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주석
게르하르트 마이어 박사
제1부(1:1-4:11) 번역본.
Edition C Bibelkommentar
Matthäus-Evangelium
Prof. Dr. Gerhard Maier
SCM - Haenssler
문의: 송다니엘 목사.
070-4623-6174
목차
짧은 안내서
제1부 도입: 예수님의 탄생, 소년 시절과 세례(1:1-4:11)
1. 마태복음서 제목(1:1)
2. 예수님의 유래 (1:2-17)
3. 예수님의 탄생(1:18-25)
4. 이방인이 메시아 탄생을 경배하다(2:1-12)
5. 왕의 추적과 애굽으로의 도주(2:13-23)
6. 세례자 요한(3:1-12)
7. 예수님의 세례(3:13-17)
8.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4:1-11)
제2부 예수님 초기 사역(4:12-11:1)
제3부 이스라엘을 얻기 위한 투쟁(11:2-16:20)
제4부 수난(16:21-27:66)
제5부 부활(28:1-20)
역자의 말
짧은 안내서
1. 마태복음은 유대인 그리스도 신자들을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쓰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가장 오래된 교회 문서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25년경에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소아시아의 비숍인 파피아스는 마태가 그 복음서를 „히브리어“로 기록했다고 진술했는데, 이것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했다는 의미이다. 180년경에 리용의 비숍인 이레네우스도 이와 같은 것을 보도한다. 그 외에도 가장 오래된 복음서 서문(약 160-180년경)과 오리게네스는 230년경에 마태복음의 출처가 „유대“라고 했다.
그런데 복음서 자체도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그리스도 교회에서 발생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복음의 필체에는 셈족 언어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로마인들을 위해 쓰인) 마가복음과는 달리 마태는 유대인의 정결의식을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단지 마태만 성전세에 대한 예수님 말씀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 외에는 여기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참고: 마 17:24 이하). 단지 마태만 유대인의 맹세 형식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23:16 이하), 유대 그리스도인만 여기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구약을 자주 인용함으로써 구약과의 연관성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것은 독자가 주로 유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마태만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당시의 유대교 교사들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것은 마태복음이 유대 그리스도인을 위해 쓰였다는 주장을 강화해준다.
2. 마태복음은 또한 복음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본다. 고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증언한다: 파피아스, 이레네우스, 가장 오래된 복음서 서론, 무라토리 정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순서인 마태 – 마가 – 누가 – 요한복음은 복음서가 오래된 순서라고 볼 수 있다. 마태복음서가 진짜 유대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쓰였다면 이것은 기록연대에 대한 하나의 힌트가 된다. 왜냐하면 66-73에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 이후에는 기껏해야 갈릴리에 유대인 교회가 약간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마태가 이들을 위해 복음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 복음서는 66년 이전에 쓰였다고 본다. 이레네우스는 자신도 소아시아 출신인데, 사도 요한의 직제자들이 남긴 믿을만한 소식을 인용해서 마태복음서가 쓰인 정확한 날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였다. 베드로는 64년에 순교하였고, 사도 바울은 61-63년에 로마에서 활동하였으므로(행 28:30), 우리는 마태복음이 쓰인 날짜를 약 60년으로 잡는다.
마태복음서가 쓰인 당시에 성전이 있었으므로(12:5 이하; 17:24 이하; 23: 16 이하), 마태복음서가 이러한 교회사의 증거가 옳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서는 70년 이후에 쓰일 수 없다. 또한 첫 복음서가 첫 교회가 있는 이스라엘 땅에서 쓰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두 문서설 비판: 서문 끝을 참조할 것).
3. 따라서 이 복음서 저자는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사도 마태이다. 고대교회에서 이와는 달리 주장한 적이 없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초대교회가 목격자이면서도 사도와 같이 권위 있는 사람이 직접 쓴 것이 아닌 문서를 복음서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마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주석서의 9:9 이하와 10:3의 설명을 참조하라.
4. 이복음서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1) 마태는 당시의 유대교와 격렬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의 복음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 신지를 알림으로 해서 교회를 변호하면서도 유대인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2) 이러한 이유로 마태는 예수님께서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해 가르치신 것을 특별히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3)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구약과 연결짓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는 자주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사역 안에서 구약이 성취되는 것을 가리켰다.
4) 이렇게 해서 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이 세대(아이온)가 끝날 때까지(마 28:20) 구속사를 펼쳐간다. 마태는 우리에게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5) 무엇보다 마태는 자신이 교사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교사와 성경의 가르침은 그에게 중차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이 구약을 어떻게 설명하셨는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단지 교사만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 즉 전체의 구속사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참조: 11:29; 13:52; 23:8 이하; 23:34; 28:20).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도 교사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6) 마태는 예수님이 누구셨으며 또한 누구 신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족보와 탄생 이야기, 예수님의 어릴 때의 환경과 유대인의 종교적 당파와의 논쟁과 부활 기사를 보도한다. 그러나 교회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누구 신지를 알 수 있으므로, 마태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대적으로 많이 기록한다(참조: 13:49-50; 51-52; 16:17 이하; 17:24 이하; 18장과 23장; 28:16 이하).
7) 마태가 이방인 선교에 관심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복음서 기자 중에 그가 이방인 선교를 가장 중요시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마 28:18 이하를 선교명령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유가 있다. 초대교회의 어느 기록에 의하면, 마태는 그의 생애 말기에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마태의 넓은 안목은, 유대 그리스도인이 좁은 사람들이었다는 선입견을 제거해 준다. 이들은 변화되어 좁은 유대주의를 극복했다. 마태는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변화시켜 새롭게 만드신 좋은 예의 하나이다. 마태복음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서가 된 것은 복음서 내용 때문이다.
* 두자료설 비판
독일 국가신학대학에서는 오랫동안 두자료설을 신봉해왔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마태는 마가복음과 큐(Q: 예수님의 말씀 어록집)을 보고 베껴 써서 마태복음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F. 바우어, Th. 짠, A 쉴라터와 같은 학자는 마태복음이 먼저 쓰였으며 마가복음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마태복음이 먼저 쓰였고, 마가복음과 연관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므로 두자료설은 학설로는 가치가 없다. 이렇게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베끼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마태와 마가가 같은 사건을 설명할 때에 마태가 항상 짧게 설명한 데에서 나타난다. 마태가 마가복음을 베껴 썼다면, 왜 그 많은 것을 생략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역자의 말[1]
Edition C 주석서(앞으로 마이어 주석이라고 한다)는 독일 복음주의(보수적)권에서 가장 애용되는 주석서이다. 게르하르트 마이어 박사가 발행인으로서 그는 네 복음서를 주석했으며 다른 책들은 보수파 루터교 학자들과 복음주의권 학자들이 주석했다. 주석서의 특징은 성경영감론에 입각해서 학문적으로 주석함과 동시에 성도의 믿음 생활에 직접 연관되도록 한 것이다.
주석서, 특히 독일 주석서는 원래 읽기가 어렵다. 그러나 본 시리즈는 평신도를 위해 최대한 쉽게 설명한 것이다. 필자가 느낀 본 시리즈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정통적 성령 영감론을 따른다.
2) 절마다 자세히 주석했다.
3) 기독교 2000년간의 전통이 숨쉬고 있는 학문적 주석이다. 최근까지의 학문 결과를 반영함.
4) 경건한 학자들이 주석했다. 주석가들은 신학박사이면서도 전부 목회의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5) 말씀에 입각하여 실제적으로 어떻게 영적 생활을 해야할지를 분명하게 지도한다. 저자들은 학문적인 용어를 피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현대어를 사용했다.
6) 최대한 읽기 쉽게 번역했다. 번역본을 많은 사람들이 검토해서 불분명한 부분을 수정했다.
마태복음 주석은 독일어로 1000쪽이나 된다. 분량이 비교적 방대하지만 저자 마이어 박사는 매우 밀도있게 표현하였다. 즉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필요하지 않은 말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글의 단점은, 특히 독일 글을 잘 접하지 않는 독자에게는, 가끔 문장 사이의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에는 역자가 괄호로 보충 설명을 했다. 저자는 관련 성구를 괄호에 넣어 표기를 했는데, 그 외의 괄호 안에 있는 설명은 거의 역자의 보충 설명이다. 혹시 통일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읽으면서 앞뒤 문장과의 연결점을 잘 찾아보기 바란다. 평신도에게 생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나 중요한 성구, 긴 설명이 필요한 것은 역자가 각주에서 설명했다. 원래 주석서에는 각주가 없다. 또한 오해가 될법한 단어나 문장은 괄호로 독일어 원문을 실었다.
좀 어려운 부분은 단락 끝에 역자가 „번역자 정리“로 표시하고 중요한 부분을 요약했다.
역자는 이 번역본을 토대로 설교를 썼다. 설교는 번역본을 좀 더 자세히 해설을 한 것이므로, 주석서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역자의 설교를 참조하기 바란다. 설교에서 때로는 주석의 복잡한 부분을 간소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간혹 독자가 생각하기에 저자가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은 이유가 있는데, 주로 독일 신학계를 점령한 성경비평학자들의 이론을 반박하기 때문에 그렇다.
예: 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세례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3:13). 저자가 이란 말을 하는 이유는, 비평학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본문은 될 수 있는 한 개역개정을 사용했는데, 문장의 어미가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표현을 바꾼 경우와, 필요에 따라 원문과 가깝게 직역한 경우도 있다.
독자는 본 주석서를 다음과 같이 이용하면 좋다:
1) 교회에서 설교를 듣기 전에, 혹은 듣고 나서, 관련 본문을 찾아서 읽어볼 것. 그러면 본문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된다.
2) 평소에 생각이 날 때마다, 혹은 의문되는 구절이 있으면 관련 구절의 주석을 찾아서 읽어볼 것. 이러한 방법으로 그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둘 것.
3) 한 권을 선택해서 나름 대로 정리해가며 죽 읽을 것. 결코 지루하지 않다!
4) 구역 예배에 사용할 것. 저자는 각 단락 마다 끝 부분에 구역 성경공부를 위해 자세한 지침을 마련했다.
필자는 현재까지 독일에 30여년 살면서 선교와 목회, 신학 사역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올바른 성경이해를 위해 힘써 왔지만, 그간 잘못 배운 것들이 많아서 혼동 속에서 큰 고충을 겪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에 본 주석서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퍼탈 주석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주석서를 연구하면서 성경 말씀의 깊이를 깨닫고 말씀의 정확성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주석서를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주석에는 구구절절이 주석자들의 거룩함이 묻어나온다. 이들이 나의 신앙의 선배가 되었다.
부퍼탈 주석서의 약점은 각 구절의 정확한 해석보다는 말씀의 깊이를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데에 더 치중한 것이다. 말씀의 한없는 깊이를 보고 경탄하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 결과 필연적으로 각 구절의 정확한 해석에는 소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말씀의 정확한 해석이 더 중요한 한국 독자를 위해 필자는 그 이후에 나온 학문적인 마이어 주석을 번역했다.
그러나 마이어 주석은 학문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성도들의 경건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제적인 영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즉, 적용 면에서도 탁월하다. 이 주석서를 읽으면, 종교개혁 이후 근 600년 역사의 독일 성도의 경건이 그대로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독자는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 말씀인지도 깨닫게 된다.
한국에 이러한 책들이 한국에 소개되지 못한 이유는, 독일 신학이 성경비판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성경비판으로 독일 신학자들이 전 세계 기독교에 대단한 악 영향을 끼쳤으므로, 진지한 학자들은 독일 신학에 별 관심이 없다. 그 결과 끊임없이 이들과 대항하여 싸우면서 교회를 지켜온 놀라운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 간과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성경비판을 반대하기 때문에 독일 국가대학에서 교수로 채용하지 않으므로 독일 외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간 독일에 많은 탁월한 보수적 학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의 글이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척 애석한 일이다. 늦게나마 이들이 집필한 주석서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크게 기쁜 일이다.
역자는 이 주석서가 한국 교회에 크게 이바지할 것을 믿는다. 일반적으로 열심이 많은 한국 신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서 말씀대로 산다면, 방향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본다.
유럽개혁신학원 원장 송다니엘 목사.
마태가 전한 복음
원시교회는 단지 하나의 복음밖에는 모른다. 그런데 이 복음은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가 전한 복음“, „마가가 전한 복음“ 등으로 불러야 한다. 우리가 마태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약식 명칭이다. 필자도 약식 명칭을 사용한다.
제1부 도입: 예수님의 탄생, 소년 시절과 세례(1:1-4:11)
1. 마태복음의 제목(1:1)
마태가 복음서를 집필했을 때에는 „마태복음“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복음서를 1절과 같이 명명했다.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기술한 )책 [2].
이 짧은 제목은 매우 밀도 있게 표현된 것이며 의미심장한 말이다. „역사책[3] – 역사를 기술한 책“(비블로스 게네세오스)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4]의 창 5:1[5]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마태가 이 표현을 복음서의 시작에 사용했다는 것은, „자기가 쓴 책이 창세기와 같이 성경이다“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영감되어 기록했음을 증거한다(참조: 딤후 3:16; 벧후 1:19 이하).
마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함으로써, 마태복음이 구약을 연결해서 쓰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라고 하는데, 구약에 따르면 그분은 세상의 마지막에 오실 구속자요 구원자이시다. 마태는 이것으로써 구약이 기대하고 예비하라고 가르친 그분,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 5:39를 보라!
마태는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과 „아브라함의 아들“로 소개함으로써 이 복음서를 또 한 번 구약과 연결한다. 단순하게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기 때문에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므로, 이곳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의 아들“은 예수님에게 주어진 메시아적 칭호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마 9:27; 12,23; 15:22; 21:9,15; 22:42 이하). 그러므로 마태는 두 개의 메시아 칭호를 연결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스라엘에서 자주 사용하는 메시아 칭호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창 12:3; 18:18; 22:18; 참조: 26:4; 28:14; 행 3:25; 갈 3:8 이하). 그러므로 마태가 벌써 제목에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밝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의 메시아일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위한 약속된 축복(축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전체 복음서의 구상이 그 윤곽을 드러냈다. 즉, 이 복음서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열방의 구원인 예수님에 대해 보도하는 것이다. 이 복음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구약으로부터 시작하여 일관성 있게 예수님의 선교명령까지 보도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 28:19).
우리는 „역사에 관한 책“이라는 말을, „기원의 책“(가정의 족보라는 의미에서 기원)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문맥과 복음서 전체의 구상으로 볼 때에, 이 번역은 너무 좁게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창 5:1을 보자. 그곳에서는 „아담의 역사6]“라고 한다(참조: 창 2:4; 6:9; 10:1; 11:10, 27; 37:2). 마태는 예수님의 역사를, 사도 바울이 롬 5:12 이하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를 서로 대치한 것과 같이, 둘째 아담의 역사로 본 것인가? 이러한 생각은 적어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마태는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여기에서 „역사“라는 말을 무슨 의미에서 사용했을까? 전체 28장은 예수님 생애 전체를 기술하지 않는다. 즉, 마태는 선별적으로 기술한다. 고대 교부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정확하게 사건의 순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먼저 범위를 설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기록했다. 아무튼, „복음서“는 예수님 말씀 모음집 이상의 것이다. 마태가 보도하는 것은 신빙성이 있고 영감 되었다. 그 외에도 그는 목격자이다. 예수님은 원시교회의 (경배와) 예배의 중심이 되셨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지상에서 활동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분이었다. 성경비판학에서 지상의 예수와 승귀된 예수님을 구분하는데, 이곳에서는 지상의 예수님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고 하거나 그가 누구였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탄생과 부활 사이의 예수님 역사에 세계사의 전환점이 일어났으며, 이것은 구속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마태는 그의 „예수님 역사“를 통해 우리를 바로 이러한 전환점으로 인도하려고 한다!
번역자 정리
1절은 2-17절과 관계 없이 마태복음 전체의 제목으로 본다. 그러므로 1절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책“이라고 번역한다.이 짧은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l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l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믿는 백성을 위해 약속된 복의 근원이다.
l다윗의 아들이란 메시아 칭호이다. 마태복음 시작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언한다.
l예수 그리스도 역사(탄생 – 죽으심 – 부활 – 승천)은 구속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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