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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경건의 학문"입니다. 어떤 주제를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면서 삼위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배의 심정에서만 깨우칠 수 있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서 예배에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활 태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레위기 19장에서 가르치는 거룩함에 대하여서 잠시 생각해 보고, 그것이 경건의 학문을 연마하는 우리에게 뜻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 19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율법과 관계하여서 잘 가르쳐 줍니다. 19장 초두에서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 하고 말씀하신 후에 여러 가지 율법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활의 여러 영역에 대한 율법을 주시고, 그 근거로 "나는 여호와니라" 혹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16번 반복하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율법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본문의 이러한 구조에서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레위기 19장에 기록된 율법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는 말씀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의 강령(綱領)이 되는 말씀도 (레위기 19장에)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강령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레위기 19:17-18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형제가 그릇 행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책선(責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뜻임을 우리는 최근에 고(故) 최낙재 목사님을 통하여서 잘 배웠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9:33-34에 같은 구문이 또 한번 나옵니다.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자기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정확하게 같은 구문입니다. 개역에서 "카모하"라는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를 "자기 같이"와 "네 몸과 같이"로 달리 번역하였을 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은혜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그 명령의 근거를 밝히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나그네를 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던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잘 아는 사람이 나그네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그네를 사랑한다는 것은 목사의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 3:2)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딛 1:8)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나그네를 잘 대접할 수 있을까요?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르게 대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나그네에게 물 한 잔이라도 잘 대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그네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고아와 과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5:3, 5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참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참과부를 "경대하라"고 하였는데, 경대한다는 말은 부모를 존경하듯이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누가 참과부를 알아보고 그를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하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같은 심정의 사람을 알아보고 존경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임을 깨닫는 사람이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잘 돌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정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또한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반대로 자기의 강함을 자랑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큰 성 바벨론에 대하여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계 18:7).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길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알고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과부임을 알고 과부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자의 태도이고, 더욱이 교회에서 직분을 맡거나 직분을 위하여서 준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면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덕목을 망각하면 그의 봉사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 살고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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