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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에게 칼빈이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한다면, 이단자를 처형한 냉혹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칼빈은 사랑으로 교회의 일치를 도모한 인물이었다”(문철영 박사)
문철영 박사(수정교회 담임)는 10일 열린 한국교회사학연구원과 한국기독교회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칼빈은 자신의 성찬론을 교회일치적 관점에서 다뤘다. 칼빈은 교회일치운동가였다”면서 칼빈의 성찬론과 교회 일치의 관계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문 박사는 칼빈이 루터와 츠빙글리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으며, 영국 국교회의 일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고, 스위스 교회와 제네바 교회의 일치를 위한 열정을 표현했으며, 교육·저작 활동을 통해 디아스포라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견고케 했다면서, “일생의 사역을 통해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칼빈은 성찬론과 관련하여 자신의 성만찬 소논문에서와 일치 신조에서 교회 일치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드러냈다”며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하나된 것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되기를 갈망했다. 칼빈은 몸소 찾아가 사람을 만나든지, 편지를 보내든지, 사람을 보내든지, 자신의 저작 속에서든지 교회일치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칼빈은 성만찬 소논문에서 “모두의 공동의 사용을 위해 거기서 신성화된 빵이 함께 섞인 여러 곡식 알갱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곡식 알갱이들이 서로 구별될 수 없게 된 것처럼, 우리 또한 용해할 수 없는 우정으로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중략)… 어떠한 이유로도 우리가 살아 있는 어떤 사람에게 대해서, 특히 교회의 일치 안에 있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증오나 원한을 품는다면, 그 같은 접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고 문 박사는 설명했다.
또 문 박사는 “칼빈의 성찬논쟁도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회복과 일치를 위한 노력이었다”며 “칼빈은 성찬론을 기술할 때에 궁극적인 목표를 교회 일치에 뒀다. 칼빈은 성찬론을 쓸 때에 로마 가톨릭과, 츠빙글리와, 츠빙글리파와, 루터와, 루터파와, 그리고 잉글랜드 교회와의 일치와 회복을 위해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교리에 있어서나 특히 성찬론에 있어서나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칼빈은 1559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츠빙글리와 반대의 논증으로 성찬의 참여는 믿음의 결과로 된 것이지 믿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칼빈은 제네바와 취리히 사이에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치를 수행하기 위해, 불링거에게 성찬에서 그의 믿음의 개념을 양보했다”며, 신학자 박경수의 저서를 참조하여 “믿음과 성령에 의해 우리가 성찬을 받아들이는 한 은혜는 역사하지 않는다고 언급함으로써, 칼빈은 츠빙글리파와 타협할 여지를 남겨뒀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문 박사는 “성찬론은 칼빈의 교회 사랑과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성찬론은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의 소산물이자 교회 일치의 적용과 실행을 위한 실천 원리이다. 그러므로 교회일치운동이 칼빈에게서 성찬론의 실천적 목표였다면, 교회 일치의 결정이 되는 청사진과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칼빈이 냉혹? 사랑으로 교회 일치 도모한 인물이었다” (한마음개혁교회) |작성자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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