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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 목회에 도움이 되는가

삼위일체

by 김경호 진실 2015. 3. 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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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의 과목 소개: 신론 (1) - 삼위일체론의 학습이 목회에 필요한가? / 김병훈(조직)

 

신학교육이 어떻게 변화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찾는 일은 먼저 신학교육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신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신학을 계속 교육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현 담론의 주제는, 단순한 신학의 전달 또는 연구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가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일과 관련한 신학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는 또한 무엇이며 교회를 위한 목회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와 또한 연결된다.

 

신학’ ‘신학교육’ ‘교회’ ‘목회등의 주제들은 모두가 신학체계 안에서의 깊은 사색을 통하여 답을 얻을 수 있는 매우 고상한 신학적 주제들이다. 즉 현재의 신학교육이 목회현실에 적응성 또는 실용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여야 할 주제들은 뜻밖에(?) 높은 수준의 신학적 통찰과 이론적 학습이 없으면 그 의미를 풀어갈 수 없는 주제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알도록 하며,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지식으로서의 신학은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여 주기 때문이다.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이라는 신학의 고유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신학교육이 목회 실천적 실효성을 갖는가에 대한 논의를 풀어가는 한 가지 방법은 현재 신학교육이 무엇을 가르치며, 그것이 어떠한 실천적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가장 사변적인 신학 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아마도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들이 신적 본질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한 한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여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신앙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 대상을 신앙한다는 것은 결코 실천적일 수가 없으므로, 기독교의 신관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의 사색은 모든 신앙의 출발이며 원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면서, 그 하나님이 다른 종교의 신관과 어떻게 다른 분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불분명한 신관으로 인한 혼동이 단지 이론적 결핍의 문제로만 그치겠는가?

 

지금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이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육신을 통해 우리의 눈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나 실제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십자가에서 직접 죽으시는 사랑을 베푸신 것이라고 가르치자,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잘 풀어낸 은혜로운 말씀이라고 하며 이를 좇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양태론이나 삼신론의 오류들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삼위일체론은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정죄되었던 오류들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신학교육을 하여야 하는 것은 목회 실천의 출발선이며 기반이 아닐 수 없다.

 

삼위일체론은 단지 신관 자체를 교훈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삼위일체론을 바르게 알면 소위 보편속죄를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보편속죄론은 그리스도의 종속론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부께서 선택하신 자를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시고 성령께서 구속사역을 적용하신다는 의미에서의 삼위일체의 사역의 이해는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고 경건의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가는 목회 사역의 실천적 원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 구별되시나 완전한 한 본질 안에서 사랑의 연합의 관계를 누리고 계심에 대한 이해는 곧 바로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실천적으로 구현하여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제시하여 준다.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성도의 교통, 직분과 은사의 적절한 수행과 그 방향 등에 대한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 신학적 의미를 깊이 전달하여 준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서 삼위일체론을 가르치면서 신학교수는 목회와 경건의 실천을 함께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은 목회의 내용뿐만 아니라 방법과 형식에도 어느 정도의 교훈을 열어준다. 앞에서 말하였듯이 삼위일체론은 교회론의 실천적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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