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한국교회 진단
허순길 박사
“교회의 성장은 인간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일”
“성령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한 자유주의 교회들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
<허순길 박사는 고려신학교 졸업(1960년), 고려신학교 재학 시절에 고 박윤선 박사의 사서로 있었으며 화란으로 유학을 하였다. 캄펜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1972년),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였다(1972-1977년). 이후 호주 자유개혁교회의 목사로 봉사하였으며(1978-1987년)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다시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및 원장으로 재직하였고 은퇴 이후에는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편집자 주>
나의 신학은 합동신학교를 설립한 박윤선 박사님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분의 학생이면서 비서로서 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윤선 박사로부터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받았고 그 영향 가운데 화란 캄펀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했고 얼마 전에는 호주에서 화란 이주민들이 세운 개혁교회에서 10년 간 목회를 하게 되었다.
이제 박윤선 박사의 제자들, 또는 그 후배들에게 박 박사님이 간직했고 이루기를 원했던 개혁주의 교회관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된 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한다. 이 글의 내용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이미 책이나 논문이나 잡지에 실었던 주제들이다. 이를 다듬어 낼 것이다.
1. 한국교회의 실상에 대한 점검
개혁주의 교회론 강좌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970년대에 한국 교회는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 이 성장률은 5%이하로 떨어졌고 90년대에는 겨우 3%를 밑돌았다. 그리고 근년에는 교인들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횡적으로 이동하는 현상 때문에 어떤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면을 보면 실제적으로는 감소하고 있다.
왜 급성장하던 한국 교회가 급격한 정체기를 맞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국민 소득에 역비례하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소득이 1만불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삶의 위기감이나 절실함이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신앙의 동기가 약해지는 동시에 사람들이 이대로 더 행복하고 싶고, 즐기고 싶기 때문에 주일에 예배를 요구하는 교회에서 발걸음을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은 인간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일이다. 소득에 반비례하는 교회 성장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인 자료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에 절대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매일 필요는 없다. 교회의 성쇠는 교회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복주심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급격한 노화 현상은 하나님의 복주심을 거부하는 것에 있다. 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먼저 우리는 “서구교회가 왜 하나님의 복을 잃고 쇠퇴했는가?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유지하며 더 받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2. 진리 위에 서 있는 교회
서구 교회의 쇠퇴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의 영향이었다. 이 영향으로 복음적인 설교가 점차적으로 실종되어 갔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대부분의 서구교회는 복음의 절대적인 성격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갔다. 이교도에도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다원주의 신학이 교회들의 정죄를 받지 않거나, 묵인되거나, 또는 적극적인 동조를 받으며 보편화되었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의 배타적인 성격을 지워갔고 그것 자체가 교회의 가르침이 되어갔던 것이다.
때문에 자연히 목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회개와 중생을 강조하지 않게 되었고, 타 종교에 대한 관용주의와 그리스도의 윤리적인 교훈을 통한 인간 생활의 개선을 강조하게 되었다. 복음을 약화시킨 이런 교회들의 설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개인, 교회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잃게 만들었고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활력을 잃게 했다. 더 이상 교회생활은 절대적이거나 필수적이지 않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교회는 점차 쇠퇴한 것이다.
한편 정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교회들은 이런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이런 사상과 세력에 도전하고 바른 복음과 신학을 지키려 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고 복음의 핵심 교리를 바로 세우고 전했다. 이런 모습이 외부적으로 그들을 건전하게 보이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통 교회들이 교회의 건전함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에서 찾는 대신에 거짓 교리를 반대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면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런 비판적인 설교는 교회 생활의 활력을 줄어들게 했고 마침내 신앙생활을 메마르게 했다.
이런 교회가 전도에 적극적일 수 없다. 따라서 활력을 잃은 정통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쇠퇴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사단의 양동 작전이 아닐까? 참 교회들이 외적으로는 자유주의 설교의 공격을 받았고 교회 내적으로는 그것 때문에 부정적인 경향의 죽은 설교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교회도 서구교회처럼 자유주의 대 복음주의 교회의 구도를 보이고 있다. 복음을 사랑하는 교회가 이런 교회들에 대하여 경계하고 배척해야 한다. 그러나 서구 교회들을 참고하여 수세적인 자세로 비판하는 입장에만 머물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여 신자들을 복음의 능력 속에 활기 있게 살게 해야 한다. 신학적인 비판에서 머물지 말고 살아있는 복음의 삶을 일으켜야 한다.
3.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교회
서구교회가 쇠퇴한 또 다른 원인을 말하자면 상당기간 성령의 사역과 그 능력을 간과해왔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적인 입장에 있는 자유주의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신학의 정통을 파수하는 교회들 역시 성령의 능력에 대한 소극적인 입장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설립되고 보존된다. 성령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한 자유주의 교회들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사실상 거부하는 교회들 역시 마찬가지 결과에 이른다.
성령 충만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이 말씀은 오순절파 교회들만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는 물론 성령의 역사와 충만은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은사로 판단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는 교회에서 직분과 은사를 주신 그리스도의 종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공적으로 진리를 가르치게 하며, 회중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게 하며, 진리 가운데 사랑하게 하는 것에 살아있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각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여 믿음을 일으키시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일하신다. 성령을 좇는 것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길이다.
신자들이 성령으로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능력 안으로 들어갈 때에 이 세태를 이기는 힘을 교회가 가지게 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http://rpress.or.kr/xe/index.php?mid=planning_special&page=7&document_srl=2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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