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2, 하나님과 만남, 예배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대부분의 종교들은 각 종교들만의 예배가 있다.
이들의 예배의 목적은 신과의 만남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신을 만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쉽게 신과의 접촉을 하기 위해서는 신과 사람사이를 중개하는
중매자가 필요한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무당 혹은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사람의 요구사항을 신에게 말하고,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종교가 권력과 손잡을 수 있는 여지가 여기에 있다.
신의 뜻을 빙자한 권력의 남용은 오늘 날에도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이방 종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를 바울은‘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디모데후서3:5)’라고 말했다.
즉,
미신적인 종교로 거짓 경건이 나타날 것이고,
그런 거짓 경건에 미혹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도 예배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의 이방 종교가 사람이 자신들의 신을 찾아 만나기 원하기 위한 예배라면, 우리 예배는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를 스스로 찾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시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에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주권을 드러내며, 하나님이 백성들의 찬양을 받는다. 그래서 억지로 자의적으로 드려지는 다른 이방 종교의 예배와는 달리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기쁨이 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심으로 드려지는 예배이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드러나게 된다.
2. 거룩함은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나는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스스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시15편에서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시15:2-5)’라고 예배에 합당한 자의 삶, 즉 하나님께 나아기 위한 목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1-2)’이라고 예배를 위한, 즉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조건을 이야기한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다른 종교에서처럼‘예배를 위한 특별한 준비’를 거치는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 그 자체’라는 말이고, 결국’시15편의 목록은 예배에 참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그 자체가 된다. 거룩함을 삶으로 드러난다.
3. 바울은 예배의 요소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하는 것과 함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지 분별하(로마서12:2)’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시15편의 목록보다 더 포괄적이고, 더욱 확실한 예배의 원리이다. 즉, 거룩은‘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베소서2:2)’인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에베소서2:2)’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에베소서2:10)’은 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그런 삶을 통해 우리는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기쁨이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기쁨 그 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예배의 기쁨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예배드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얻어지는 기쁨이다. 그래서 에스라의 부흥회에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느헤미야는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8:10)’라고 말했던 것이다.
4.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1절의‘그러므로’라는 말의 범위이다. 로마서1:17-11:36까지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의 도리를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그러므로’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도리를 요약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로마서 11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한 바울이 ‘그러므로’를 말함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함을 말한ㄴ 것은 당연히 구원을 깨달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결국 하나님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하는 삶, 즉 예배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예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인간적인 종교시스템이 필요하고, 사람들 중심의 혹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신탁’이 있어야 하는 인위적인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될 수 없다. 그런 예배 의식이 아무리 경건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경건의 모양만 갖춘 것에 불과하다. 반면에 우리의 예배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때로는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고, 때로는 종교적인 거룩함이 없다고 생각될 수 있고, 때로는 종교적인 세밀함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삶이 항상 그런 것처럼 기쁨과 감사가 나누어지고, 서로를 위한 기도가 전달되는 참된 거룩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경건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때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책망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가게 만들게 된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 즉 하나님과 우리와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기뻐하고, 예배를 기대하게 된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155&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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