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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설교자)와 설교

설교학

by 김경호 진실 2015. 5. 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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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설교자)와 설교


필자: Lucius de Graaff1) 목사 (Heerde – april 2015)

번역: 이충만 목사/해외필진(네덜란드)



매 주일 한 편의 설교


설교를 작성하고 행하는 것은 목사의 주무이다. 이는 목사를 칭하는 네덜란드 단어인 ‘predikant(프레디칸트)’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Predikant’의 문자적인 뜻이 바로 ‘설교하는 사람’이다. 설교는 가장 눈에 띄는 목사의 본질적인 봉사이다. 모든 회중들은 매 주일 설교단 위에 서있는 목사를 보고, 그가 말하는 바를 듣는다. 목사가 자신의 서재에서 얼마 동안, 그리고 어떻게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하는지에 대해 회중들은 알 길이 없다. 오직 목사의 아내와 자녀들만이 안다. 동시에 목사는 설교를 준비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업무들을 서재에서 해야 한다. 이 또한 회중들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만약 목사가 도저히 일을 하지 못할 만큼 아프다 하더라도 회중들은 알길이 없다. 오직 목사가 주일 설교단에 서지 못할 때에만 회중들은 그가 아픈지를 안다.


나의 선친도 나와 만찬가지로 개혁파 교회의 목사였다. 선친께서 1939년 목사가 되었을 때, 매 주일 두 편의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즉 당시 목사들은 오전 예배를 위해 성경구절에 대한 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주일 오후를 위해 요리문답 설교를 준비했다. 가끔 동료 목사들과 강단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1972년 목사가 되어 목회를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매주일 두 편의 설교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목사가 주일에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여 오전 예배를 자신의 회중들에게 설교한다. 대체로 오후 예배에는 강단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는 한편으로 네덜란드의 목사들에게 설교준비의 부담이 줄어 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회중들은 과거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보다 비판적이다. 이로써 목사는 설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더욱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이 다른 한편으로 설교준비에 대한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설교준비


나는 지난 40여년 동안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설교할 성경 본문을 선택하였다. 대체로 나는 설교본문을 설교를 준비하기 오래전에 미리 선택해 놓았다. 또한 단지 한번의 주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몇 주간의 설교를 위해 성경본문들을 미리 선택해 놓았다. 이렇게 성경본문을 미리 선택해 놓는 것이 유익하다. 왜냐하면 이로써 설교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학적인 책들을 읽는 것은 설교준비에 있어 큰 도움을 준다. 신학책들을 읽으면서 설교자는 설교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책들을 공부하는 것은 목사 자신의 성경공부나 회중의 성경공부를 위해서도 유용하다. 목사가 신학을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설교의 내용이 빈약해 질 수 밖에 없고 영적으로 고갈된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실수는 주석부터 읽는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단계를 생략하게 만든다. 곧 성경본문을 (가능하면 원어로 읽어야 한다) 읽고 그 본문 자체와 씨름하여 그 본문과 문맥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이다. 설교자라면 성경말씀들을 스스로 연구하여 신학적으로 자신만의 주석을 만들어야 한다. 그 후에 자신의 생각과 성경 주석들을 비교해야 한다. 주석가들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 자신이 주석가들의 논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종종 주석가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성경본문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또한 설교자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는 설교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설교를 행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는 성경말씀을 연구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회중들은 설교시에 성경 본문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위해 나는 매번 설교마다 본문과 관련된 흥미로운 정보들도 제공해 주려고 노력하였다. 예를들면 고고학적 발견이나 역사적 사료를 찾아 보는 것이다. 또한 설교 본문과 관련하여 개봉한 영화나 서적에 대한 평을 덧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신학적인 주의를 요구한다. 설교본문과 그 메세지에 적합해야 하고, 설교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목사는 가능한 한 복음의 메세지가 우리가 사는 오늘에 적합하도록 해석하고 설교에 담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목사는 반드시 정치, 사회적 이슈와 뉴스를 주의깊게 살펴서 오늘의 세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설교문에 스며있을 때 회중들은 주일에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된다.


구속사적 설교


설교를 준비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의 전체적 연관성, 곧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주의깊게 고려하는 것이다. 이를 간과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사례들을 그저 모아 놓은 책으로 읽히기 쉽다. 예를 들어 다니엘이나 스데반에 대해서 설교한다고 하자. 이들을 마치 인간적으로 훌륭한 모범으로 해석하여 설교한다면 성경의 전체적인 연관성과 통일성을 놓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이야기들이 전혀 모범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은 성경의 이야기들의 모범으로써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역사의 한 부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구원역사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역사는 창세기 3장의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로 이어진다. 이미 창세기 3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선포되어져 있다. 이 복음이 구약성경 안에서 점진적으로 선명해 진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 안에 있다.


이렇게 구약성경을 읽을 때,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된다. 하나님은 역사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향해 이끄시고 지배하신다. 이 구원역사 안에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을 위치 시켜야 한다.


설교하기


설교를 만들고 나면, 이제 설교를 해야한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를 모두 적는다. 이는 유익한 방법이다. 이렇게 설교문을 성실하게 작성함으로써 설교자는 자신의 생각을 잘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설교단에 서서 적절한 단어들을 찾기 위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설교시에 설교문을 그저 읽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교는 반드시 선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는 청중들에게 설교문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선친이 한번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한 문장으로 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면, 설교를 잘 만든 것이다”. 이는 아주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설교자는 설교의 테마와 구성을 논리적으로 잘 짜야 한다.


나는 내가 처음 설교했을 때를 기억한다. 아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설교자로서 살아가면서 이러한 긴장은 조금씩 완화되었다. 목회의 첫 몇 년 동안 나는 먼저 아내에게 설교문을 읽혔다. 아내가 설교문을 읽고 좋은 평가를 해 주면, 나는 그 설교가 회중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목사는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목사는 이 확신을 가지고 성경본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회중에게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해야 한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에 권위를 가지고 설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열쇠인 설교


주일에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와 주중에 회중들이 행하는 성경읽기나 성경공부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설교는 온 회중이 모였을 때에 선포된다. 이는 성찬도 마찬가지이다. 회중에는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설교는 성경공부와 같이 회중들 중 일부분이 모인 모임에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회중 한 가운데서 선포된다.


또한 매 설교는 회중을 믿음과 회개로 부른다. 이는 곧 설교가 하나님의 나라의 열쇠라는 뜻이다. 이 부르심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설교가 하나님의 나라의 열쇠라는 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4문답 (31주일)도 다음과 같이 분명히 가르친다.


84문: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사람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일 때마다 참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사실이 신자들 전체나 개개인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열립니다. 반대로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그들 위에 머문다는 사실이 모든 믿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회중들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들에게 선포하는 것은 목사가 지는 위대한 책임감이다. 이를 위해 회중의 기도는 필수적이다. 나는 회중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항상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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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cius de Graaff목사는 화란개혁교회(해방파)의 목사로서 41년간(1972-2013)봉사하였다. 이 기간동안 헝가리선교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은 캄펜신학교(해방파)의 교목으로 봉사중이다. 신학뿐만 아니라 이슬람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편의 책을 출판하였다.

 

 

http://reformedjr.com/xe/board05_02/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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