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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5-11. 이야기를 위한 전제 : 낮아짐

겸손

by 김경호 진실 2017. 2. 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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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5-11. 이야기를 위한 전제 : 낮아짐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삶의 과거와는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띠 띄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를 띄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21:1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 새로운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가치에 목말라 하고, 그 가치를 위해 박해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가치를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이렇게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야기한다. 소위 그리스도의 비하라고 말하여지는 이 본문에서 바울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2:5)고 말한다. 그래야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빌립보서2:2)을 수 있기 때문이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빌립보서2:4)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 , 모든 면에서 같은 영광과 같은 권능을 가지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고 말한다(빌립보서2:6-7). 이런 예수님의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히브리서4:15)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동정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셔야 했지만, 우리 같은 죄인은 아니시고, 결국 예수의 낮아지심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도 예수님의 탄생의 과정이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우리 가운데 겸손하게 오셨는가를 본다. 바울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절정을 빌립보서에서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빌립보서2:8)셨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이런 낮아지심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우리에게 알리셨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 예수님은 이런 낮아지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이런 낮아지심을 바탕으로 항상 하나님과 이야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고난을 당하셨다.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교만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꺽인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교회를 섬겼고,‘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1:24)라고 말할 수 있었다.

 

3. 바울은 자신을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린도전서15:9)’라고 평가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5:8)라고 말했다. 이런 낮아짐을 바탕으로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로마서1:14)라고 말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 하나님과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심에 대한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에 대한 확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는 것, , 자기를 내려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스스로를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낮아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4. 영어에서 '이해한다(understand)' 말은아래서다의 합성어이고, 그래서 이해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아래 섦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게 되셨다.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와 이야기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이사야1:18)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하님의 마음을 알아 2017년 우리의 비젼을 오라!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하자!로 정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선결해야 하는 조건은 우리 역시 낮아짐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다. 겸손함으로, 즉 가난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의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것을 주장하고, 나의 방식을 고집하며,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가? 나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가치를 삶의 이유로 삼아 하나님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자.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209&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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