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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성 여부를 가리는 세 가지 성경적인 시험 원칙

김명도박사(미국)

by 김경호 진실 2011. 7. 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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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성 여부를 가리는 세 가지 성경적인 시험 원칙

                                                                                                                튤립 신학 연구원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m

     성도는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행한다. 어떤 때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혹은 계획하고 있는 일“ 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인가?  죄가 되지는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행위가 죄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는 세 가지 성경적인 원칙을 살펴보자. 무엇을 하든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죄가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알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  이것이 시금적이다.

                1) 성경이 이 일을 금하고 있는가?
                2) 이 일을 하면 장차 죄에 빠질 우려가 있는가?
                3) 내가 이 일을 하면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실족하지 않을까?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첫 질문에 No라고 대답한다면,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한다. 거기에서도 No이면, 다음은 세 번째 질문을 본다. 여기서도 No.라고 하면 그 일은 그 사람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행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해도 그 행하는 사람에 따라서 위의 세 가지 질문 중 어느 한 질문에 Yes이라고 대답해야 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위의 세 가지 질문 중 어느 한 질문에 Yes가 나오면 그것은 죄가 된다.  따라서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질문을 좀 더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자:

1) 성경이 이것을 금하고 있는가?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일을 하면 그것은 명백한 죄이다. 가령  도적질하는 일, 살인 행위, 거짓 말 하는 행위 등이 죄인가? 라고 물으면 그것은 성경에서 명백히 금하고 있으니 분명히 죄다. 그러면 성경에 명백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은 어찌하는가? 성경이 상세하지 않고 대략 일반적인 명령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본다면, 시속 60마일 지대에서 90마일로 가면 그것이 죄인가? 아닌가? 성경은 거기에 대하여 아무 말도 없다. 그때는 성경의 일반적인 법을 적용해야 한다. 롬 13장에 보면 “모든 사람은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성도들이라고 해서 세상의 국가의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가도 하나님이 세운 제도이므로 모든 사람은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에 복종하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성경에서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양심의 소리를 따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양심도 “화인맞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양심에 순종한다고 해도 양심 살아 있지 아니하면 그 양심을 믿을 수 없다.

2) 이 일을 하면 죄에 빠질 우려가 있는가?
      마태복음 5:29-30에 보면, 분명히 성도는 시험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 이라는 말이 있다. 벼루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옷이 검어지기 쉽다는 말이다. 죄지을 가능성 있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죄지을 가능성이 있는 곳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찍어 버리라.... 무서운 말이다. 죄지을 가능성을 멀리 하라는 말이다.  죄를 혐오(嫌惡) 하라는 말이다.  죄와 상관 말라는 말이다.  죄는 마음에서 나온다. 죄지을 마음이 없는데 죄를 지을 수는 없다. 무슨 죄이든 죄를 짓는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마음을 도적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불교를 믿던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옛날의 부처가 그리워서 작은 부처상을 늘 애지중지하면서 끼고 도는 것과 노련한 선교사가 중국에 갔다가 미국에 돌아올 때 기념품으로 사 들고 온 부처상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다시 죄를 지어 불교로 돌아갈 마음을 심어 줄 수 있는, 즉, 죄성을 심어 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후자는 그런 염려는 도무지 없다. A라는 사람에게는 죄에 빠지기 쉬운 일이라도, B라는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것은 죄에 빠질 우려가 있다. 저것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없고 각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3) 내가 이런 일을 하면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실족할까?
     그리스도인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다. 가인은 아우를 죽이고 하나님이 묻는 말,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잘못되었다. 성도는 “형제를 지키는 자”라야 한다. 내가 충분히 내 성숙한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내 옆에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삼가란 말이다. 어떤 성도가 위가 나빠서 술을 조금씩 약용으로 마시는데 새로 믿기 시작한 사람이 볼 때 술을 마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실망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면 그 성도를 위하여 비록 약용이라 해도 술 마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약용으로 술 마시는 일이 허용될 것이다. 기독교의 윤리는 하나님의 영광인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은 형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32-33절에서도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남에게 덕을 세우는 자가 되라”라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내가 하는 일이 믿음이 약한 자를 넘어트리게 하는 일인지 모를 때 어떻게 하는가? 확실치 않으면 성경은 하지 말라고 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일, 즉 성경을 모르고 믿음에 서서 하지 않는 일은 무엇을 해도 죄가 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수사항이  한 가지 있는데 모든 성도는 성경을 알아야 하며 양심이 성경에만 매여 있을 뿐, 사람의 유전이나 사람의 가르침에 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으므로 성경을 읽고 판단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이다.

     그런데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혼자서 판단해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도록 행동하지만, 그 책임은 결국은 개별적으로 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연구하여 하나님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며 그 뜻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 속에 적용하여 죄가 되는지 아닌지 분간하여 죄를 피해야 한다. 음식 먹는 것, 안식일 문제, 절기 문제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각자가 판단해서 기독인의 양심에 구속받음이 없이 행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 시금석을 거치면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일을 피하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조만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때는 각자가 육체로 행한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고후 5:10).
물론 이 심판은 구원을 판가름하는 심판이 아니고 상급의 심판이다.  참으로 중생한 성도라면
구원 여부를 가리는 심판은 받지 않는다.   요즘 처럼 크리스챤의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아진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은 바른 신앙, 바른 생활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김명도 교수
7/7/2011
rv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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