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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교도 2세대 제레마이어 버로우즈 (Jeremiah Burroughs, 1599 - 1646)

버로우즈

by 김경호 진실 2012. 3. 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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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iah_Burroughs.jpg버로우즈는 3권으로 된 『청교도들의 생애』(The Lives of the Puritans)를 쓴 벤자민 브룩에 의하면 '매우 온화한 성직가'였다고 한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임마누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국교에 따를 수 없어 도중에 그만두고 잉글랜드를 떠나야 했다. 그는 세인트 에드먼즈(St. Edmunds) 교회에서 에드먼드 캘러미(Edmund Calamy) 목사를 도왔고 다음에 5년 동안 노폭의 티벳샬(Tivetshall, Norfolk)에서 강의했다.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생계 수단을 박탈당하고 1636년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거기서 그는 노틀담에서 목회하던 윌리엄 브리지(William Bridge)를 도왔다.

 

크리플게이트교회

시민전쟁의 시작으로 감독들의 박해 세력이 줄어들었다. 버로우즈는 귀국하여 잉글랜드의 최대 회중을 가졌다는 런던의 크립플게이트(Cripplegate)와 스테프니(Stepney)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스테프니에서 오전 7시 예배를 인도하였고, 오후 3시 예배는 윌리엄 그린힐(William Greenhill)이 설교하였다. 사람들은 스테프니 교회의 '아침 별'은 버로우즈이고 '저녁 별'은 그린힐이라고 하였다.

 

버로우즈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여할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그는 평화의 사람이었다.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버로우즈의 인품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평하였다. "만약 감독교회 교인들이 모두 어셔(Ussher) 주교와 같고, 장로교인들이 모두 스티븐 마샬(Stephen Marshall)과 같고, 독립교인들이 모두 제레마이어 버로우즈와 같다면 교회의 분열은 벌써치유되었을 것이다."

 

버로우즈는 뛰어난 설교자면서 탁월한 저술가며 활동적인 사역자였다. 그는 다작가였지만 어떤 글에서도 예리하고 영적인 특징을 잃지 않았다. 그는 47세밖에 살지 못했음에도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는 좋은 글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책은 『크리스천 만족의 진귀한 보배』  (The Rare Jewel of Christian Contentment)이다.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저서들이 다시 출판되었다. 『죄론』(A treatise on the Evil of Evils), 『은혜로운 성령의 탁월성』 (The Excellency of a Gracious Spirit), 『세속적인 마음에 관한 강해』(A Treatise on Earthly-Mindedness), 『복음과의 대화』(Gospel Conversation), 『성도들의 행복 / 산상설교』 (The Saints' Happiness), 『성도들의 보고』 (The Saints' Treasury).

 

버로우즈가 쓴 400쪽에 달하는 화평에 대한 논문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적실한 글이다. 제목은  Irenicum, to Lovers of Truth and Peace. Heart-divisions opened, in the causes and evils of them; With cautions that we may be hurt by them, and endeavours to heal them이라는 긴 타이틀이다. 또한 버로우즈의 4권으로 된 호세아 강해서에 대해서 스펄젼은 "빼어난 작품이다. 체험적 강해의 보물 창고다"라고 평하였다.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
글쓴이 : 로스트리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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