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81)
딤전 4:14
가볍게 여기지 말라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말은 특히 나
에게 목사 안수를 받던 날을 기억나게 한다. 나는 신학교 동기생들보다 훨씬
늦게 목사가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만 번번히 기회를 놓치
고 말았기 때문이다.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안수를 받는 사람들 가운데 마침 내가 제일 나이가 많
다는 이유로 축도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귀한 직분
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송구스러워서 축도의 첫 마디를 꺼내놓고는 왈칵 눈물
을 쏟아내고 목이 메어 한참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다보니 지금은 그때의 감격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첫 마음이 사라지
고 만 것이다.
처음 축도 감격 못잊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개역개
정)고 권면한다. “네 속에 있는 은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지
만, 문맥상 목
회의 은사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앞 단락에서 목회와 관련된 몇 가지 사항들을 디모데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디모데는 신자들에게 명하고 가르쳐야 하며(11), 신자들의 본이 되어야 하고
(12), 성경을 연구하여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13).
이런 모든 행위는 목회를 가리킨다. 목회는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은사이다.
디모데는 목회라는 은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네 속에 있는 은사”가 목회를 뜻한다는 것은 그것이 “장로회의 안수와 함
께 예언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장로회는 목
회자를 세우는 공식적인 기관이며, 안수는 목회자를 세우는 공식적인 방법이
다.
예언은 장로회가 목회자를 세울 때 행사하는 신기한 언어사건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목회자의 사명을 체계적으로 일러주는 설교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리
가 없다. 이렇게 볼 때 디모데가 가지고 있던 은사는 장로회의 안수와 함께
예언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목회의 은사였던 것이다.
목회 은사 가진 디모데
디모데는 장로회의 안수와 함께 예언으
로 말미암아 목회의 은사를 받았다. 이
것이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이때 디모데는 목회자의 뜨거
운 소명을 받았을 것이다. 디모데는 목회의 은사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불처
럼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목회자로 안수하는 장로회의
신뢰 앞에서 순결한 목회자의 삶을 각오했을 것이다.
신기한 언어사건으로든지 아니면 목회자의 소명을 일러주는 설교로든지 예언
을 들으면서 디모데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회자의 길을 다짐했을 것이
다. 이런 것들이 목회자로서 디모데의 초심이었을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본 것 같다. 디모데도 초년병 목회자로서 가졌던 순수한 초심을 잃어버
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순수한 초심 잃을 수 있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건을 연습하라고 말하거나(7),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말하거나(13), 진보를 나타내라고 말하거나
(15), 이 일을 계속하라고(16) 다그치는 것
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도 바
울은 시간이 지나면서 디모데의 초심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초심이 변하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초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처음에 직분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업에 대
하여 순수한 열정을 가졌던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냉랭해지고 세속적인 모습
으로 변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생리를 환하게 배우면서 능구렁이 목사가 되
고, 성도들은 교회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무감각한 각질 신자들이 된다.
열정 식지 않도록 노력해야
목회자에게서도 성도에게서도 처음으로 직분을 받을 때 맛보았던 감격이 사라
지고 모두 요령껏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된다. 교회의 타락은 이렇게 시작
된다. 교회의 타락의 성향은 초심의 감동을 상실한 매너리즘에서 극명하게 나
타난다. 교회의 회복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초심
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