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격려
<학개 2:1-9>
김영철 목사·미문교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일정한 시간의 비율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시간의 비율을 다르게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길게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짧게 느낍니다. 그것은 각자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가치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배고픔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도 남의 일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힘이 빠져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70년간 바벨론의 포로로 지내면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70년간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다가 돌아왔지만 그들을 반겨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포로에서 돌아온 숫자는 약 5만 명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적대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5만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겨우 기초공사를 한 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방해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 멈춰지자 이들은 각자 살 길을 찾기에 바빴습니다. 이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찾다보니 부자는 더욱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열심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성전 짓는 것을 중단한 채, 각자 자신들의 삶을 찾는 일에만 바빴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보내셔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먼저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번에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약해지게 된 것은 노인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절에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전의 이전 영광’이란 예전에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의 영광을 말합니다. 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의 눈에 새로 짓는 성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느냐’는 말입니다. 포로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새로 짓는 성전을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여 크게 낙담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점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의 문제점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현재의 모습만 보려고 하였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따라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의 모습만을 볼 줄 알았지, 보이지 않는 모습은 볼 줄 몰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았을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하나님의 장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의 모습
만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일반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도 마음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4절부터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마음을 굳게 하여 성전 짓는 일을 계속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함께 하시겠다’는 것은 앞으로 함께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 함께 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함께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와 광야에서 살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에도 계속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 오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지금도 계속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짓기 위해 애쓰는 노력도 아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낙심과 실의에 빠진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론적으로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낙심하고 실의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며 격려가 되는지를 매일 매일 삶속에서 잘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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