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82)
딤전 4:15
진보를 나타내라
역사는 속도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꾸준히 진보
가 있었다. 발빠른 짐승을 탈것으로 이용하던 인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기
관을 발명하여 이동거리를 좁혔다. 소리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인간의 염원
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실현되기까지는 그 이전의 시간을 고스란
히 희생해야 했다. 그만큼 소리의 속도에 도달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
이었다.
인류는 속도 향상 추구해 와
하지만 인간은 속도의 진보에서 속도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과거에 음속의 한계를 넘어서자마자 빛의 속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
고 그런 말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의 속도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인
간은 속도에서 진보한다.
사도 바울은 무한의 속도를 맛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세의 왕이신 하나님을 믿었고 영원한 생명을 담지하였다(딤
전 1:16-17)
. 사도 바울이 하나님에게서 느낀 시간의 속도와 영원한 생명에
서 감지한 시간의 속도는 이미 인간의 계산방식을 넘어서 있는 것이었다. 하
나님의 빛이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이듯이(딤전 6:16) 하나님의 속도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속도이다. 신의 속도는 영원의 속도이며, 영원에서는
속도가 순간보다도 빠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속도는 이
미 속도가 아니기 때문에 빠름도 느림도 없다. 그래서 구태여 비유하자면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을 뿐이다(벧후 3:8).
이런 사도 바울이 진보를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음속이나 광속 혹
은 생각의 속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진보를 말한다면 신의 속도를 알고 있
는 사도가 진보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으로 말해서 시간에서의 속도를
아는 사람들이 진보를 추구한다면 영원에서의 속도를 아는 사람들이 진보를
추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보를 나타내는 것은 신의 속도와 영원의 속도를
알고 있는 신자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진보하는 것을 그렇게 힘썼을 뿐 아니라(빌 3:14) 신자들에게서도 믿음의 진
보가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힘썼던 것이다(빌 1:25).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
의 생각은 매우 간단하다. 신자는 마땅히 진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는 신자의 생명력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진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들을 주의하라, 이것들 안에 머물라” (나의 번역). 사도 바울은 “이
것들”로 앞에서 언급했던 읽는 것,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13). 진보를 위하여 신자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성경을 연구하
여 권면하고 교육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소홀
히 하거나 태만히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성경연구와 그에 기초한 권면
과 교육은 신자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신자에게 삶의 일부가 아
니라 삶 자체여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신자는 반드시 진보하며, 그의 진보
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는 퇴보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불안한 자세로 현실을 지
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퇴보하지 않기 위해서 불쌍하게 몸부림친다. 게
다가 퇴보를 막아보겠다며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방법들을 찾느라고 혈안
이
되어 있다. 정답은 신의 계시 속에 들어있건만 우리는 인간의 지혜에서 얻어
낸 오답을 선호한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그런 행동이 우리의 퇴보를 얼
마나 더 부채질할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인간적
인 방법으로는 우리의 퇴보가 더욱 속도를 내고야 말 것임을 알지 못한다.
퇴보 염려보다 진보 관심가져야
물론 우리는 퇴보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
야 할 것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는 퇴보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뿐 아니라 진보하지 못하는 것도 두려워해
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우리 시대의 교회들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
럼 보인다. 왜냐하면 진보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는 생각의 속도는커녕 빛의 속도도, 빛의 속도는커녕 소리의 속도도, 소리의
속도는커녕 말굽의 속도도 못 내고 있다. 마치 신의 속도도 영원의 속도도 알
지 못하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