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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는가?

안재경목사(남양주)

by 김경호 진실 2016. 4. 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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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는가?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틀림없는 이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하지는 않으나, 참 신자는 오래 기다리며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3)

신자가 자신의 구원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을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확신이 믿음의 본질이 속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가 굳이 구원의 확신에 목을 맬 필요가 있을까? 그 확신을 얻으려고 하는 노력이 신비주의 등 불건전한 신앙생활을 유발하지 않을까? 특별한 체험들에 집착하는 것 말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특별한 체험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특별한 체험에 대한 간증을 조심해야 한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라 간증조차도 조작하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많은 설교가 한편으로는 신자들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가정한 도덕적인 훈화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받았는지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협박이 되어가고 있다. 한 설교에서 이런 이율배반적인 언급과 요구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우리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감정은 너무나 자주 변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는 천국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다음 순간에는 지옥의 가장 깊은 불구덩이에 내려앉는 우리가 아닌가? 많은 신자들이 평상시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가도 구원파와 같은 이단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구원의 확신이 심하게 요동친다. 많은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고 증거를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대개 신자들은 그 증거를 자기 자신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특별한 경험과 기적을 추구하는 치유집회와 은사집회를 찾는 것도 결국에는 확신의 근거를 자신 안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확신, 아니 확실성의 첫 번째 기초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시작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바로 사람을 아는 지식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자비한 분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지만 동시에 자비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자기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 노릇 해주시는 것이 공의요 또한 자비이다.


구원의 근거를 하나님의 선택에 두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도 하나님의 영원작정의 관점에서 유아세례를 보려고 했다. 유아세례의 근거는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으니 그 아이는 중생한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알 수 없다. 믿는 이들은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신자를 택자와 불택자로 나누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을 탐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기뻐하는 것에 있다. 굳이 선택과 예정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확실성의 두 번째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약속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성자께서 인간이 되신 것, 즉 성육신의 신비를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참 사람이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를 짊어져 주셔야 하기에 짐승이 아닌 참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이셔야 한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예수님을 훌륭한 선생, 위대한 인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공로를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다. 성육신은 우리와 함께 언약에 들어가시기 위함이었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던 우리를 그분과 가깝게 결합시키기 위함이었다.


신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워 자신의 불의함이 드러나야 한다. 이때 우리는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황하여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자신감을 버리고 마지막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해야 한다. 그 결과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에서 유일한 안식처를 발견하게 된다. 종교개혁은 구원의 확신을 너무나 쉽게 제공한 것이 아니다. 개혁자들은 의로움과 거룩함을 위하여서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신칭의, 즉 믿음을 통한 의로움이 주장되는 곳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는 중생시키시는 성결의 영, 즉 성령께서도 함께 계신다. 인간의 공로를 주장하는 곳에는 그리스도도 성령도 계시지 않는다.


성령의 적용


확실성의 세 번째 기반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 놓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수줍은 모습을 하고 계신다고 지적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수행하셨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근거해서만 일하신다. 그래서 성령님을 적용의 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즉 그리스도의 은덕을 하나도 남김없이 주의 백성들에게 적용시켜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은덕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신다는 뜻이다. 성령의 은사들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덕에 근거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밖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고, 그 결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을 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개인적인 체험, 특히 성령께서 주시는 몇몇 은사로 축소시켜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이끄신다. 온 우주의 변혁을 위해 일하신다. 그렇다고 성령님을 우주적인 영이라고 부르면서 강력한 에너지로 치부해서도 안된다. 성령께서는 자유롭게 일하시지만 은혜의 방편을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베풀어지는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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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 지금은 믿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교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개신교인들은 다르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은 성도의 견인교리를 믿기에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한다. 자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 틀렸다, 지옥 가기는 다 틀렸다는 구호도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을 전심으로 소망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인을 확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문제에 대해 균형잡힌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의 근거를 우리 밖에서’(extra nos)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서 찾을 것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해야 한다. 구원의 확실성은 약속의 확실성이요, 약속의 확실성은 다름 아닌 우리 밖에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구원의 확신은 다름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구원의 확실성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서성령께서 적용하시는 역사를 통해 우리 밖에서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를 위하시는성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확신과 확실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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