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프란치스코 한국 방문을 신앙고백 관점에서 되돌아봄 (1)

로마 카톨릭

by 김경호 진실 2014. 9. 24. 08:54

본문

프란치스코 한국 방문을 신앙고백 관점에서 되돌아봄 (1)

 

 

 

김헌수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2014{포춘, Fortune}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 50인을 선정했는데 1위는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었다. 그런데 교회의 황제라는 뜻을 가진 교황敎皇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성경의 교훈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교황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게 보인다.1)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의 영세명을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겠다.

 

    아르헨티나 주교였던 프란치스코는 서민적 행보와 사회 약자를 위하는 활동 때문에 교황으로 선출될 때부터 매스컴과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약자들을 위해 일해 온 그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에도 소형차 소울을 타고 다니고, 특급 호텔 대신에 교황청 대사관 관저에서 머물면서 세월호 유가족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고,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인들을 위로했다. 한국 사회는 정치계와 종교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지도력이 부재한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매스컴은 그의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도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매스컴에 묘사된 관점에서가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의 관점에서 그의 방한을 돌아보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배경이 되는 로마교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종교개혁과 그 신앙고백서에 대해서도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이 짧은 글에서는 프란치스코 한국 일정을 살펴보고, 그러한 배경에서 신앙고백서 몇 조문들을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종교개혁 시대에 재발견했던 복음을 우리도 바르게 이해하는 가운데 이번 프란치스코 방문에 대해서도 신앙고백 관점에서 바르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방한과 관련해 공식 홈페이지(popekorea.catholic.or.kr)에 발표돼 있는 그의 <공식 사목司牧 방한> 주요 일정은 아래와 같다.

 

    * 814(): 서울 공항 입국. 청와대 방문 및 대통령 예방. 한국 주교단과 공식 모임

 

    * 815():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봉헌(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초대)

 

    * 성 김대건 신부 생가 터인 솔뫼 성지 방문. 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 연설.

 

    * 816(): 서소문 순교 성지 참배. 광화문에서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 집전. 음성 꽃동네 방문. 수도사 대표 및 평신도 대표 만남

 

    * 817(): 충남 해미 순교 성지 방문해 아시아 주교들 만남. 6회 아시아 청년 대회 폐막 미사 집전.

 

    * 818(): 한국 7대 종단 지도자와 만남. 명동 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집전.

 

 

1. 미사와 예배

 

    프란치스코 공식 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네 차례 미사를 집전한 일이다. 그는 도착 당일에 교황청 숙소에서 행한 개인 미사 이외에도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124위 복자(福者) 시복 미사, 청년 대회 폐회 미사,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인도했다.

 

    오른편에 있는 네 장면을 보면 프란치스코가 떡이나 포도주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축성祝聖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제가 떡이나 포도주를 들고서 축성하면 그 순간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 이른바 화체설化體說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에 명동 성당뿐 아니라 수십만 명이 모인 대전 엑스포 경기장이나 광화문과 같은 곳에서 그렇게 축성을 하면서 미사를 집례했다. 그리고 축성하는 장면을 보도용 자료로 공식 사이트에 올려놓고 있는 것을 보면,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 그의 공식 사목 방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미사와 관련해서는 개신교 신앙고백서에서 매우 분명히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1563년에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0문답 후반부에서 미사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그러나 미사는

    첫째, 그리스도가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사제들에 의해

    지금도 매일 드려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해서는

    그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서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미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이며

    저주받을 우상 숭배입니다.

 

    이 문답에서 우리의 선배들은, “사제의 축성으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이른바 화체설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이다.”고 고백함으로써 그 교훈의 그릇된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화체설 문제점에 대해서는 1647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96절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고백한다

 

    6: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제의 축성祝聖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교리, 이른바 화체설化體說은 성경뿐 아니라 일반 상식과 이성에도 어긋나며, 성례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여러 가지 미신들과 심지어 노골적인 우상 숭배의 원인이 됐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미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한 말로 비판한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구원의 의미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80문답의 앞부분에서는 주의 만찬의 의미를 이렇게 고백했다.

 

    주의 만찬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신

    유일한 제사에 의해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을 확증합니다.

    둘째, 성신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됐으며,

    그분의 참된 몸은 지금 하늘에 있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심을 확증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선조들은 미사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부인한다.’는 점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지금은 하늘에 있고 우리가 성신에 의하여 연합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관심을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로 향하게 하는 화체설을 경계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성신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참된 몸이 있는 곳, 곧 하늘로 들어 올리신다.’는 사실을 성찬의 핵심으로 가르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문은 이 사실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이며, 마치 우리 몸의 지체들이 한 영혼에 의해 살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 성신에 의해서 영원히 살고 다스림을 받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성찬에서 누리는 신령한 교제를 표현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늘에 함께 앉힘을 받았고(2:6),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예배를 드리며(12:22~24), 성신과 믿음으로 하늘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 칼빈이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늘로 이끌어 올리려고 하시는데 화체설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주장이다.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사제의 축성으로 눈앞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일이고, 신앙의 물화(物化)이다. 신앙의 물화는 이어서 살펴볼 마리아의 승천, 성인과 성지에 대한 로마교회 가르침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2. 마리아 승천 미사와 교황의 무오설

 

    프란치스코는 대전 엑스포 경기장에서 마리아 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고 그때에 세계적인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인 조수미씨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마리아가 육체로 승천했다.”고 하는 815일에 기념 미사를 대대적으로 집례한 것이다.

 

    미사에 대한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라는 말이다.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너머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에 여신 숭배의 전통이 있는 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으나 여신 숭배 전통이 마리아 숭배를 통해 교회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기보다는 마리아를 통해 기도하면 더 효력이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리아가 가졌던 신앙을 잘 배우려고 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것이 중세를 지나면서 성인聖人 숭배와 맞물려 점차 그릇된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854년에 이르러 피우스 9세는 마리아는 원죄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하는 교의를 선포했고, 1950년에는 피우스 12세가 마리아 육체 승천을 교의로 선언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이 나오게 된 데에 또 다른 문제점이 내포돼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마리아의 무흠 수태나 육체 승천은 성경에 없는 내용이지만, 로마교회에서는 교황이 그의 직위에서 교의를 선포하면 그것은 무오(無誤)한 것으로 인정되고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에 의거해 마리아론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로마교회에서는 오직 성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도 성경의 권위와 같은 위치에 뒀는데, 그러한 전통의 맥락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이 그 권좌에서’(ex cathedra) 선언한 것은 무오하다.”고 확정했다. 이것은 교황 주장이 공의회 전체의 결정보다 더 무게가 있다.’는 주장으로 성경의 무오한 권위를 허는 일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신앙고백서에서 언급한 마리아의 위치이다. 둘째는 교황의 무오설이다.

 

    첫째, 마리아 승천 대축일 미사라는 것은 16세기에는 로마교회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마리아 숭배 사상은 있었고,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1516~18년 사이에 이탈리아 화가 티티안은 마리아의 승천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이전부터 로마교회에서는 주님의 동정녀 탄생을 잘못 이해해, 동정녀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고백하기보다는 사람을 높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이델베르크 선조들은 동정녀 탄생에 대해 고백할 때에 인간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성신의 사역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고 고백했다.

 

    동정녀 탄생의 비밀을 고백한 그들은 그 교훈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36: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므로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내 죄를

    그분의 순결함과 온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려 줍니다.

 

    종교개혁 선배들은 마리아가 지녔던 신앙주님의 동정녀 탄생을 이야기할 때에 그것으로 마리아를 높이거나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됐다.”는 식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모두 죄인인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둘째, 16세기에는 아직 로마교회도 교황 무오설과 같이 괴상한 이론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그렇지만 교회의 전통을 성경의 교훈보다 중요하게 보는 일은 그때에도 이미 있었는데, 그 점을 우리의 선조들은 바르게 보고 비판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4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4: 성경의 권위, 곧 그것 때문에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그 권위는 어떠한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진리 자체이시고)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권위가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신자의 신앙에 대해서도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로마 교황 같은 어떤 지도자가 그 자리에서 선언하는 내용을 그 자체로 진리라고 믿게 되면 신자의 신앙은 자연히 수동적이 되고,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는 일은 약해지며, 교회 지도자 한 마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맹신盲信 상태에 떨어지고, 심지어 우상 숭배를 이야기하더라도 그대로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종교개혁 선배들은 맹신을 조장하고 마리아 숭배와 같은 우상 숭배로 인도하는 그와 같은 주장을 용인하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론교황의 무오성에 대한 주장을 보면서 우리는 현대 로마교회가 16세기보다도 더 성경의 교훈에서 멀어졌음을 본다. 중세 말에 있었던 도덕적인 타락은 많이 개혁했다고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더 멀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성약 출판 소식 제93}에서. *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W1PU/66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