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장 바른 교훈에 서야 흔들리지 않는다.
1. 베드로후서는 거짓을 유포하는 거짓 교사들을 지적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려고 쓰여진 서신이다. 성도들이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고 더욱 견고하게 그들의 소망과 신앙을 붙잡게 하려고 사도 베드로는 이 서신을 썼다. 사도 베드로가 65년 로마 화재 이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기 전에 쓰여진 서신이다.
2.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가진 믿음과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에게 서신을 쓰고 있다(1). 이 믿음은 자기의 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한 믿음이다. 인사말과 서론에서 사도는 이 서신을 받는 신자들에게 신자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
3. 신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이다(3).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위해서다.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칭송하도록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러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베풀어주셨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어떻게 신자들은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일어난다(2,3,8). 사도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들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신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서신을 맺으면서도 사도는 다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했다(3:18). 신자는 또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다(4). 하나님께서는 중생을 통하여 죄인의 마음에 ‘신성한 성품’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본성)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신자는 정욕으로 썩어질 세상을 추구하지 않고 살 능력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다.
4. 사도는 신자의 삶을 건축물에 비유하여 설명한다(5~7). 믿음이 기초다. 그 위에 덕, 그 위에 지식, 그 위에 절제, 그 위에 인내, 그 위에 경건, 그 위에 형제 우애, 그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다. 사도는 이 서신을 쓰면서 수신자들의 삶 속에서 이미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기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8).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이 일에 게으른 자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앞서 말한 요소들이 없다면 그 사람은 전에 자기의 죄가 사하심을 얻은 것을 잊어버린 눈먼 사람이라 할 수 있다(9). 그러므로 모든 형제들은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이것은 확신 가운데 신자의 특권을 누리는 삶이다. 늘 의심과 믿음을 반복하는 연약한 삶에서 나아가 확신 가운데 거하는 삶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앎으로써다! 이렇게 신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소망과 확신을 누린다(11).
5. 사도는 이 서신을 통해서 새로운 진리, 새로운 지식을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도가 하려는 것은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12,13,15; 3:1~2). 노사도 베드로는 자기가 남은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이 복음의 진리를 말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는다(13). 자기가 죽은 후에도 이 복음의 진리는 교회 안에 계속해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5). 사도는 자기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고 있고,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초대교회는 이미 이 말씀을 널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 요 21:18,19)을 상기한다(14).
6. 사도가 상기시켜 주고 싶어하는 복음의 진리는 자신이나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16). 사도는 친히 변화산에서 변모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고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다(17~18). 그러나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기의 체험이 아니다. 그는 ‘더 확실한 예언’을 말하려고 한다(19). 그것은 구약 성경에 말씀한 모든 예언들이다(20). 이 말씀은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21). 19절에서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가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는 해석이 좀 어려운 부분인데, 아마 주님의 재림의 때에 모든 계시가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는 때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때까지 신자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이제 노사도가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 말씀, 곧 복음의 진리이다. 이 바른 교훈 위에 설 때, 비로소 신자는 견고히 서서 거짓 교사들의 거짓 교훈에 좌우되지 않으며 자신의 신앙을 건축할 수 있는 것이다.
7. “하나님 아버지, 보배로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불러주신 은혜를 인하여 찬송합니다. 주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일에 힘씀으로 확신 가운데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게 하옵시고, 무엇보다 주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잡아 거짓교훈에 좌우되지 않고 온전한 신앙을 건축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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