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교회들이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건축에 문외한이라도 예나 지금이나 집을 짓는 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웬
만하면 다 안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듯이 아무리 급해도 대지 없이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공중에다 정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불
가사의니 뭐니 하는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집이 어디에 자리잡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우
리로서는 집터의 중요성을 조금치도 외면할 수가 없다. 그 뿐 아니다. 공법
이 놀랍게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건물에 그것을 버티기에 힘이 넉넉한 기
둥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역사에서 증명되었
듯이 기둥이 부실한 빌딩은 심각한 재난을 불러일으켜 재산에만 아니라 인명
에도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하기 때문이다.
터잡기가 바로 되어야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이 집은 진리의 기둥이며 터라고 규정하였다. 개념상 기둥은 수직적인 성격
을 가지며 터는 수평적인 성격을 가진다. 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기둥은 반
드시 수직이어야 하며, 아무리 넓은 건물이라도 터는 반드시 수평이어야 한
다. 참으로 건축의 철학은 수평과 수직의 조화에 의하여 결정된다.
건축은 가로와 세로의 미학이다. 건축은 하늘로 솟는 것과 땅으로 펴는 것
을 이해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수평과 수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무시
하는 사람은 집을 지을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은 가로와 세로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뼛속 깊이 새겨 넣기 전에는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사도
바울은 이 말로써 교회에서 수평이든 수직이든 어느 하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
는 것은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수평, 수직 조화 이뤄야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진리는 교회의 기
둥이며 터라"고 말하지 않고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터라"고 말하고 있다
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교회는 진리로 말미암아 그리고 진리 위에 선다
는 의
미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진리가 교회를 위한 버팀목과 설자리라
는 의미이다. 이때 진리가 없으면 교회는 터를 빼앗기고 기둥을 잃은 집처럼
무너진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함으로써 교회의 사명
이 무엇인지를 강조한다. 교회는 진리의 버팀목이며 설자리이다. 바꾸어 말하
자면 진리는 교회를 의지해야 하며 교회에 근거해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유
지하고 진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몸을 기대지 않고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진리는 위험하다. 그래서 교회가 없으면 진리는 기반도 상실하
고 지주도 상실한 것이 되고 만다.
교회가 진리의 버팀목 되어야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함으로써 진리를 떠난 교회가
위험한 만큼 교회를 떠난 진리도 위험하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다시 한번
힘주어 강조하거니와 진리를 잃은 교회가 위험한 것처럼 교회를 잃은 진리도
위험하다. 진리는 오직 교회로 말미암아 그리고 교회 위에 존재해야 하기 때
문이다.
교회 없이 존재하려는 진리는 기둥이 없기에 무
골신체와 같고, 교회 밖에
존재하려는 진리는 터가 없기에 공중누각과 같다. 교회와 관계를 끊은 진리
는 터와 기둥이 없는 집처럼 불안하고 위험하다. 진리는 오직 교회에 의존하
고 근거할 때만 안정하고 안전하다. 교회만이 진리를 진리 되게 만들기 때문
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표명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권위이다. 하나님
의 집인 교회의 권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를 진리 되게 하는 것이다. 진
리의 기둥이며 터이기에 교회는 찬란하게 빛난다.
교회와 진리는 불가분리의 관계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는 진리가 의지할만한 기둥이 되지 못하며
진리가 근거할만한 토대가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교회
가 진리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고 진리를 보호하는 데 열심이 없기 때문이
다. 교회는 진리에게 지주도 기반도 제공하지 않는다. 교회는 부실한 기둥이
며 불안한 터전이라서 진리는 교회에 몸을 기댈 수도 없고 뿌리를 내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진리는 기둥도 터도 잃고 저렇게 애처롭게 방황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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