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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 찬송의 위치

안재경목사(남양주)

by 김경호 진실 2016. 6.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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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 찬송의 위치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예배는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의 만남이다. 개혁주의 예배는 철저하게 언약적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배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고 믿는다. 우리의 간절한 열망이 예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심으로 시작된다. 예배는 우리의 드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심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를 고민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하겠다.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은 주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만이 유일한 도움이시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시작된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주고받음으로 진행된다. 예배 중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에 찬송도 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은혜에 대한 대표적인 반응 중 하나이다.

공적고백에 합당한 찬송이어야


찬송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가사일 것이다. 왜 가사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가사에 고백이 담겨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은 신앙고백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예배찬송은 개인적인 감정을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개인적인 간증을 풀어놓은 가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그런 찬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은 개인적으로 부르는 찬송과 구분해야 한다. 개인적인 간증을 풀어놓은 가사는 예배 때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에서의 찬송은 질서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는 말씀은 찬송에도 적용해야 한다. 예배찬송은 개인적인 찬송과는 달리 회중 전체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찬송은 모든 회중이 함께 아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신자는 기쁘게 찬송하는데, 다른 신자는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런 찬송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라는 찬송가사가 있는데 이런 가사는 특정한 신자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이 찬송을 모든 회중이 함께 부를 수 있을까? 어릴 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찬송을 부르면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찬송은 개인적인 기대와 희망을 담은 찬송보다는 교회의 고백에 충실한 가사로 만든 찬송이 적합하다. 예배찬송은 모든 신자의 공통적인 고백이 되어야 한다.

새찬송가에 한국 신자들이 작사 작곡한 찬송이 여럿 들어갔는데 이런 것은 공적인 고백과 거리가 있는 것일까? 굳이 그렇게 볼 이유가 없다. 외국에서 작사 작곡된 찬송만이 예배찬송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반적으로는 세월의 검증을 거친 찬송이 예배찬송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배찬송은 시대마다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교단 총회에서 예배찬송을 논의하여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개교회단위로 예배찬송을 결정하도록 놓아두는 것 보다는 말이다. 그래야 찬송에서도 공교회성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회중이 다 함께 부를 수 있어야

찬송가 가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곡조도 무시할 수 없다. 온 회중이 함께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곡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높은 음이 많은 곡 같은 경우에는 회중찬송으로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찬송의 경우 세대 차이가 가장 크게 부각되기 쉽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빠른 곡조의 곡이 있고, 연세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곡조도 있다. 세대별로 선호하는 곡이 다를 수 있기에 지혜롭게 곡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이 주일오전예배에 참석하기 원치 않는 것도 찬송의 문제가 클 것이다. 청년예배를 따로 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곡의 찬송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찬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집회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집회가 시작되면 찬양팀이 나와서 20-30분 동안 찬송을 계속 한다. 회중의 마음을 열기 위한 목적이다. 찬송을 통해 회중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찬송을 통해 마음 문을 열고 나서 설교자가 나와서 설교하면 어떤 설교라도 은혜 받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찬송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이 아닐까? 찬송을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하려는 것이 회중 전체가 한 마음으로 찬송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공예배에서 복음성가가 문제가 된다. 공예배에서는 절대로 복음성가를 불러서는 안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새찬송가는 대부분 복음성가이다. 미국 대각성운동기간에 만들어진 찬송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부르다보니 예배찬송으로 굳어져서 그렇지 사실 그런 곡들은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복음송(CCM)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최근에 작사 작곡된 복음송도 예배 시에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총회에서 예배와 찬송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겠지만 우리 장로교(고신)는 예배를 당회의 소관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회가 책임을 지고 예배찬송을 개발(?)해야 한다.

예배찬송으로 시편찬송이 적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예배찬송은 시편찬송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예배 시에 고백에 적합한 가사와 곡조의 복음송을 도입하여 부를 수 있다. 성경구절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고백으로 찬송 가사를 만들 수 있고, 새로운 곡조에 그 가사를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교부 중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찬송가를 많이 만들어 교인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비교를 할 수 있는데 개혁자 루터 같은 경우에는 찬송가를 많이 지었고, 칼빈 같은 경우에는 시편찬송을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이든지 온 회중이 함께 기꺼이 찬양하도록 잘 연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예배흐름에 적절한 찬송을 골라야

예배 중에 찬송을 몇 번 하는 것이 좋을까? 성경에는 예배 중에 찬송을 몇 번 해야 하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교회가 지혜롭게 찬송의 횟수를 정하면 될 것이다. 최소한 4번 정도의 찬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예배 시작 부분에 있는 찬송이다. 예배부름, 기원, 다음에 찬송이 온다. 이 찬송은 새찬송가 앞 부분에 나와 있는 소위 말하는 경배와 찬송으로 하는 것이 좋다. 예배 때의 찬송 전체가 그래야 하겠지만 더더욱 이 첫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선정하는 것이 좋다. 인간의 경험과 간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을 선정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두 번째 찬송은 소위 말하는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파트에 오는 찬송이다. 십계명낭독, 공적인 죄 고백, 사죄선언 이후에 오는 찬송이다. 이 찬송은 감사 찬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용서받음에 대한 감사의 찬송이다. 우리 찬송가에는 미국 대각성 운동 때에 작곡 작사된 찬송가가 많은데, 회개에 대한 찬송이며 용서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찬송이 많이 있다. 이런 곡들 중에 신중하게 골라서 찬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송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 번째 찬송은 말씀 선포의 부분에서 오는 찬송이다. 이 찬송은 성경봉독, 설교 이후에 받은 말씀에 대한 응답과 감사로서의 찬송이다. 그래서 이 찬송을 응답찬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찬송은 설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말씀과 설교와 연관된 찬송을 골라야 한다. 찬송이 모든 말씀을 다 포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찬송을 선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이다. 우리 찬송가에 제목 아래에 관련 성경구절이 적혀 있지만 이런 구절 이외의 말씀을 설교할 때는 찬송을 선정하기가 힘들다. 이런 경우에는 그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면서 작사 작곡한 복음성가를 찾아보아야 할 수도 있고, 시편찬송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좋다. 여건이 된다면 그 말씀을 가지고 작사 작곡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찬송은 예배의 끝부분에 오는 찬송이다. 예배의 끝부분에 마침기도(목회기도일 수도 있다), 마침 찬송, 마침말씀(강복선언)이 있다. 이 마지막 찬송은 파송찬송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공예배가 마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당에 머물러 계시고 신자만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신다. 주의 백성은 주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간다. 세상에서의 예배가 시작된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 마지막 찬송은 행진곡이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필자가 봉사하는 교회에서는 시편 1편과 2편을 번갈아가면서 찬송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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