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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 전천년설 비판적 이해

세대주의

by 김경호 진실 2014. 9. 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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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 전천년설 비판적 이해
 
이석봉 기사입력  2014/09/11 [22:13]
한국 교회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분들이 무천년설을 주장하지만  그 말 자체도 맞지 않습니다. 현천년설이기 때문입니다.  무천년설이란 없습니다. 아니 개혁주의 입장에 맞지 않습니다. 1000년 기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를 말하기 때문에 현천년설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현천년설을 지지합니다.

한국에서 요한계시록 연구로 독보적인 이필찬 교수의 글을 발췌하여 올립니다. 분별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 비판적 이해 

한국 교회 취약적인 부분을 양산해 낸 신학적 입장이 바로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다. 총신을 비롯한 큰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역사적 전천년설이 그렇다.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의 차이는 소소하다. 

세대주의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구약의 다윗 왕을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것이다. 교회 시대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방인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 이후에 1000년 왕국 때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구약시대의 약속은 교회 시대는 괄호로 남기고 예수님 재림 후에 1000년 왕국 시대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에 대한 기대가 크다. Back to Jerusalem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가진 사람들이다.

2. 역사적 전천년설

예수님 재림 이후 1000년 왕국이 있다는 것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것을 그대로 받아드린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의 차이는 구약의 약속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성취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 이후에 천년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목회현장에서 신앙생활의 현자에 가면 역사적 전천년설하고 세대주의 전천년설하고 구분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 이후에 1000년 왕국이 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구약의 약속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전천년설 하고 구약의 약속이 예수님 재림 이후에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진다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했던 것이 뭐냐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다.

2007년에 한국 교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구약과 신약 심포지엄(symposium 학술 토론회)을 사랑의교회에서 열었다. <1907년 대부흥운동과 해석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이필찬 교수는 연구 발표를 하게 되었다. 논문을 쓰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1900년 초기에 미국 Niagara Conference가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지역에서 D.L Moody, Stonehouse 같은 그 당시 대부흥사들이 청년을 모아서 부흥회를 했다. “여러분들이 선교사로 나가십시오. 예수님의 재림을 당기십시오” 이런 식으로 도전을 했다. 그 때에 은혜를 받고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왔다. 

그런데 그 분들의 대부분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의 저서를 다 살펴보았다. 그리고 특별히 길선주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해설집>을 보았다. 길선주 목사님은 개혁주의의 대 선배이시다. 그분의 <요한계시록 해설집>은 100%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휴거, 어린양의 혼인 잔치 다 그대로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분이 시한부 종말론주의자였다는 것이다. 1938년, 2002년에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다. 이런 것 까지 명시했다. 

사실 1907년 대 부흥운동에 대해서 우리가 2007년도에 많은 집회를 통해서 1907년 대 부흥운동을 일으키자 라고 하는 운동이 있었지만 정말 1907년 대 부흥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1907년 again을 외쳤다. 물론 그 대 부흥운동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본받아야 될 것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의해서 한국 교회가 100년 동안 배타적 내세주의라든지 이원론적 신앙이라든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부패한 모습을 갖게 할 수 있는 신학적 자양분을 제공했던 그런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1907년 대 부흥운동에서 상당히 배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명히 우리가 1907년은 대 부흥운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승해야 되겠지만 그것이 더욱 아름답게 되기 위해서는 분명히 역사를 반성하고 차후에 이런 것들을 피해보자고 하는 통렬한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하고 역사적 전천년설 하고 목회현장에 가면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목회현장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판을 치게끔 오히려 장로교회에서 신학적인 모호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하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거룩한 분별력으로 자신이 변화되고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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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찬 교수

약력

총신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미국 칼빈신학교(TH.M)
영국 스코틀렌드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P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역임
현 이필찬 요한계시록연구소 소장


저서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 유니온)
내가 속히 오리라(이레서원)
<이 성전을 헐라; 요한복음 1>(엔크리스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히브리서>(이레서원)
<로마서>(이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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