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 방지일 목사
정암 박윤선 박사(1905-1988, 이하 박윤선)은 예장 고신, 총신, 합신 등 주요 보수신학 교단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탁월한 신학과 경건으로 선한 유익을 많이 남겼다는 면에서 후학들의 존경이 뒤따르는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말년에 개교에 관여하고 교수로 활동한 합신 교단에서는 매년 박윤선을 기념하며 “정암신학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이하 합신대원) 개교 33주년 기념, 제25회 정암신학강좌가 11월 5일(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화평교회(담임 김병훈 목사)에서 “정암 박윤선과 나의 목회”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신학강좌에는 합신 출신 목회자 및 합신대원 학생, 그 외 방문객 등 수백 명의 인원이 참석하였다.
이날 개회예배에서는 한국교회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 올해로 104세인 방지일 목사가 신명기 32:7 말씀을 가지고 “역사의 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방 목사는 “역사 의식을 바로 가지라는 말은 나는 어디서 왔는지를 알라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역사 의식을 바로 알고 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권면하였다.
▲ 조병수 총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조병수 교수는 인사를 통해 “우리가 훌륭한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니고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박윤선 박사는 자신을 남긴 것이 아니라 그가 믿었던 하나님을 남겼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암에 대한 많은 말을 하면서 정암이 남기고자 했던 하나님을 남겨야 한다.” 라며 본 강좌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다.
이번 신학강좌에서는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부총장, 역사신학)가 “박윤선 박사의 목회관”,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 합신대원 졸업)가 “박윤선 목사의 목회 신학으로 본 최근의 제자도 논쟁”, 문정식 목사(열린교회, 합신대원 졸업)가 “정암 박윤선에 나타난 경건과 학문이 조화된 개혁주의 신학, 구 프린스턴신학의 계승과 이의 한국적 발전 연구”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하였다.
▲ 박윤선 박사의 목회관에 대해 이상규 교수가 발표했다.
박윤선 박사의 목회관 / 이상규 교수
이상규 교수는 발표를 통해 목회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인 교회 분열, 주일 성수, 교회 간 대립과 송사의 문제에 관한 박윤선의 입장을 정리하였다. 우선 이 교수는 “박윤선의 주석 집필이나 신학교육은 모두 목회 사역을 위한 봉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하였다.
이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박윤선의 집필과 교육 중에 교회 분열과 같은 현실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교수는 “도리어 그가 문제시한 것은 교회의 화평과 순결 혹은 교회의 쇄신과 정화”였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교회의 거룩과 순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어떤 점에서 정암 자신은 정당성 여부와 관계 없이 교회 분열에 비의도적으로 관여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것은 박윤선이 1946년 고려신학교와 고신교단 형성에 이의 없이 동참했다는 것, 1957년 고려신학교를 일시 사임하고 새 신학교를 설립했던 것, 1980년 합동신학교 설립에 가담한 것 등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 교수는 “오늘날 목회 현장의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내분과 이로 인한 교회당 쟁탈, 교회 재산을 둘러싼 법정 소송”이라는 점을 지적한 뒤에, “박윤선 목사는 교회의 모든 재산을 양도하더라도 말씀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고, 교회의 덕을 위해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고신 교단 내에서 있었던 교회당 문제와 관련하여 송상석, 한상동 목사와의 입장을 박윤선의 입장과 대비하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주일 성수 문제와 관련하여, 박윤선이 고신 교단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1960년 스프너 선교사 전송사건을 중심으로 박윤선의 주일 성수 입장을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박윤선의 입장은 “청교도적인 엄격하고도 철저한 주일 성수를 실천하면서도 ‘부득이한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득이한 문제는 “신앙 양심의 문제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박윤선은 주일에 스프너 선교사를 전송한 일을 부득이한 일로 보았고 고려신학교 이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립이 발생하였고 결국 박윤선은 고신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 이문식 목사는 박윤선의 목회 신학으로 본 최근의 제자도 논쟁에 대해 발표했다
박윤선의 목회 신학으로 본 최근의 제자도 논쟁 / 이문식 목사
이문식 목사는 한국 교회의 문제를 “1980년대를 거쳐 폭발적인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회심’이 간과되고, ‘제자의 삶’이 무시되고 ‘개인화된 구원론’, ‘기복적 축복론’이 만연화되어 사회적 공공성을 상실하였다”고 진단하였다. 아울러 이로 인한 신학적 반성으로 1990년대 이후에 시작된 제자도 사역을 소개하며 이를 박윤선의 목회신학에 근거하여 살펴 보았다.
이 목사는 박윤선의 구원론을 ‘총체적 구원론’으로 정의하며, “정암 박윤선은 성도들의 신앙과 행위를 단순한 윤리 문제나 모범적 훈화로 취급하지 않았다. 정암 박윤선은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을 드러내는 것으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라고 설명하였다. 박윤선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의 모든 과정이 영생”으로 보았다. 여기서 구원의 단계를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박윤선은 존 스토트(John Stott) 등 현대 신학자들보다 먼저 복음과 구원의 총체성을 꿰뚫어 보았으며 이를 일찍 강조하였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신학적 통전성을 종교개혁의 개혁파 신학의 전통에서부터 깊이 이끌어 왔다”도 부언하기도 하였다.
이 목사는 또한 최근에 들어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로 미국 복음주의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급진적 제자도’에 대하여 “복음의 통전성에 대한 박윤선 목사와 같은 깊은 이해가 없다”고 평가하였다. 아울러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공공신학에 대한 고민이나 짐 월리스(Jim Wallis)의 사회적 제자도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박윤선 목사와 같은 통전적 언약신학에 기초한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기 힘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제자도 논의가 성경신학적 깊이가 없이 선교적 대안으로만 제시되는 것이 염려된다”고 하면서 “정암 박윤선의 초지일관한 자세, 즉 성경적 뿌리를 천착하려는 성경 신학적 철저함이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즉, “본회퍼보다 더 기독교 신학의 본질에 충실하고, 존 스토트보다 더 복음의 총체적 회복을 지향하며, 짐 월리스보다 더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변혁을 꿈꾸되, 정암 박윤선처럼 오직 성경계시에만 기초한 철저한 제자도가 앞으로 더욱 급진적으로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는 것이었다.
▲ 정암 박윤선에 나타난 경건과 학문이 조화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문정식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정암 박윤선에 나타난 경건과 학문이 조화된 개혁주의 신학 / 문정식 목사
문정식 목사는 발표를 통해 구 프린스턴의 신학체계를 세운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와 이 흐름을 이어받아 한국적 개혁신학을 전한 박윤선의 신학과 경건을 비교하였다.
문 목사의 논의에 따르면, 하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그 중에 “하지는 실천이나 경건에 관심이 없이 이성만을 강조하는 신학체계를 구축했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 목사는 “하지는 학문과 경건의 조화를 이루는 신학적 체계를 세운 신학자”라고 반박하였다. 특히 그의 저서 『생명의 길』(The Way of Life)을 분석하여 “성경에 대한 여러 가지 증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증거”, “기독교의 객관적인 교리들은 주관적인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거듭난 감정은 형제애, 예배, 기도 등의 신앙적 행동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기쁨을 얻게 된다” 등의 내용을 규명하였다. 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성경에 기반을 둔 객관적인 신학과 더불어 경건에 뿌리내린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목사는 “하지는 자신의 경건과 신학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에 기독교에 대해 내외적으로 닥치는 공격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선교의 지평을 열었다”고도 평하였다.
문 목사는 박윤선의 신학과 경건에 대해서는 “정암에게는 계시의존적 사상에 기초한 개혁주의 성경해석에 기반을 둔 신학의 유기체적 정립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결과 개혁신학의 경건과 실제적 적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였다. 개혁신학적 경건의 한 모습이 박윤선에게서는 기도로 드러난다. 박윤선을 경험한 후학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박윤선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목사는 개혁신학의 실제적 적용에 대해서 “정암의 개혁신학은 개인적 경건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갖는 문화변혁적 확장으로 나타난다”고도 평가하였다.
박윤선이 구 프린스턴 전통을 이어받은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계시의존사색’이다. 이는 박윤선 자신의 “오직 성경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줄 확신하고 성경을 바로 알고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사도적 전도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한 평생 성경 무오의 진리를 믿고 성경을 해석하는 중 때로는 자유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여 왔다.” 라는 말을 통해 드러난다. 또한 그가 기도로 대변되는 경건을 강조한 부분은 “성경연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기도 없이는 완전치 못하다”라는 말로 드러난다.
결국 문 목사의 강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사실 하지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정암에 대해서도 형식적 성결주의나 독단적 배타주의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비판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에 하지와 정암의 하나님 앞에서만의 내밀하고 진실한 경건과 치열한 신학적 추구라는 학문이 균형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좌로부터 심훈진 목사, 남웅기 목사, 김재윤 목사, 박성은 박사
수상문 및 특강
이번 행사에서는 강좌와 더불어 박윤선에 대한 수상문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로는 심훈진 목사(동작중앙교회, 합신대원 졸업),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합신대원 졸업), 김재윤 목사(염창동중앙교회, 총신대 신대원 졸업)이 각각 발표하였다. 박윤선을 직접 경험한 기억을 더듬는 경우도, 그렇지 않고 저술로 접한 소회를 밝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주요한 점은 “박윤선은 신학과 경건에 철저했고 현재 자신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박윤선의 아들인 박성은 박사가 “계시 의존 사색의 변증학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특강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 계시의 절대적 우위성은 변증학보다 선행한다.”는 것이었다.
코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