서 어떤 관계였나를 살펴보면 드러납니다. 여러분들은 주님 안에서 은덕을 입은 사람하고는 다투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갈라디아인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한 때 갈라디아인들은 자기 눈이라도 뽑아줄 정도로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복음을 쫓게 되었고, 상황이 바뀌자 이제는 사랑한 꼭 그 만큼 바울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을 살펴봅시다. 그 땅에는 이 두 사람만 산 게 아닙니다. 그들 주위에는 가나안인과 브리스인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싸움이 참으로 추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가나안인과 브리스인들은 아브라함이 매일 아침 제단을 세우고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저녁마다 아내와 자녀들을 불러모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이들일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서도 다투는 걸 보고는 이렇게 단정지었을 것입니다.
"쳇, 저 사람들도 우리하고 별로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구나."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고소해서 법정에 나가거나, 믿음의 가정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세상은 꼭 저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혼자만의 장소로 가서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찬송가 소리도 가끔 듣게 되구요. 그러면서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잘 살펴봐야지. 우리하고 정말 다른 사람인지 잘 주시해야지."
그런데 그들의 눈에 믿음을 가진 자들이 서로 싸우는 게 들어옵니다. 고성이 들려오고 서로를 비난합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롯의 싸움은 가나안인과 브리스인의 눈에 분명 악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관용
(창 13: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구절들을 14절, 15절과 연계시켜 읽어봅시다.
(창 13: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은 실로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저 구절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는 뼈속까지 화평의 마음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롬 12: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아브라함은 롯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롯은 이 싸움에서 악한 마음을 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부탁하건대, 우리가 형제간이니 나와 너 사이에와 나의 목자들과 네 목자들 사이에 다투지 않게 하자.』
여기서 우리는 궁금증을 하나 가지게 됩니다. 누가 누구에게 사정을 해야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에게 사정을 해야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또 둘 중에 아브라함이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롯이 가진 모든 것은 사실 아브라함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또 아브라함이 재산이 더 많기 때문에 롯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으로 매우 부유하였더라.』
세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나에게 주셨어. 그런데 내가 너한테 고개를 숙여야 되겠냐?"
이럴 게 뻔하죠. 항상 힘이 곧 정의로 통하는 게 세상 논리 아닙니까? 저는 세상 사람이라면 반드시 저렇게 반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창 13: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우선권을 롯에게 양도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됩니다. 여러분은 악한 자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하는 성경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마 5: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여기에는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분이 많이 않아 있을 것입니다. 자, 그 의미는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한 쪽 뺨을 맞고난 후 다시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뺨을 때리자 주님은 다른 쪽도 돌려대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그분의 사랑을 모를 것입니다. 이 시대는 참으로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그저 머릿 속을 교리들로 가득 채운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건 모두 내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은 주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내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부탁하노니, 나에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갈 것이요, 또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리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말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세계관이 그리스도인을 완성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안 되고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3. 롯의 선택
(창 13: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리고 13절을 읽어봅시다.
(창 13:13)“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과 롯은 헤브론 근처 조금 높은 지대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선 동쪽과 서쪽 지경의 거의 모든 땅에 눈에 들어왔겠죠. 서쪽을 보면, 거대한 광야가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태양이 지중해 너머로 지는 곳 말입니다. 그리고 동쪽을 보면 모압의 언덕들과 풍요로운 소돔 땅이 보입니다. 물이 풍부한 지역이지요. 동쪽에는 전염병을 유발시키는 사해도 눈에 뜨지 않습니다. 그래서 롯이 눈을 들어 평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아버지로부터 들은 주님의 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우리 인류의 첫 번째 조상이 살다가 음흉한 범죄를 세상으로 끌어들인 그 장소 말입니다. 그리하여 롯은 말합니다. 저기가 내가 살고 싶은 땅입니다. 저 쪽 땅을 선택하겠습니다.
이건 정말 분별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제단과 거주지를 떠납니다. 창세기 18장을 읽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어떻게 간구했고, 그가 주님께 제시한 중재의 말들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롯은 경솔한 판단을 내린 후 즉시 작별을 고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장막과, 아브라함의 제단과 아브라함이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기도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여 세상을 택한 롯을 보십시오. 이제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 무슨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까?
그는 소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 사람들인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는 곧바로 소돔으로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소돔을 향해 장막을 칩니다. 이 변화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돌이켜 소돔을 향하여 장막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와 그들이 같이 했던 맹세는 이제 모두 옛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급한 판단은 분명 후회를 불러오고 말 것이었습니다.
롯은 결정을 내림에 있어, 깨닫지 못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소돔을 파과하실 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입니다. 동쪽으로 떠오르는 태양에서 비치는 찬란한 햇살과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을 쳐다보면서 롯은 저기가 바로 내가 살기 딱 좋은 땅이야,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황홀한 풍경 뒤에서 몰려오고 있는 먹구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들은 대홍수 이야기를 깜빡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이 죄악 때문에 멸망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분명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롯은 소돔을 향해 장막을 칩니다.
이 지역 저 지역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보려고 그러죠.
거기에 얼마나 신실한 사역자가 있나 하는 신앙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여기는 사역자가 하나도 없습니까?
젊은이들은 아버지 집을 떠나려고 합니다.
왜요? 왜 그렇게 합니까? 물이 풍부한 땅을 찾으려 가는 겁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 떠나는 겁니까? 여기에는 직장을 찾고 있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직장을 찾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은 물이 풍성한 땅을 위해 아브라함의 장막을 떠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선택한 직장을 잘 보십시오. 선택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임금입니까? 비옥한 계곡을 선택한 것입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의 장막을 선택한 것입니까?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내리게 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로버트 맥체인) (0) | 2011.09.05 |
---|---|
나는 양의 문이라(로버트 맥체인) (0) | 2011.08.04 |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맥체인) (0) | 2011.05.08 |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로버트 맥체인) (0) | 2011.05.04 |
택해 주시는 사랑(로버트 맥체인) (0) | 2011.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