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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복수 神的 複數

조병수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4. 6. 1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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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교수

수 속에는 무엇인가 신비가 있다. 그래서 수비학 (數秘學, numerology)이라
는 것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가 보다. 수비학은 수의 비밀스런 법
칙과 조직으로 인간의 운명을 계산해보려는 일종의 수학적 점술로서 밀의종
교 (密儀宗敎, esotericism)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성
경적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어떤 수비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수의
신비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른 바 신의 수비학
으로서 삼위일체 진리이다. 한 하나님이 세 위격을 가지고 있다는 하나님의
단수적 복수 또는 복수적 단수가 바로 신의 수비학이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수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삼위일체에서는 위대한 동등성이 있기 때문에 그 신성에 있
어서 성부가 성자보다 크지 않으며, 성부와 성자가 합하여도 성령보다 크지
않다. 또한 삼위일체에
서는 어느 위격도 삼위일체보다 작지 않다".

동그란 세모나 모난 동그라미를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고 차가운 불이나 뜨
거운 얼음을 상상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삼위일체 신비는 성경진리의 가장 난해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진리이다. 삼위일체 진리는 배타하는 조화와 조화
하는 배타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힘들고 내포하는 외연과 외연하는 내포를 파
악하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는 하나가 셋보다 작지 않고
셋이 하나보다 크지 않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는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
이다. 우리 인간에게 복수보다 작지 않은 단수와 단수보다 크지 않은 복수를
이해하는 것과 언제나 단수인 복수와 언제나 복수인 단수를 이해하는 것이 어
떻게 가능하겠는가? 인간의 수비학 가운데 이보다도 더 신기하고 오묘한 수
의 법칙과 조직이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 전
진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한 후에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
도도 한 분이라고 말한다. "하
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
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
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언급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바
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언급에 연결된다. 이 두 가지 언급 사이에는 아무런 분리
가 없다. 두 이야기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한 분 하나님 곁에 그와 동격인 또 한 분이 있다. 무한자 곁에 그와
구분되는 동격의 무한자가 있는 것이며, 절대자 곁에 그와 다른 동격의 절대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존재의 방식은 양립적인 대결적 구도도 아니
며 종속적인 흡수적 구도도 아니다. 이것은 상호간에 구분과 동등이 표현되
는 관계적 구도이다. 한 무한자와 다른 무한자의 마찰적 충돌이 아니라 조화
적 관계이다. 따라서 이것은 양자의 외적 대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조
화를 뜻하는 것이다.

한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다. 하나님은 자
신을 한 분이라고 설명하시며
동시에 세 인격으로 구분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Calvin, Inst.
1.13.2).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한 하나님에게 세 가지 본질이
중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triplex Deus), 한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분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tribus personis lacerari) 피해야 한다는 것이
다. 세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한 하나님이 삼중적 본질이나
삼분할적 인격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에 접근하는 우리는 작
은 수를 자랑할 것만이 아니며 적은 수로 만족할 것만도 아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에 경악하는 우리는 큰 수를 꿈꾸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큰
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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