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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5. 6. 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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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4-6

 

 

우리나라 속담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라는 속담은

‘남의 일인 듯 무관심한 태도’ 를 보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옆집에 불나면 무관심할 수 있나요?

옆집에 불났는데 무관심하면 안되죠.

옆질에 불났는데 무관심하면 우리 집도 불이 옮겨 붙어서 우리 집도 다 탈 것입니다.

그러니까 옆집에 불이 나면 빨리 119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옆집에 불이 났는데 무관심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 교회에 문제가 생겼는데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 발생한 문제는 조만간 우리 교회에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네! 오늘은 신천지에 대해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신천지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교회에 십년 이상 다닌 교인이 어떻게 신천지에 빠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요.

두번째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가정도 포기하고 직장도 포기하고 학교도 포기하고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신천지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 두가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교회에 십년 이상 다닌 교인이 어떻게 신천지에 빠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하면 일년에 설교를 50번 정도 듣게 됩니다.

십년이면 설교를 500번 정도 듣는 것이죠.

일주일에 두 번 예배에 참석하면 일년에 설교를 100번 정도 듣게 됩니다.

십년이면 설교를 1,000번 정도 듣는 것이죠.

어떻게 설교를 1,000번 이상 들은 교인이 신천지에 빠질 수 있을까?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교를 1,000번 이상 들은 교인이라 할지라도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는

신천지의 독특한 성경 해석법 때문입니다.

신천지의 성경공부에 가면 신천지의 독특한 성경 해석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계속해서 배우다 보면 신천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독특한 성경 해석법은 처음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하다 신기하다’

하면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성경해석법은 모든 단어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천지에서는 비유풀이라고 합니다.

모든 단어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성경해석 방법입니다.

그런데 신천지의 모든 단어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을 배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31-32절 찾아봅시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신천지에서는 모든 단어를 비유로 해석합니다.

밭 : 마음, 씨 : 말씀, 나무 : 사람, 새 : 영

한번 신천지처럼 해석해 봅시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마음에 갖다 심은 말씀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사람이 되매

공중의 영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상하죠?

완전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13장31-32절의 올바른 해석은요.

겨자씨의 비유는 천국의 확장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현재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점점 자라서 장차 큰 나무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과연 천국은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보듯이 온 세계에 확장되었습니다.

누가복음24:4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천국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된다는 의미입니다.

올바른 해석에 비교하면 신천지의 단어 비유풀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천지는 왜 이렇게 모든 단어를 비유로 푸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만희가 재림주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속셈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모든 단어를 비유로 해석하는 비유풀이를 통해 세뇌당하면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도 믿게 되는 것이죠.

이만희가 재림주요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을 해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성경 해석법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요?

폐차 직전의 자동차는 운전할 때 매우 불안합니다.

차가 도중에 멈추어 설까봐 매우 불안해하면서 운전하게 됩니다.

신천지의 성경 해석법의 수준이 폐차 직전의 차정도 될까요?

신천지의 성경 해석법의 수준은 폐차 직전의 차가 아니라

바로 장난감 자동차 정도의 수준입니다.

문방구에서 천원 주고 살 수 있는 장난감 자동차 정도의 수준이

바로 신천지 성경 해석법의 수준입니다.

신천지의 성경 해석법의 수준이 이렇게 낮은데

왜 교회에서 설교를 1,000번 이상 들은 교인들이 신천지에 빠질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한국 교회가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십년 이상 다녀도

신천지의 장난감 자동차 같은 허접한 교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한국 교회는 세계 어느 교회보다 기도에 열심인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 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약 백년 만에 이렇게 부흥된 원인이 많이 있겠지만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교회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장점은 세계 어느 나라 교회 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 교회의 약점은 무엇일까요?

한국 교회의 약점은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잘 정리한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십년 이상 다녀도 신앙고백서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천지의 너무나도 형편없는 교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가정도 포기하고 직장도 포기하고 학교도 포기하고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까?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 안식교, 몰몬교나 다른 이단들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살지 않는데 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천지에 올인할까요?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학생은 학교를 포기하고

직장인은 직장을 포기하고

주부는 가정을 포기하고

심지어 어린아이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지 않고

그렇게 신천지 일에만 열심을 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대한 신천지의 잘못된 해석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4절 찾아봅시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신천지에서는 십사만 사천을 문자적으로 해석합니다.

신천지에서는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면 제사장 노릇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신천지에서는 두 명을 전도해야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 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려면 두 명을 전도해야 하니까,

두 명을 전도하기 위해 학업도 직장도 가정도 다 포기하고

전도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을 만한 사람이 이렇게 제안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나에게 만원을 주면 한달 후에 백만원을 줄께’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달 후에 백만원을 준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원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만원을 줄 것입니다.

비슷한 원리입니다.

신천지에서는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면 제사장 노릇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면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생각에,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족, 학교, 직장 등 모든 것을 다 하찮게 여기게 되므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4절의 올바른 해석은요.

144,000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144,000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를 가리킵니다.

한국 교회의 모든 교회에 신천지 교인들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탄방교회에 신천지 교인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만약 여기에 신천지 교인이 있다면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신천지는 144,000을 마지막 대환난의 시기에 나타날 어떤 사람들로 한정시킵니다.

신천지에서는 144,000을 ‘영적 새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며 ‘알곡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4장3절을 찾아봅시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이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4장3절에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십사만 사천’과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은 문법적으로 동격(同格)이며,

이 둘은 동일한 집단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이라고 했지

‘유대에서 구속함을 얻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온 땅’에서 구원받은 자들이며,

단지 ‘유대인들 중’에서 구원받은 자들만이 아닙니다.

따라서 144,000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며 ‘유대인들’로만 제한하면 안 됩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 또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의 충만한 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인들 중에서와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로

보아야 합니다.

144,000은 특별히 마지막 종말 때에 나타나는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전체를 통하여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천지 교인은 신천지의 잘못된 교리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신천지의 영적 속임수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어! 먼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면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도에 250만원을 사기 당한 적이 있습니다.

250만원을 사기 당했을 때 매우 속상했지만 250만원이 없다고 망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사기 당하면 약간의 돈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영혼의 사기를 당하면 그 피해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속임수에 빠지면, 그 순간에는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때 ‘어! 이거 먼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만 하면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영혼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영혼의 속임수로부터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지

‘동방의 끝에 있는 한 나라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갔을까요?

예수님을 믿을 때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창세전에 이미 우리는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천지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도 포기하고 가족도 포기하고

학업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올인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신천지 사람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십사만 사천 안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십사만 사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생각하며

얼마나 기뻐하십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생활하고 계십니까?

처음 예수 믿을 때, 처음 구원의 확신이 생겼을 때

여러분은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의 감격은 사라지고

감사 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더 많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달려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가 홍해로 들어오자 다시 홍해가 덮으니 애굽 군대가 모두 죽었습니다.

그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기쁨으로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출15:1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광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가 사라지자 애굽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민수기 11장4-6절 찾아봅시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던 때와 비교하면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고기도 먹고 싶고 생선도 먹고 싶고 오이도 먹고 싶고 수박도 먹고 싶고

부추도 먹고 싶고 파도 먹고 싶고 마늘도 먹고 싶다고 불평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 믿을 때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다가

이제 시간이 얼마 지나니까

구원의 감격은 사라지고

환경에 대해 불평을 하는 우리 모습이나

홍해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불평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는 것 때문에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불평합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싶은데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불평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이 세상에 잘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으로 순간 이동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 요단강 앞으로 순간이동을 한다면 고생은 하지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불평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들이 있지만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장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으면서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되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광야로 이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잘 알 수 있도록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삶과 광야의 삶을 비교하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광야로 이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할 때입니다.

과거에 편하게 살던 때와 비교하면서

왜 이렇게 힘든 환경을 주시냐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미워하셔서 광야로 이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광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부러 광야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광야는 매우 외로운 곳입니다.

광야에 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 잘사는 거 같은데

나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서 속상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 있다 보면 내 모습이 초라해 지는 거 같아서 우울해 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을 주시는가 하고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우 풍족한 환경에 있으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하나님과 교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기가 쉽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광야에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광야는 실패의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광야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는

축복의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부족합니까?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천국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깊이 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도 얼마나 서먹서먹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져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불평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한 것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왜 가져가시냐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더 좋은 선물을 너에게 줄 것이다.’

더 좋은 선물이 무엇입니까?

더 좋은 선물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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