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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랜머

토머스 크랜머

by 김경호 진실 2012. 8. 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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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영국종교개혁의 격동기에 영국 프로테스탄드 교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크렌머는 수많은 시련과 유혹 가운데서도 담담히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가다가 생애 마지막에 있었던 변절아닌 변절에 대해서 순교로 갚음을 한 굳건한 의지의 개혁가이다.

그는 헨리8세의 총애를 힘입어 1532년 갑자기 대주교의 직분을 맡았다. 복잡하게 얽힌 영국의 정치계와 종교계에서 그는 자신의 프로테스틴트적 신앙 중심을 잃지 않고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다. 영어성경 출판에 힘썼으며, 두 권의 공중 기도서를 발간하여 영국국교회에 정통 전례서를 만들어 주었다.

'국왕은 건전한 사회를 조성하고 복음이 자유스럽게 전파되게 할 사명이 있음' 을 신봉했다. 그는 개신교적 성향의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자 날개를 단 듯 주의 깊으면서도 추진력있게 개혁을 펴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향유하지 않았고 궁중의 온갖 음모와 술수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에드워드6세가 요절하고 열렬한 카토릭교도였던 메리 여왕이 즉위하면서 빛을 잃어갔다. 개신교적 제도를 벗겨내려는 가차없는 시도에 따라 당시 수많은 개신교 주교들이 화형을 당했으며  크랜머 역시 1553년 반역죄로 고소당하고 투옥되었다.

정부는 그를 바로 처형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자신의 신앙오류를 자인하게 함으로써 카톨릭의 우위를 선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3년이 넘는 감옥생활로 쇠약해진 그는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결국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였다. 그러나 이내 통회의 눈물을 흘렸고 1556년 화형장에 끌려간 그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진실된 신앙을 재천명함으로써 남아있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용기를 되찾아주었다.

위엄을 되찾은 그는 화형대에 올라 ,변절의 사인을  한 손, 을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서도 끝까지 치켜든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죽음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그가 드렸던 기도는 겸손하고 경건하였던 그가 세월의 풍파에 맞서 얼마나 큰 갈등과 회오를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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