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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각성의 사명’을 감당하다

김재성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2. 4. 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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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각성의 사명’을 감당하다

 

 

< 김재성 목사,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 >

 

 

“세대를 이어 임무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 헤아려 우리 길 가야”

 

“교회의 갱신 과제 아무리 힘들어도 개혁 정신 포기할 수 없어”

 

 

<교단 설립 30주년을 맞아 교단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향후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교단설립 30주년 기념논단을 준비했다. 이에 “각성을 촉구하는 소명 의식을 분명히 하자”는 주제로 5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시작하는 말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다음 세대의 주역들이 등장한다. 올해는 우리 교단이 출범한 지 벌써 30년이 된다. 그동안 우리의 노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제 어디를 향해서 노력해야 하는가 점검할 때가 된 것이다.

 

30년이 지나고 나니 벌써부터 세대교체가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미 우리 교단과 발맞추어 왔던 합동신학원의 교수진은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목회 현장에서도 역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의 새롭고 놀라운 은혜가 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세대를 이어서 임무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점검하고자 한다. 이 글을 시작함에 있어 먼저 출애굽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출애굽을 경험한 광야 세대와 새로운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의 임무가 달랐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광야 40년이 지나면서 개척자의 세대가 지나가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복지로 입성했다. 광야세대는 출애굽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해 잦은 불신앙으로 인한 진노를 당하면서도 새로운 세대를 준비시키는 섭리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있었다.

 

이 두 세대, 즉 광야교회의 세대와 가나안 입성의 세대는 단순히 나이차이, 세대차이, 경험의 차이가 아니었다. 애굽의 옛 종교, 낡은 습관, 혼합된 생각을 가진 자들은 새 가죽 부대에 들어갈 수 없었다.

 

30년 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한국 장로교회는 새로운 변혁의 과정을 겪었다. 합신 교단과 합동신학대학원을 만들어내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합신 교단의 지난 30년은 한국교회의 한세대를 새롭게 장식하고 준비하신 새로운 세대가 되는 것이다. 세계선교와 통일 한국의 세대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교단을 미래를 준비하는 세대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남은 자들은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사용하시리라 믿는다.

 

우리 믿음의 동지들이 지내온 지난 30년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 간 처음 세대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시는 섭리 가운데 은혜를 주실 것이라 믿고 감사드린다.

 

한국교회사에서 지난 30년 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특히 합동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뭉쳤던 우리들 모두가 해낸 일들은 과연 무엇으로 기록될 것인가? 이제 조용히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기에 “각성의 사명을 감당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장로교단으로 분열되었다거나, 조그마한 신학교가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경종을 울리고 신선한 자극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교회의 성숙을 이룩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가 한국 교회를 향하여 ‘각성의 사명’을 감당했다는 점을 감히 자평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초기 내한했던 선교사들의 손길을 통해서 씨를 뿌리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혼란을 통해서 순교의 제물이 많이 나오게 하셨다. 그 다음에는 부흥의 시대에 양적인 성장과 팽창을 주시고 세계로 뻗어 나가서 선교의 역량을 펼치게 하셨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한국교회가 갑작스러운 성장에 도취해서 스스로 동맥 경화증에 빠질 무렵 1980년에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여 정의감에 사로잡히게 하고, 자정 노력을 하게 하신 것이다.

 

1. 새로운 세대 준비케 하신 하나님

 

필자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보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교회 마당에서 뛰어놀면서 탁구도 배우고, 문학의 밤을 열고, 눈물의 금식기도 등 청소년기의 꿈과 사랑을 가꾸었다. 교회마다 특별 집회가 수시로 열렸고, 우리는 마냥 도시에서 오시는 부흥 강사 목사님들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지난 198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 한국교회는 폭발적 부흥과 엄청난 양적 성장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각종 부흥회, 기도회, 사경회, 대성회 집회 등 벽보와 프래카드가 있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국 어디에서나 천막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복음을 향해서 몰려들었다. 가난과 무지를 떨치고자 교회로 모여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복을 주셔서 한국을 성장시키고, 대도시에는 인구집중 현상이 증가되면서 대형 교회가 우뚝 서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를 향해 화려하게 사용하신 시대였다.

 

이런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함량 미달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독버섯처럼 솟아났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노회를 장악하고, 더 나아가 총회의 임원직을 맡아서 종교권력을 차지했다. 그들은 세속 정치가들과의 유대 속에서 지역 유지가 되었고, 출신 지역을 유대의 고리로 삼아서 자신들끼리만 교단의 업무를 장악하였고, 신학교에서는 이사진으로 포진하여 학사업무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을 우리는 교권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하였는 바, 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교단 내의 일들이 전적으로 조종을 받았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통렬한 자기 반성과 뼈를 깍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러한 불량품 양산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의로운 나팔수로, 새벽을 깨우는 파수꾼으로 하나님은 일부나마 깨우쳐 주셔서 교수, 목회자, 재학생들이 합동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과 정화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2. 각성운동의 표상으로서 합신

 

하나님은 각성의 세대를 준비시키고, 우리 합신 교단으로 하여금 한국교회를 깨우는 일을 맡기셨다.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기에 교회의 아들들로 자라난 세대 가운데서 뽑으신 자들로 하여금 성찰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1979년과 80년은 권위주의로 치닫던 한국 사회의 혼돈기였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과 이어진 군부통치 시대는 절망을 몰고 왔다. 이때 일부나마 교회의 갱신을 통해서 깨끗하고 투명한 교회환경을 추구한 것이 바로 합신 교단으로 모아진 ‘각성 운동’이었다.

 

합신 교단이 그동안 30년에 걸쳐서 마음을 모으며 노력해온 것을 집약해 보면 교회 갱신의 열정과 정의감에 넘치는 투지와 굳센 의지를 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의 모임이기에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을 운영함에 있어서 세속정치의 형태를 과감하게 벗어야 한다는 목마름이 간절했던 것이다.

1979년과 1980년, 이 두 해에 걸쳐서 순수하자 하는 열정은 남달랐다. 한국 정치가 요동치고 있던 위급한 시기, 사회가 어둡고 암담하던 시기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부 신학생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새로운 반성과 각오를 다졌었다.

 

필자는 이런 과정을 이미 “합동신학대학원 20년사”에 소상히 밝힌 바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생성된 새 교단과 신학교 재단은 비록 숫자는 작지만 교회 지도자들의 회의답게 명예와 권세를 부정한 방법으로 매수한다거나,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전용물로 중요한 직위를 독점하지 않았다. 교회 정치와 교단의 행사를 총의에 따라서 운영했고, 한국교회의 귀감이 되어 왔다.

 

30년 전,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새로 만든 교단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마치 무인가 집단처럼 불필요한 오해를 받았었다. 하지만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개척함에 있어서 꿈이 있었고, 오직 기도 가운데 주시는 열심만을 가지고 맨주먹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합동신학원의 설립과 발전, 성장 과정에서도 고난을 이겨내는 인내와 의지를 갖고 힘을 합쳤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박윤선 목사님의 명성과 인격을 자원으로 삼아서 모자라고 부족한 후학들이 큰 자부심을 가지고 뭉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나갔다. 교단의 초기 지도자들은 은퇴하였고, 처음 세대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선한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문제는 이제 중심이 된 지도층 세대가 어떠한 방향으로 헌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3. 개혁과 갱신의 기본 이념

 

혼돈된 신앙풍조는 말씀보다는 체험, 구원역사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치우치고 있다. 목회방법론이 변질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 신앙은 지속적인 갱신과 역동성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독교 신앙인들의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을 향해 가는 길이다. 특히 오직 성경을 의존했던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개혁주의 신앙의 본질은 ‘지속적인 갱신’이었다.

 

한국 장로교회가 선교백주년을 맞이하던 시기, 지금부터 정확히 30년 전에 부르짖었던 바램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지속적인 갱신’에의 요구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어야 할 때이다. 단순히 교회 정치에 대한 혐오와 거부와 배척이 아니라 모든 예배와 교회 제도, 교회 정치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경건한 생활과 언행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해야 할 때이다.

 

1979년 말과 1980년도에 부닥친 일련의 교단과 신학교 사건들 가운데서 ‘교회 갱신’을 이루고자했던 열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한국교회는 신학적인 입장을 놓고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이후로, 보수적인 교회는 권위적인 교권주의자들의 세상으로 변질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한국 장로 교단의 사무실과 신학교에 재단법인을 좌지우지하는 정치목사들의 행태가 신학의 권위를 흔들어 놓는 부도덕한 사태에 대해서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갱신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의 입학 과정에서부터 학사 운영과 재정, 교직원 인사 등 전반에 대한 교권주의적인 목사들의 개입은 원칙과 정의를 무너뜨렸다.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던 성경주석학자 박윤선 박사와 대다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복윤 교수, 김명혁 교수, 윤영탁 교수, 박형용 교수, 최낙재 교수, 그리고 윤남중 목사, 홍정길 목사 등이 참여했다.

 

또한 총회장을 역임한 분으로 온건하게 목회하던 노진현 목사, 교회의 법에 해박하여 엄정한 논지를 세우던 김상도 목사, 철두철미한 신앙으로 경건한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장경재 목사 등 교계 원로들이 “개혁선언서‘를 발표한 젊은 신학생들의 외침에 호응하였다.

 

당시에는 한국 정치가 민주화를 향해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군사 정권의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끼던 시대에 장로교회가 직면한 초미의 관심사는 부패한 교회 일부 정치꾼들의 횡포였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교단 내에는 교권을 행사하는 ‘그룹’이 십 수 년 간 견고하게 결성되어 있었다. 이를 부당하게 여기는 여러 주장들이 전국 총회에서 격돌하게 되었고, 급기야 여러 개의 교단들로 분열되었다.

 

민주적이며 투명한 회의운영을 주장하는 신진 세대의 바램이 좌절당하면서 ‘교단 정치의 부패’는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당시 합동측 안에는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진 두 그룹이 있었는데, 이는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단합된 것이었다. 이 양쪽 모두를 중도에서 온건하게 권고하고 연합된 교회를 지탱하려했던 분들이 뜻을 모으고 세운 교단이 ‘합신’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복으로 엄청난 성장기에 있을 때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기치를 내걸고 갱신과 타성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했다. 그것이 교회 개혁과 갱신의 요체이자 핵심이라고 믿었다.

 

4. 포기할 수 없는 개혁정신

 

갱신은 어떻게 이루어 하는가? 파괴와 분열, 나뉨과 대립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의 갱신은 예수님처럼 섬김과 사랑으로 이루어야 한다. 교회의 갱신 과제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앙을 귀감으로 삼고 이겨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의 제자들의 순교,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박해를 통해서 하나의 연속된 능력을 모든 세상에 드러냈다. 로마 제국의 간악한 박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순교 신앙에서 결코 죽지 않는 생명력을 나타냈다.

 

처음 사랑을 고난 속에서도 간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교회는 고속적인 경제성장의 여파로 인해서 양극화되었다. 대도시에는 풍요한 교회들이 있지만, 도시의 변두리와 농어촌 지역에는 자립이 힘든 교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아직도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작은 교회들을 섬기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여있다. 그래서 초심을 지켜나가려는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아주 초라하고도 가난하게 시작한 정신을 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http://rpress.or.kr/xe/index.php?mid=planning_special&page=6&document_srl=2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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