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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택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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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5. 3. 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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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택기준

마25:31-40

식당의 선택 기준은 첫째는 음식 맛이고요 둘째는 친절한 서비스입니다.

아무리 친절해도 맛이 없는 식당은 다시 가지 않게 되고요,

아무리 맛이 있어도 불친절한 식당은 다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김선일(실천신학) 교수가 작년에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회심한 크리스천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요.

교회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은 ‘담임목사님의 설교’ 였고요,

두 번째 많은 대답은 ‘교회 분위기’ 였고요,

세 번째 많은 대답은 ‘교인들의 친절함’ 이었습니다.

교회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담임목사님의 설교, 교회 분위기, 교인들의 친절함 순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탄방교회에 새로운 분들이 한달 정도 다닌 후에

담임목사님의 설교, 탄방교회 분위기, 탄방교회 교인들의 친절함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탄방교회에 새로운 분들이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대부분 만족할 것입니다.

탄방교회에 새로운 분들 대부분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에

‘말씀이 좋다’ ‘말씀이 은혜가 된다’ 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올바른 설교가 선포되는 교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요.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설교의 변질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많은 설교가 넘쳐 나지만 올바른 설교를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4:4 찾아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기 때문에 매우 배가 고프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눈앞의 필요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눈앞의 필요를 채우라고 시험합니다.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해서 떡을 먹고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시험합니다.

마귀는 우리 눈앞의 필요를 채우는데 우리의 마음이 향하도록 우리를 시험합니다.

마귀는 우리 눈앞의 필요가 채워지면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고등학생들의 눈앞의 필요는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이고요,

대학생들의 눈앞의 필요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고요,

직장인들의 눈앞의 필요는 승진하는 것이고요,

사업하는 분들의 눈앞의 필요는 사업이 잘 되는 것이고요,

주부들의 눈앞의 필요는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 눈앞의 필요를 채우면 우리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눈앞의 필요인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눈앞의 필요가 채워지면 우리가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눈앞의 필요가 채워지면 다른 눈앞의 필요가 나타납니다.

우리 눈앞의 다른 필요가 채워지면 또 다른 눈앞의 필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요?

사람은 언제 만족할 수 있나요?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어야 만족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어야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매주일 수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많은 설교들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설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 설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설교할 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단 음식만을 먹으면 영양 결핍으로 몸이 약해지듯이,

설교자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설교하게 되면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약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현대 설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탄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건강을 위해 홍삼을 많이 먹는데요.

홍삼이 마시기에 쓰다고 홍삼 한 컵을 큰 주전자에 붓고 나머지를 물로 채우고 나서

마시면 효과가 있을까요?

현대 설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타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죄에 대한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 교인들은 죄를 미워하지 않고 쉽게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아모스8장1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땅에 기근을 보내시는데요.

그 기근은 양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물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양식이 없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고요,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라고 하십니다.

많은 교회에서 많은 설교들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설교가 선포되는 교회는 많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의 시대에,

새로운 분들이 탄방교회에 많이 와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만족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교회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두 번째 많은 대답은 무엇이라고 했나요?

두 번째 많은 대답은 ‘교회의 분위기’ 라고 조사되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를 다른 말로 한다면 기존 성도들 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 온 분들이 볼 때 기존 성도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보이는가 라는 점이죠.

기존 성도들 간의 관계를 상, 중, 하로 평가하면요.

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중은 화기애매한 분위기

하는 썰렁한 분위기 라고 합시다.

여러분들은 탄방교회의 분위기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탄방교회에 새로온 분들이 탄방교회의 분위기를 평가한다면

대부분 ‘상’ 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교회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세 번째 많은 대답은 무엇이라고 했나요?

세 번째 많은 대답은 ‘교인들의 친절함’ 이라고 조사되었습니다.

교인들의 친절함을 다른 말로 하면 기존 교인들이 새로 온 분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하는가?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의 친절함을 상, 중, 하로 평가하면요.

상은 매우 친절하게 대한다.

중은 어느 정도 친절하게 대한다.

하는 조금 친절하게 대한다 라고 합시다.

탄방교회에 새로 온 분들이 교인들의 친절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탄방교회에 새로 온 분들 대부분은 교인들의 친절함 항목에서는

‘하’ 라고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탄방교회 성도님 중에 어떤 분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교인들의 친절함이 ‘중’이지 어떻게 ‘하’ 일수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탄방교회의 ‘교인들의 친절함’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태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대응책도 적절하지 못하게 됩니다.

잘못된 진단은 적절한 대응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할지라도

탄방교회의 교인들의 친절함에 대한 평가가 ‘하’ 라는 진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을 해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어느 시골에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아들이 둘, 딸이 둘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부부는

아들 둘과 딸 둘을 대전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큰 아파트를 사서 두 아들과 두 딸이 생활하면서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두 아들과 두 딸은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네 명이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취직을 하고 나이가 서른 살이 훨씬 넘었는데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골의 부모님이 보다 못해 직접 중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맞선을 통해 만난 여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위해 맞선을 본지 한 달 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을 한 후에도 결혼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동생들과 같이 살자고 하였습니다.

신부는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동생들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회사를 갔다 와서 아내에게는 인사만 하고

동생들하고만 대화할 뿐 아내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생들도 새로 들어 온 신부에게 인사만 할 뿐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는 매우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신부는 그 아파트에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신부는 너무 외로움이 심해서 견디다 못해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 집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외로워서 살기 어렵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이혼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더 참으라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 친정아버지는 큰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맞선 본 지 한 달 만에 시집보내는 것이 아닌데 너무 성급했다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시킬 수도 없고, 매우 속이 상했습니다.

소외감에 눈물 흘릴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 신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탄방교회에 새로운 형제, 새로운 자매를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탄방교회에 새로 온 분들이 이 신부와 같이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탄방교회에 새로 온 분들에 대해 환영하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하지만 환영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쑥스럽고 어색하고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탄방교회에 새로운 분들에게 환영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마25:40절 찾아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임금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탄방교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새로 온 분들입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은 대부분 탄방교회에 5년 이상 출석하신 분들입니다.

5년 이상 한 교회에 출석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교회라는 생각이 들고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새로 온 분들은 모든 것이 낯설고 부자연스럽고 생소합니다.

탄방교회에 새로 온 분들은 기존 교인들의 마음속에

환영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환영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설교 말씀이 좋고, 설교 말씀이 은혜가 되지만,

기존 교인들의 친절하지 않은 태도에 등록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교회를 찾아야 할 지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26:38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그리고 마26:39절에 성부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가롯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부르셔서 몇십명의 군대를 죽이셨다고 합시다.

그러면 가롯 유다가 다시 가서 몇백명의 군대를 데려오겠죠.

예수님께서 또 천사들을 부르셔서 몇백명의 군대를 죽이셨다고 합시다.

그러면 가롯 유다가 다시 가서 몇천명의 군대를 데려오겠죠.

예수님께서 자꾸 천사를 부르기 귀찮으니깐 아예 승천하셨다고 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죽지 않으시고 승천하셨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우리 죄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나요?

우리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외우면 우리 죄가 용서되나요?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 동안 기도하면 우리 죄가 용서되나요?

우리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우리 죄가 용서되나요?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영혼의 극심한 고뇌를 견디셨으며,

그의 몸으로는 극도의 고통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에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예수님에게 드릴까요?

우리가 멋있는 옷을 사서 예수님에게 드릴까요?

우리가 비싼 보석을 사서 예수님에게 드릴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주님께서 탄방교회에 보내신 새로운 형제, 자매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한평생 살면서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외로울 때 네가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고,

내가 외로울 때 네가 나의 손을 잡아 주었고,

내가 외로울 때 네가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

언제 우리가 주님의 외로우신 것을 보고 주님에게 말을 걸어 드렸으며

언제 우리가 주님의 외로우신 것을 보고 주님의 손을 잡아 드렸으며,

언제 우리가 주님의 외로우신 것을 보고 주님의 친구가 되어 드렸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탄방교회에 새로 온 형제가, 탄방교회에 새로 온 자매가

외로워서 혼자 있을 때 네가 다가가서 말을 걸어 주고, 네가 손을 잡아 주고,

네가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느냐?

탄방교회의 새로 온 형제에게 한 것이

탄방교회에 새로 온 자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 후에 그냥 집에 가지 마시고,

청년들에게 가셔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시고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봐 주시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봐 주시고,

객지에서 살면서 힘든 것은 없냐고 물어봐 주시고,

등을 한 번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탄방교회에 새로 온 형제에게 한 것이,

탄방교회에 새로 온 자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탄방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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