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즐거움 주는 Win-Win 작전”
딤전5:6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문화의 최종목적은 쾌락이다. 사람은 땅을 갈고 양을 치든지, 옷을 입고 집
을 짓든지, 먹을 것을 팔고 마실 것을 사든지 결국은 자신을 즐기는 것을 목
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문화의 모든 형태의 밑바닥에는 쾌락을 지향하는 아
주 끈질긴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속성은 농업, 목축, 패션, 건축, 상
업, 무역 등등 모든 형태의 문화행위에서 예외 없이 발견된다.
쾌락 추구하는 문화생활
그래서 쾌락지향성을 무시한 채 문화를 논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지금은 쾌락이 아예 문화상품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그릇되었다고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쾌락은 문화
의 최종목적이자 최종상품이다. 사람은 자신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문화를
형성하며 문화는 사람에게 자신을 즐기는 것을 상품으로 제공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쾌락은 신앙의 마지막 적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과
부와 관련하여 가르침을 주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여성과 일락을 좋
아하는 여성을 날카롭게 대조시키고 있다(딤전 5:5-6). 비록 논문 쓰듯이 말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도 바울은 이런 대조를 통하여 일반적으로 신앙과 쾌락
이 조화되기 얼마나 어려운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사도 바울의 말마따나 대체로 신앙은 쾌락에 거슬리고 쾌락은 신앙과 부딪힌
다. 보통 하나님을 바라는 것과 자신을 즐기는 것은 완전히 서로 다른 일처
럼 보인다. 우리 주위에 실제로 많은 경우 이런 현상이 짙게 나타난다. 우리
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을 즐기는 쾌락을 추구하다가 안타깝게도 신앙을 고
스란히 말아먹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해설
은 매우 계몽적이다. 예수께서는 여러 곳에 뿌려진 씨들이 어떤 상황을 맞이
하게 되었는지 차례대로 설명해주시면서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들의 처지를 이
렇게 일러주셨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
(눅 8:14 개역개정).
이 비유에서 가시떨기는 염려와 재물과 향락을 의미하는데 이 세 가지는 어
느 정도 점진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처음에는 삶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있
다가 재물을 얻게 되면 결국 향락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 따르면 신앙의 최종적인 적은 쾌락이다. 쾌락은 신앙을 말아먹기 때문
이다.
사도 바울은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한다. 신앙을 잃
어버릴 정도로 쾌락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죽은 인생이다. 그는 살아있어
도 죽은 자이다. 자신에 대한 측면에는 살아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측면에는
죽었다는 말이다. 육적으로 보면 살아있으나 영적으로 보면 죽어있는 것이
다. 이것이 쾌락으로 신앙을 질식시킨 사람의 실체이다.
그래서 그의 쾌락이란 하부에 머물고 상부로 전진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에게서 즐거움을 찾기 때문
이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발견한 즐거움이 자신의 삶에 어떤 즐거움을 주는
지 알지 못한다. 진정한 신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즐거
워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법
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사도 바울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자신에 대한 쾌락을
예리하게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
이 정작 말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겨우 자기
를 즐기는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헛되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사도 바울은 오직 자기만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하
나님을 진정한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으로 자기의 인생을 즐거워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을 즐기는 삶, 헛될 뿐
이것은 하나님에 대하여도 살고 자신에 대하여도 사는 그야말로 영적인 윈윈
작전이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있기에 육적으로도 살아있다. 아니, 조
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사람에게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과 육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