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세계대회의 원조라고 부를 수 있는 도르트회의는 네덜란드 정부가 소집한 회의였다.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9일까지 약 7개월에 걸친 이 회의는 화란의 도르트에서 소집되었기에 도르트회의라고 부른다. 당시 이 회의는 네덜란드 지도자들을 비롯해서 스위스, 영국, 신성로마제국 및 독일 등 각국에서 온 27명의 사절단과 84명의 교회 지도자, 18명의 정부 고위층이 참석한 회의로 개신교 세계 대회였다. 사실 개신교 세계대회라는 말보다는 칼빈주의 세계대회라 함이 더 타당한 말일 것이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는 칼빈주의를 새로운 국가 신앙으로 채택한다.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과의 차별로 도입한 신앙과 교회제도가 흔들리게 된 것은 칼빈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개혁파 목회자들이 생기게 되면서 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코른헤르트였다. 당시 코른헤르트는 ‘선한 삶’이 기독교 본질이라고 주장했고 칼빈주의 예정론이나 원죄교리를 잘못된 사상으로 여겼다. 여기에 대해 홀란드 노회의 의탁을 받은 레이든 대학의 교수 알미니우스는 코른헤르트의 반칼빈주의적 견해를 조사하고서 1604년 “예정에 대한 논제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알미니우스는 수정된 예정론을 발표한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알미니우스와 그를 따르는 항론파의 다섯가지 주장을 좌시할 수 없어 세계적인 종교회의가 도르트에서 개최된 것이었다. 저들 항론파들은 성도의 견인을 부인했고 참된 신자라도 여전히 멸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8년간이나 계속되면서 네덜란드 교회와 국가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나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시민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이 일은 개신교 세계대회인 도르트회의로 종결되는데 이 회의가 무려 7개월에 걸쳐 총 154회를 거듭한 회의였다. 4박 5일의 총회가 결코 긴 것이 아니다. 100년 미래에 대한 역사의식을 갖고 자리를 지키는 책임감 있는 총대들이 되어야 한다. 당시 도르트회의는 알미니우스의 5대 항론에 대처하는 칼빈주의 5대교리를 도르트 신조로 완성하는데 그것이 1619년 4월 23일이었다. 도르트회의는 12년 동안 계속된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중 있었던 일로 국가의 독립을 위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네덜란드가 소집한 개혁파 세계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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