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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찬미와 노래 (조병수 교수)

조병수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4. 2. 1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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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하거나 말씀으로 충만할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엡 5:19; 골 3:16). 여기에 사도 바울은 비슷한 단어 세 가지를 열거한다. 시와 찬미와 노래는 서로 구별되는 것이 분명하다.

 첫째로, "시(詩)"는 대체적으로 초대교회에서 하나의 전문용어로 사용되었다. "시"는 구약의 시편(눅 20:42, 행 1:20; 13:33)이나, 구약의 시가서(눅 24:44)를 의미하였다. "시"는 격렬한 음의 높낮이와 길고 짧음으로 이루어지는 곡조를 가진 노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시"는 간단한 운율에 따라 낭송되는 글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전 14:26에 나오는 찬송 시도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찬미"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면서 부른 찬송이나(마 26:30/막 14:26),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부른 찬송(행 16:25) 같은 것을 의미한다. "찬미"는 분명히 곡조를 가지고는 있지만 특정한 악기 없이 부르는 노래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와 제자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감람산으로 가는 저조된 분위기에서나,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감금된 험악한 상황에서 무슨 악기를 사용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째로, "노래"는 엡 5:19와 골 3:16을 제외하고는 오직 계시록에만 나온다. "노래"는 악기를 가지고 곡조에 맞추어 부른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 "노래"는 모두 악기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5:8∼9; 14:2∼3; 15:2∼3).

 그러면 초대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무슨 악기를 사용하였을까? 초대교회는 당시의 그리스-로마 문화권 내에서 사용되던 악기들의 모든 종류를 알고 있었다.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과 같은 인물들 뿐 아니라 예수께서도 이러한 악기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관악기로는 나팔(히 12:9)과 피리(마 14:17), 타악기로는 꽹과리(심벌즈, 고전 13:1), 현악기로는 비파(고전 14:7; 계 14:2)를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탕자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악기를 종합한 심포니에 대하여도 언급을 한다(눅 15:25).

 하지만, 초대교회가 예수, 바울, 요한을 통하여 이러한 악기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예배에 허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계시록으로부터 이 사실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동반된 악기는 유일하게 비파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초대교회는 예배에 있어서 악기 사용에 관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영적인 예배(롬 12:1), 신령한 제사(벧전 2:5)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세속적인 악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일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시와 찬미와 노래는 이렇게 갈고 닦여진 길에 들어서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초대교회의 예배와 현대교회의 예배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다양한 방식의 찬송이 있었다. 시편 또는 시가서를 간단한 운율에 맞추어 읽는 것, 특정한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것, 선별된 악기를 사용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모두 찬송으로 이해되었다. 이렇게 볼 때 현대교회가 찬송과 관련하여 현란한 곡조를 좋아하고, 무분별하게 악기를 동원하고, 요란한 율동을 동반시킴으로써 인간을 만족시키는 음악 일변도로 나아가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히 초대교회는 악기 사용에 있어서 아주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 등의 모든 악기를 익숙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제한된 악기만을 예배에 합당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비하여 현대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미명하에 온갖 세속 악기들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교회는 잘못하면 저주받을 바벨론의 음악(계 18:22)으로 전락하지 않을지 심히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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