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18)_딤전 6:12b
선한고백
조병수 교수_합신신약신학
소명을 너무 사역과 관련해서만 이해하려는 시도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
서 어떤 일을 맡기시기 위하여 사람을 부르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
떤 사람에게는 전도가 소명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구제가 소명이다.
소명은 영생 위한 부르심 의미해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치유사역을 소명으로 받았다거나 찬양사역을 소명으
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소명이란 근본적으로 영생을 위
한 부르심이다. 여기에 복음의 요점이 들어있다. 만일에 영생에 부르심을 이
해하지 못한 채 소명을 사역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초를 놓지 않
고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근본적으
로 전도를 위한 것도 아니고 구제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영생을 위한 부르심
없이는 그런 모든 것이 처음부터 아예 무의미하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생을 위한 부르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영생에 대
한 신앙을 고백한다. 오늘
날 현대교회에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영생에 대한 신앙고
백이 희미하다는 것이다. 좋게 표현해서 희미하다는 말이지, 사실은 그런 고
백이 부재하다고 말해도 잘못이 아닐 정도이다. 슬픈 일이지만 영생에 대한
설교도 없고 영생에 대한 찬송도 없다.
설교자들은 이 땅에서의 성공과 행복을 말하느라고 분주하고, 신자들은 이
땅에서 뭔가 신비한 것을 체험하고 싶다는 노래를 부르느라고 바쁘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보느라 햇빛을 놓치는 것처럼 현세의 웰빙에 몰두하다가 영
생의 영광을 느끼지 못한다. 가로등 밑을 떠나지 않으면 달의 찬연한 빛을
맛보지 못하듯이 영생을 알려면 일시의 그늘에서 떠나야 하는 법이다.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늘에 속한 것이다. 영생
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어떤 이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으면 지겹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이것은 사랑하
는 사람과 오래 있으면 지겹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사람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 아마도 이런 사람은 시편기자에게서 무릎을 꿇
고 공손
히 한 수 배워야 할 것이다(시 16:11).
또한 영생은 하나님을 영원히 아는 것이다(요 17:3). 사도 바울이 다른 데
서 고백했던 것처럼, 신자는 영생의 세계에서 온전한 지식으로 인한 끊임없
는 즐거움을 맛본다(고전 13:12). 달리 말하자면,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의 연속이다.
영생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신앙을 간직하려다가 이 세상에서
조금 잘못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신자는 영생에 대한 고백 때문
에 금생에서 희생하는 것도 감수한다. 또 다른 곳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신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집, 하늘에 영
원한 집이 있는 줄 알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고후 5:1). 그런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의 자존심
을 버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포기하며, 영생의 즐거움
을 위해서 금생의 기쁨을 양보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영생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디모데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영생을 위하여 선한 신앙고백을 한 것을 칭찬
n하면서 가슴속에 두었던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사도 바
울이 이런 말을 하면서 끝끝내 입 밖에 내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면, 그것은 영생을 고백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보여야 할 품위에 관한 것
이라 생각된다.
영생을 고백하는 신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이며, 부요에
도 가난에도 처할 수 있기에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
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을 고백하는 신자는 마음이 너그럽고 넉넉하며,
생각이 여유롭고 부드럽다.
영생을 위해 부름받음 명심해야
보석을 가진 사람은 잡석을 놓고 싸우지 않으며, 하늘을 소유한 사람은 땅
을 위해서 다투지 않는다. 왕궁을 얻은 사람은 모래성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
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세상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내일을 아는 사람
은 오늘에 매이지 않으며, 영생을 고백하는 사람은 금생 때문에 쩨쩨하지 않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