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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얻는 위로(존 플라벨)

존 플라벨

by 김경호 진실 2012. 2. 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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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얻는 위로(존 플라벨)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하나님이 정말 예수님을 십자가위에서 버리셨는가?
그리스도께서 내어줌이 되었다는 그 하나 위로가 샘물처럼 솟아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진실로 다양한 위로이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두 가지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첫째는 당신의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것이요 둘째는 현재의 절망적인 슬픔에서 당신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형태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버려지심은 당신을 영원한 멸망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한동안 버려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버려지신 것이 비록 몇 시간에 지니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잠시 동안 버려지신 것과 우리의 영원한 멸망을 동일하게 취급하신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독생자께서 잠시 동안 버려지신 것의 중량은 보잘것없는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멸망 받아야 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결코 취소하는 일이 없는 최상의 안전을 제공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것처럼 슬픔에 찬 외침이 아니다.

둘째, 더욱이 이 애석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렇게 영적으로 깊은 침체의 늪을 헤매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적절한 대안은 믿음의 눈으로 아래의 여섯 가지 사항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이 비록 그리스도를 버리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지지하셨다.
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셨으나 하나님 곧 전능자의 두 팔은 그를 잡고 계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웃으시는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지지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돌리시는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능하신 손길을 거두어들이시지는 않는다는 원리를 붙잡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언젠가 경건한 베인스씨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원하는 그 달콤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때로는 어린 아이와 같이 완고하고 순종하지 않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다루어 가신다.
우리가 자녀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라고 고함을 지르면 그 아이는 그곳에서 한숨을 쉬며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당장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을 고기를 제공하며 호의를 베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하인들에게 명하여 그를 데려와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할 것을 허락한다.
비록 아이들을 향해 이전처럼 웃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을지라도 여기에 아버지의 돌봄과 후원이 있다.

2. 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버리셨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그를 버리셨으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버리실 수 없었으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울부짖음으로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떠나가실 수는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떠날 수 없다. 차라리 우리의 영혼이 주 앞에서 신음하며 신중하게 눈물을 흘리며 주를 찾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으로 여기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이것이 신부를 찾고 있던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신부가 가장 사랑하던 신랑의 사랑이 취소되었는데도 신부가 신랑과 함께 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워 하였는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아 3:1-2)

3. 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버리셨으나 그리스도는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
그의 버려짐은 잠시 동안이었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거룩한 이유들 때문에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돌리실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서 그 얼굴을 돌리시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어두움의 구름은 곧 걷힐 것이다.
어두운 밤은 광명한 아침을 바라보고 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원히 다투니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사 57:16)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잠시 슬픔에 잠기는 것을 통하여 버려진 자녀가 되지 않도록 하신다면, 그리고 주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다투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다투시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신다면 아버지께서 우리 영혼을 향해 미소 지으시지 않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에겐 달콤한 것이 아닌가!

4. 비록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를 버리셨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때 하나님의 정당함을 증명한 것이다.
우리가 시편 22편2-3절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나 주는 거룩하시나이다” 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비록 주께서 우리들에게 가혹한 것들을 기록하셨을 때라도 주는 거룩하시며 신실하시며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말 할 수 없는가?
비록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더라도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비록 주께서 나를 정죄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리고 기꺼이 주는 의로우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처럼 처신하는 것이다.
 

5.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로부터 외적일 뿐 아니라 내적인, 모든 가시적이며 느낄 수 있는 위로들을 취하셨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결핍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서 계셨다.
그리스도의 버려짐은 그를 믿음의 길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란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말이었다.
이 모든 일은 참으로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그때가 어떤 상황인가?
그리스도의 두 손이 반드시 십자가에 못박혔어야만 했고 그 영혼은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만 했던가?
이 상황에서는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던 것인가?
물론 그렇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이제 결론적으로 여섯 번째 사상으로 가보자.

6.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울 정도로 광명하고 유쾌한 그 아침이 자신에게 이르기 얼마 전에 버려지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기 얼마 전, 그리스도께서 슬퍼하며 외친 후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채 그 밤을 지새우지만 아침에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기꺼이 하나님을 버리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라 그리고 나에게 말하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오시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가?
주 앞에서 신음하고 녹아지며 갈망하는 마음이 없단 말인가?
실제로 당신이 주를 버리면 그는 당신을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주님을 버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게 하라.
비록 내가 주님의 현재적 위로를 누리지 못하며 주님을 향한 내 마음에 확신이 없다 할지라도 나는 나의 형편없이 연약한 믿음을 이 세상의 좋은 것들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욥기 30장 11절에 기록된 ‘그가 당신 앞에서 그 굴레를 벗겼다’ 고 하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셨다고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양심적으로 민감한 모든 것을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서 옮기셨으며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어떠한 후회도 없이 자유롭게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인가? 만약 여러분의 영혼이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로 슬픈 조짐이 아닐 수 없으며 최고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다시는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죄의 달콤한 유혹 가운데 던져 넣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세상 피조물로부터 오는 세상적인 방식으로 평안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얻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인가?
아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비록 내가 흑암과 슬픔 가운데서 죽어간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비록 내 영혼에 희락과 평안이 없다 할지라도 나의 영혼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충만할 것이다.
진실로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함이 없다는 것이 내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버림 받은 징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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