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모든 것이 신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해와 달
같은 것들에게서 초자연적 실재를 느끼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일시를 사는 것으로 그만인 생물이 신격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금
이나 은 그리고 나무나 돌 같은 것들이 인위적인 기술로 가공되어 신으로 경
배를 받는 것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한시적인 생명을 가진 것들이나 생명이 없는 것들을 섬기는 행위에
대하여 예로부터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격렬하게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우상
을 예배하는 것처럼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없었다. 그들
이 여러 곳에서 우상의 허무함을 낱낱이 지적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탄의 대상이었던 우상 숭배
우상은 정말로 교묘한 것이다. 해나 달이든지, 사람이나 동물이든지, 금은
과 목석을 신으로 삼는 사람들이 사실상 그것들의 실체를 모르는 바가
아니
다. 사람들은 실제로 하늘에서 운행하는 일월성진과 땅에서 움직이는 생물들
그리고 집안에 모셔둔 귀금속과 나뭇조각을 이성적으로는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을 세뇌하여 애써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상은 인간의 욕심이 형상화된 것이다. 우상은 인간 욕심
의 거울이다.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그대로 취하든지 아니면 기술적으로 새로
운 형상을 만들어내든지 우상숭배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투영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숭배에서는 타인은 없고
자신만 있다.
우상숭배가 어차피 죽은 것을 대상으로 삼거나 혹 살아있다 하더라도 한시
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생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생명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만 타인의 생명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가치가 있지
만 살려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기적인 우상숭배자들
예를 들어 전쟁은 인간의 욕심이 극대화된 것인데 어떤 방식으로든지 전쟁
의 배후에 우상숭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 때
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
로부터 부인할 수 없이 배운다. 그러나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
고 살려낸다는 것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하나님을 묘사하는 말 가운데 가장 멋진 것은 "살아 계신"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한 단어에 지나지 않지만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성 뿐 아니라 창
조와 섭리와 구원의 능력까지 들어있다. 그래서 이 말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계신"이라는 수식어는 하나님이 어떤 종류든지 우상에게
서 극한적으로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거리상으로 먼 것이 아
니다. 하나님이 우상에게서 극한적으로 먼 것은 특히 생명의 문제에서 그렇
다. 살아있다는 자동사적인 성격에서도 하나님은 우상에게서 멀지만, 살려낸
다는 타동사적인 성격에서는 하나님이 우상에게서 훨씬 더 멀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살아있고 살려낸다. 하나님은 죽지 않고 영존하며, 죽
은 자를 영생으로 불러낸다. 생명과 관련하여 하나님에게서 살아있다는 자동
사와 살려낸다는 타동사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살아있기에
살
려내고, 살려내기에 살아있다.
생명의 근원자이신 하나님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행 17:28).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욕심이라도 작용할 수가 없다. 하나님에 의하
여 생명과 활동과 존재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고집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
혜에 의하여 인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욕심을 버린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만일에 누군가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한
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더 이상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우상처럼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으로 인간의 욕심이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 주어진 과제는 인간의 욕심을 제거하고 살아있
는 것과 살려내는 것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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