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꿈을 불어넣자
< 김재성 목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위를 세워나가는 일은 곧 바로 소망과 혼을 불어넣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 교단 설립 30주년을 맞아 교단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향후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교단설립 30주년 기념논단을 준비했다. 이에 “각성을 촉구하는 소명 의식을 분명히 하자”는 주제로 5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① 지난 30년 ‘각성의 사명’을 감당하다
② 다시 새로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③ 역사적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자
④ 교회론의 변질을 경계하자
⑤ 영혼에 꿈을 불어넣자
마치는 말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몇 가지 주제들을 제안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려면 영혼에 꿈을 불어넣어서 격려하면서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마치려 한다.
1. 꿈과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말라
얼마 전에 미국 이민자로서 오랜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장로님과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그분과는 삼십년 전에 함께 교회를 섬기다가 학업을 계속해야 할 처지라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후로 종종 만나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장로님께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하셨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 돌아갈 날이 가까운 팔순을 넘긴 장로님의 바램은 목회자의 설교에 관한 것이었다. 제발 설교 시간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향해서 다른 말 많이 하지 말고 용기와 격려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분의 바램은 단순히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기복신앙으로 뜬 구름을 잡도록 부채질하라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하되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제대로 된 방법을 쉽게 정확히 알려달라는 것이다. 어렵게 모르는 내용으로 말하지 말고 쉽게 구체적으로 행할 수 있게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들 목회자들이 이 시대에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은 꿈과 용기를 영혼에 불어넣는 일이다.
그동안 필자는 목회일정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서 해마다 세계 신학자들과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칼빈학회를 비롯하여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 개혁주의 신학회, 세계복음주의 연맹 신학위원회 등 신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해왔다. 그 때마다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03년부터 세계 복음주의 신학회에 한국 대표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는데 이들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가질 때마다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남미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전혀 다른 민족들과 만날 때마다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긍심, 한민족의 자존감, 한국인의 행태 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꿈이 없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희망과 소망을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제 합방으로 국가의 주권을 잃은 지 올해로 백 년이 되었다. 일제 통치하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게 되고 말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별 수 없다”라고 하는 “자기비하”이다. 이것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 기간 동안 가르친 왜곡된 역사의식이다.
구한 말, 무능력하고 부패한 관리들이 나라를 유지할 힘이 없었던 것도 일부는 사실이다. 실학사상을 거부만 할 뿐 낡은 유교의 성리학으로 근대화 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가 판을 치는 세계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한민족이 그토록 무능력하고 당파싸움과 사색당쟁에만 몰두해 온 나라였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인들은 서로 싸우고 모래와 같이 연합을 모르며 기질이 아주 나쁘다고 가르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자들의 궤변에서 나온 말들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는 세계 역사에 빛나는 문명을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한국민족은 지금 전세계에 빛나는 첨단 기술과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엽전의식’을 가르치고 주입시킨 일제 식민지사관에 세뇌되어서 도무지 깨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안타까운 정서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한국인들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면서 특히 가난하고 불쌍한 민족에게 복음을 알게 해 주시고, 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마침내 선교사 2만여 명을 세계에 파송하게 하신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던 민족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셨다.
2.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46세 되던 1910년 어느 날, 술에 취해서 평양 산정현 교회당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한석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새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예배 장면을 목격하고 술에서 확 깨어났다고 한다.
자기가 모르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교회 안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복음 안에서 생명을 발견하였다. 민족의 산실 오산학교의 창립자인 그는 오산 교회를 세우고 장로가 되어서 헌신봉사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남강 이승훈 선생의 주도면밀한 활약이 없었다면 1919년 삼일만세 운동은 불가능했다.
이승훈 장로의 동지이자 도산 안창호의 제자 고당 조만식 장로 역시 20세에 복음을 듣고 희망을 찾았기에 예수를 영접하였고, 나라를 되찾는데 목숨을 걸고 이바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간디라는 그의 호칭처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살해당할 때가지 소박하고 검소하게 믿음의 길을 지켰다. 복음은 영혼에 꿈을 넣어주고, 담대함과 능력을 주신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도 우리 한국 사회는 너무나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서로 비판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존중하지 않았다. 이것을 고쳐주고, 바르게 하나님의 소명의식을 가르쳐서 사명과 꿈을 가진 민족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지금 한국에 꿈을 가지고 시집 온 필리핀, 베트남, 태국, 중국 등 여성들이 무려 십사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천 년대 이르러 한국은 모든 아시아인들의 동경과 꿈이 되었다. 어떻게 한국이 이처럼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갈 것인가?
우리가 한국 사람들의 영혼에 불꽃이 피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르고 가꾸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적으로 충만하게 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특히 목사와 장로, 집사 등 교회의 직분자들을 생동감 넘치게 하여서 세상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교회가 배출하고 길러내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과 믿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직분자들이다.
교회를 움직여 나가는 지도원리와 관리규정을 세움에 있어서 장로교회는 분명하게 밝혀진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영적인 조직체의 질서와 운영규정을 따르고 있다.
장로교회라는 말은 장로들이 교회의 모든 교훈과 행정을 결정해서 이끌어가는 체제를 의미한다. 사도들이 곳곳에 기초석이 되어서 세운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장로들, 즉 말씀을 봉사하는 장로인 목사와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를 세워서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는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래서 장로교회에서는 한 나라의 군주가 교회를 다스리는 영국의 국교회 체제를 거부한 것이다. 회중들이 아무나 나서서 교회의 일에 간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준한 인격과 신앙을 갖춘 장로들로 하여금 전체를 통솔하게 하였던 것이다.
만일 신실한 열매가 없는 장로라고 하면 언제든지 성도들의 신임에 따라서 임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들 장로들은 위로 교회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교훈에 따라서 몸 전체를 움직이게 하는 경건한 종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에서 명령을 내리시고, 영광을 받으실 주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서 죄 값을 치르고, 자기에게 속한 백성들을 불러내어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교회를 설립하고, 보호하며, 능력으로 기르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은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그 기초석이 되었고, 그들이 전해준 것을 물려 받아서 초대 교회에서 오늘에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해답이다
나는 지금 한국교회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바른 직분자들을 기르고 세워야 함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모든 성도들에게 꿈을 불러 넣어주려는 시대에 부응하는 교회의 일군들을 육성하고 배출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허황된 명예욕이나 세상적인 사람들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곳곳에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자들을 세우고 이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서 질서있게 운영해 나가도록 하셨다. 이런 교회의 직분들은 개인의 사회적, 종교적 신분을 상승하기 위해 소속된 자들 중에서 소수만을 특별히 선발하여 남다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 소속된 성도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회사처럼 특별히 선발된 운영위원들을 필요로 하는 모임도 아니다.
교회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는 기관이지만, 사람들의 결정이 모든 선으로 간주되는 민주주의가 지배원리가 아니다(not democracy).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만이 다스리시는 단일 지도체체(but a Christocracy)이다. 예수님의 뜻을 변질시키는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거나 결의했다고 하더라도 무가치할 뿐이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 몇이서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서는 거의 모든 권위가 상실되고 말았다. 건전하게 지켜져야할 권위마저도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종황제 시대 이후로 낡은 유교주의 폐습이던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철폐되었다. 그리고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완전히 신분구조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건전한 권위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없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사회 인사들이 비난과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발전을 칭찬하고 뛰어난 지도자들에 대해서 인정해 주고 있는데, 한국에 들어가면 모두 다 헐뜯고 깍아 내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세워 나가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교회의 생명을 유지하는 규칙과 조직은 교회는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최종 권위를 가진다. 칼빈이 성경적 교회론을 강조한 책「기독교강요」에서 강조한 교회의 제도의 핵심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위를 세워 나가는 일은 곧 바로 소망과 혼을 불어넣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절대 주권 아래서 은총과 은혜가 주어진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살아나고 소망이 넘친다. 성령님의 역사가 위로부터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은총과 복은 억지를 부리듯이 매달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치는 말
자유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세워진 미국의 헌법은 오늘날 모든 근대국가의 근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미국의 헌법을 기초한 사람이 목사로서 프린스턴 대학교 학장이던 윌리엄 위더스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하던 장로교회 목사였고, 특히 요한 낙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아서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라를 지도했던 분이다.
윌리엄 위더스푼은 1776년 미국 독립기념서에 서명한 대표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헌법의 기초적인 정신을 제공한 사람이다. 그의 사상을 오늘날 사람들은 도덕 정치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뜻을 펼치는 나라를 소망하고 격려했다. 그래서 미국 독립 당시 지도자였던 죠지 워싱턴 장군과 여러 지도자들은 더 이상 부패한 영국 국왕에게 세금을 내면서 복종할 이유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자고 국민들을 설득한 것이다.
꿈과 혼을 불어넣는 복음의 힘이 발휘된 것이 바로 미국의 독립이었다. 그래서 도덕 정치를 기본이념을 삼은 미국의 독립운동은 파괴와 약탈, 살인과 혼란이 난무했던 프랑스 혁명과는 너무나 다른 정의로운 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복음을 나눠주고, 이웃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나라로 거듭 해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근래에 몇 년 동안 드와이트 무디(1837-1899) 선생에게서 느낀 감동이 너무나 크다. 그의 별명이 ‘증기 기관차’였다. 복음의 열정으로 뿜어내는 그의 감동적인 메시지가 사람의 영혼을 살려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뜨자,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청교도들의 책을 수 백권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가 세운 시카고 무디 학당에서는 세계선교의 꿈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마운트 헐몬 고등학교에는 우리 한국 유학생들만 수백 명에 이른다.
복음의 능력, 곧 꿈과 미래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강력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명감 그리고 열정과 불타는 의지,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의 정체된 현상과 침체를 새롭게 하시는 원천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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