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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완결적 성경이해와 적용

설교학

by 김경호 진실 2015. 4. 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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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기 목사
한국동남성경연구원장
전 고신대학교 총장


먼저 그리스도 완결적 성경이해를 바로 하자. ‘그리스도 완성 또는 완결 해석’1)이란 말은 최근에 나온 말이다. ‘그리스도’(χριστος)와 ‘목표’ 혹은 ‘완성’(τελος)이란 말을 합성시켜 ‘크리스도텔릭’(Christotelic)이라 하는데 ‘그리스도완결’이라 번역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목표요 구약 및 이스라엘 백성 역사의 정점이요 완결(성)이란 말이다. 이 성경이해 방법은 제 2성전 유대주의 성경 해석방법 및 전통에 따라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고 적용하는 사도들의 해석 (apostolic hermeneutics)에 대한 연구로 이 개념을 정리되었다.2) 따라서 신약의 구약 인용을 잘 살펴야 한다.

이 새로운 용어는 성경신학, 특히 구속사적 성경해석학 및 설교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도 중심(Christocentric), 또는 그리스도론적(Christological)이란 말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점이란 성경 특히 구약 본문을 그리스도 자신(Person)과 사역(works)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과 통합시켜 해석하는 점이다.3) 그리고 차이점이란 우선 종말론적 맥락에서 성경을 보는 방향의 차이라고 하겠다. 즉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해석은 1차적으로 문법적- 역사적으로 성경을 석의한 후 구약에서 신약을 향해 읽는다. 반면에 그리스도 완결(Christotelic)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해석(Christ-driven hermeneutic)으로 신약 기록자의 상황에서 구약을 다시 2차적으로 읽어 이해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2차적으로 읽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안경을 끼고 읽는다는 말이다. 즉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자신을 포함한 만유가 변혁된 차원에서 다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주보다 더 큰 만유적인 분(Person)임을 알아야 한다.4)

신약 저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말세 또는 종말(eschaton)이 왔음을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완결 해석은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종말의 견지에서 성경을 풀이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나님의 구속 목표가 달성되고, 완결된 입장에서 구약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은 구약에서 신약 그리스도를 향하여 내다보아 신약 종말을 이해하고, 그리스도 완결 해석은 신약 종말 맥락에서,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대변혁(렌즈)을 통해 구약을 되돌아보는 점에서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는 말이다.5)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실제로 마태복음 2:15은 아기 예수님이 헤롯왕의 위협 때문에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개인적 출애굽이 구약 호세아서 11:1을 성취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하지 아니하고, “마태복음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함이니라.” 라고 기록하였다. 하나님 ‘아들을 부른 사실’을 이루기보다, ‘아들을 불러 이루고자 하신 주님의 목적과 의도’를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려고 하신다는 말이다.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피난 생활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예수님의 출애굽’과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요 장자인(출4:22)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는 그 부르심(소명: calling)의 성취 면에서 정반대라는 것을 암시한다. 어떻게 정반대인가?

호세아서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음을 나타낸다. 즉 그들은 주님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더 바알에게 제사 드리며 우상에게 분향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왔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마태복음은 새 이스라엘인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실 것이라 한다. 즉 초대교회 전통에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자리를 채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6)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호세아서의 본문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저자가 이렇게 기록한 배경은7) 하나님이 부르신 의도를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하였으나 새로 오신 예수님은 이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애굽에서 부르신 그 뜻을 배반한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새로 태어난 예수님이 하나님 뜻을 ‘이루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호세아서 11:1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한 결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해 보아도 호세아 본문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로 아들을 부르신 하나님 목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되는 (Christotelic) 입장에서 호세아서를 되돌아본 해석의 결과였다.8) 즉 옛 아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소명의) 목적을 무시하였지만, 아들인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루신다고 대조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호세아서의 예언이 마태복음에서 성취되었다는 도식적 이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성취의 여러 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감지하여야 한다.9)

또 바울이 고린도후서 6:2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엔즈(Peter Enns)는 말한다.10)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는 말씀에 인용된 이사야 49:8절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이 인용한 것은 이사야 49:8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석의한 후에야 이 구절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다고 결론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도 그리스도 완결(성) 입장에서 이사야 49:8을 새롭게 이해하고 고린도후서 6:2에 인용하였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이사야 49:8 내용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엑소도스, 눅 9:31] 고린도 교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바울의 말을 바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N. T. Wright)는 “죄 용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다른 방식이다”고 말한다.11)

즉 이사야의 예언을 문법적-역사적 석의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구원사역 목표가 완결된(Christotelic) 입장에서 바울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즉 신약에서 구약을 되돌아보니 이사야 49:8의 역사적인 포로 귀환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만유의 변혁이란 궁극적 성취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사야의 예언을 단순히 그 문맥에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도입단계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이사야 49:8을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역사적으로 한 민족을 외국 포로에서 구출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종국적이요, 단회적인 전 인류 구원 사역을 위한 “슈퍼 성취(superfulfilled)가 이룩되었다”고 본다.12)

사실 구약의 모든 주제들―소명, 성전, 땅, 토라―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그 목적 및 결말 (completion)을 달성[완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법적-역사적 석의 후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해석이 필수적이지만,13) 종말론적이며 그리스도 완결적 성경 독법(Christotelic reading)이 아니면 성경을 우리 신약성도가 이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눅 24:27, 44; 요 5:39, 46; 벧전 1:10-12), 이와 같이 신구약 성경 전체는 다양한 신학적 표현 가운데서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동일한 말씀으로14) 그리스도가 그 핵심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함께 하늘에 앉힌 자로서(엡 2:6), 그리스도의 살려주시는 영으로 날마다 변해가는 새 사람(고후 3:18)의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용어의 도입으로 구속사적 성경 해석과 그 적용(설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 완결적이란 말이 그리스도 중심적, 또는 기독론적(christological)이란 말보다 더욱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후자는 사실 ‘묻지 마, 그리스도!’ 식으로 구약의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는 억지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의 본문을 그리스도 완결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구약 이야기가 향하여 이끄는 결말임을 알고 읽는 것이다. 사실 성경 본문은 그냥 존재할 수가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약 이야기의 완료된 사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목표 및 그 완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에서 발견된다. 이 죽음과 부활, 즉 우주보다 큰 만유적 변혁 사건으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의 결말을 확정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구약을 기독교 성경으로 읽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필라델피아)에서 이와 관련하여 바울신학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후 아세아연합신대원 교수가 된 정성국 박사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Christotelic hermeneutics]은 바울이 종말론적 계시인 그리스도 사건의 의미를 깨닫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구약성경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완결 해석’은 구약전체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전제하고,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전체 이야기기의 완결된 관점에서부터 그 이야기의 이전 대목들을 거꾸로 재해석하는 읽기를 말한다. 이 해석 원칙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의 성취와 목적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옛 계시의 관점에서만 볼 때에는 그리스도 사건이 ‘예상치 못했던 성취와 완결’이라는 점을 함께 지적한다. 바울이 보이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예상치 못했던 완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모든 사건들이 그리스도라는 목적, 완결에 연결될 때에 각각의 숨겨진 의미들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고, 또 구속사라는 전체 이야기도 통일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다. 바울의 구약 사용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원칙으로서 ‘그리스도-완결적 해석’이 제공하는 토대는 구약과 맞닿아 있지만 엄격히 말해서 구약 밖에 있는 그리스도 사건이다.15)

말하자면,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Person)를 바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 분은 친히 하나님이 오신 분이고 우주보다 더 큰 만유적인 분(Person)이심을 꼭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형편은 예수님의 사역(works) 중심으로 치우쳐 신학을 전재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구약 교수의 연구와 신약 교수의 연결이 잘 안 되는 현실이 아쉽다. 구약을 하시는 분은 구약 본문을 설교하면서 주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대변혁을 바로 이해한 열매를 교인들에게 설교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신약 본문도 반드시 구약의 배경을 충분히 반영하고, 신약의 구원사적 진전도 꼭 살펴야 설교를 바로 할 수 있다.

야전교범식 성경 이해를 해서는 안 된다. 설교자는 구속사적 발전을 설교에 자주 요약하여 주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신약 본문 이해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명적(missional) 교회, 사명적 신자를 양육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변질된 공자주의(Confusianity)가 되어 이런 윤리적 강단으로는 한국교회 기독교(Christianity) 건설은 불가능하다.

다시 요약하자면, ‘그리스도 완결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구약 기사가 지향하는 ‘목표’, 또는 ‘완성(결)’(teloj)이라는 사실을 신약해석자들이 이미 알고서 구약을 읽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대 변혁 사건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절정(climax)일 뿐만 아니라 만물을 충만케 하는(πληροω, fulfil) ‘완결’(teloj), 또는 ‘완성’임을 고려하지 않는 성경 해석은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성경 해석은 그리스도 완결 해석[Christotelic interpretation]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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