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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과 그 주변 신학들

조직신학

by 김경호 진실 2015. 6. 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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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과 그 주변 신학들

1. 칼빈주의는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스위스에서 태동하여 성경에 뿌리를 두고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에 의존하면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비롯한 신학저술과 주석을 기초로 하여 발전한 신학 체계와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2. 개혁신학, 혹은 ‘개혁주의’는 로만 가톨릭의 오류를 시정하려는 16세기 유럽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 사상과 삶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는데, 16세기에 유럽에서 발생한 다양한 종교개혁신학과 그 영향을 이어받아 발전한 개신교의 신학 사상을 일컫는, ‘칼빈주의’보다 포괄적인 용어다.

3. 정통신학은 ‘스콜라적 정통주의,’ ‘신앙고백적 정통신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종교개혁 이후 한두 세대 이후에 후기 종교개혁자들이 발전시킨 신학 체계를 일컫는다. 정통신학은 칼...빈주의자들과 동일한 내용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방법에 체계에 도입하여 신학의 주제를 면밀하고 조직적으로 해설하려고 했다.

4. 신정통주의는 칼 바르트와 에밀 부른너가 전파한 신학 사조로서 ‘정통주의’와 신학적 토대가 같으면서 새로운 신학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신정통주의’라고 부른다. 신정통주의자들은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면서 역사적인 정통신학에 대해서는 비평적인 자리에 있다. 누구의 신학도 절대화하지 않으며, 성경관 역시 칼빈주의자들이나 정통신학들과 아주 다르다. 바르트는 성경도 오류가 있는 인간의 책이요, 성경에서 무오를 찾으려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불복종이라고 주장하며, 단순한 책으로서의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인간의 반응으로 구별한다.

5.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유럽에서 널리 발전한 자유의의 신학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말이다. 계몽사조가 유럽을 강타한 이후 인간의 이성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여 종겨 개혁자들이 세운 절대적 진리의 위상을 흔들어 놓았다.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다소 방어적, 수동적, 부정적인데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기존 종교 개혁의 정신과 정통 신앙을 옹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포괄적인 태도를 나타낼 만큼 훌륭한 단어는 아니다. 보수신학은 방어하고 옹호하다가 말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6. 근본주의는 이제 가장 배척받는 용어가 되었지만, 처음 이 용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조항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초자연적인 복음의 변화와 전파를 지칭하던 말이며, 영국와 유럽에서는 ‘복음주의’로 알려져 있다. 독일과 영국에서 발생한 자유주의는 계몽사조에 영향을 받아 성경의 객관적 계시와 정확무오한 권위를 불신하도록 종용했다. 이에 기독교계에서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교리를 부정하는 비평가들에 맞서 전통적인 신앙을 지키고자 한 것이 근본주의 운동이었다.

7. 신근본주의는 1930년대 이후 신학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대립적인 기질을 특징적으로 드러낸 그룹이다. ‘후기근본주의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근본으로 믿어온 조항 가운데 몇 가지 교리만 집중적으로 강조하여 ‘근본주의자의 축소’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경건주의적 성향이지만 문화적 변혁주의자의 진취성을 잃어버려서 과학과 학문을 부정하게 되었으며, 칼 매킨타이어가 세운 훼이스 신학교는 결국 문을 닫았다. 따라서 근본주의자 후기 근본주의는 영향력을 거의 잃어버렸으며, 그러한 태도만 보수주의자들 속에 잔존할 뿐이다. 미국 근본주의자들 가운데는 밥존스 대학교와 신학교, 침례교회 등이 있다.

8. 경건주의, 또는 ‘경건’이라는 말은 매우 좋은 단어이지만 칼빈주의와 연관이 없는 일종의 정화운동으로서 경건주의는 독일 루터파 국가교회의 ‘정통신학’의 폐해를 목격하고 그에 대한 개혁운동을 표방한 슈페너가 ‘피아데시데리아’를 발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슈페너는 프랑케와 함께 루터파 교회의 냉랭함과 메마른 교리주의를 통탄하고 생명력을 회복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하고자 했다. 19,20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경건 생활에 대한 강조는 지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하였고, 개인주의나 주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경건주의는 탈신학운동이 되고 말았으며, 탈세속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9. 세대주의는 보수주의 신앙인 장로교회에 깊이 전파되었다.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영감을 믿고 절대 권위를 옹호하고 있지만 또 하나의 극단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으면서도 항상은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고집한다. 그래서 역사적 전천년설과는 달리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언약 사상의 연속성을 거부한다. 이들은 ‘일곱세대’라는 인위적 계산법을 근거로 율법과 은혜를 대립적으로 구분하고, 구약에서도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구원방식이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다는 점을 크게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종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매우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순전히 미래라는 점만 강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 현존하며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10.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를 개혁하고 현대지성과 함께 호흡하는 신학운동으로 갱신하겠다는 포부로 출발하였으며,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풀러 신학교의 해롤드 오켕카 학장은 신복음주의를 ‘사회적인 메시지와 함께 근본주의를 전향적으로 발전시킨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 운동은 근본주의자들이 자기 교파 정당화의 논리에 빠져서 발전하지 못할 때 지성주의와 과학적인 신앙을 젊은 층에 호소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구별하여, 영감성은 믿으나 무오성은 믿지 않는다.

11. 복음주의는 1970년대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신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처음 지녔던 희망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그후로 신복음주의의 명칭을 전환한 용어다. 로잔언약(1974)을 기점으로 전도와 선교에 관한 복음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하였으며, 관련 신학교들이 외적으로 팽창을 하고 거기에서 배출한 사람들이 세계전역에서 활동하며 학문적 성과를 거두는 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학문성을 내세우고 신자유주의자들과 토론을 하여 신학적인 순결을 흐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신복음주의 운동이 과연 근본주의자들의 신념을 학문적으로 극복하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혁신학의 정수 - 1장. 개혁신학의 윤곽 p.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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