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8:8-13. 사랑하기 때문에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사람의 삶은 항상 제의적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그 삶이 제의적이지만, 넓은 의미로 볼 때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일지도 제의적인 삶을 산다.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신을 믿는다. 당연히 고대인들은 제의적인 삶을 살았다. 전쟁에 나가기 전제 상대방을 저주하는 행위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제의적 행위이다. 사울은 이런 제의적 질서를 자의적으로 깨뜨렸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사무엘상13:13-14)’라는 책방을 받았다. 상황의 위급함을 보고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사울 왕은 했고, 그것으로 인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쟁의 긴박한 상황이 아닐지라도 제의는 식사에서 먹지 말아야 할 것 등을 포함하여 삶의 여러 가지의 제약을 설정해 놓는다. 그 이유는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혹은 이웃들에게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절제하게 된다. 하고 싶다고 모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지 않겠다고 해서 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21:18)’라고 말씀하신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때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갈지라도 가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을 부정하는 사회일지라도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의식적이든 아니든 제의적으로 산다. 자기 목적을 위해 하지 않는 일이 있고, 하는 일이 있으니 말이다.
2.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한 계명이고,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했고,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해 제의적 삶을 산다. 예수님도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누가복음14:26-27)’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 바로 예수님만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무엇인가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의적인 삶에 혼란이 다가올 때가 있다. 이런 혼란의 모습이 고린도전서8장에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지역은 우상이 많은 지역이었고, 당연히 우상에게 배쳐진 제물을 소비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각 신을 믿는 신전에서는 매일 바쳐진 제물을 시장에 내다 팔았고, 시장에 나온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복음을 새롭게 받아들인 자들은 시장에 나온 제물을 사먹는 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이기 때문에 꺼리게 됐지만, 오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에 나온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데 아무런 신앙적인 회의가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대하여 자유로운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울은 이런 갈등의 소식을 듣고 고린도교회에 답한다. 3. 우선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한다(고린도전서 8:4). 세상 사람들은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고린도전서8:5)’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고린도전서8:6)’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을 이해하는 정확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의 습관 때문에 사람들은 우상에게 받쳐졌던 제물을 보면서 우상을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먹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린도전서8:8)’라고 말하면서, 믿음의 지유가 있는 자들을 향해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린도전서8:9)’고 권면한다. 그러면서 바울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린도전서8:13)’라고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한다. 4. 바울은 스스로를 제의적 삶에 가두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 있고, 또 자유가 있는 바울이었지만, 믿음이 자유롭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울은 ‘아무것도 아닌 우상의 제물’이지만,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구약적인 제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감당하는 제의적 삶과의 차이는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눈다는 사랑이 바탕인 것은 언제나 같다. 즉, 이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위해 스스로를 제의적 한게에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절제 같은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가? 그 삶은 사랑에 바탕을 둔 제의적 삶임을 기억하자.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377&msection=2&ssection=5
종교개혁 500주년: 삶의 개혁이 필요한 때 (0) | 2018.01.09 |
---|---|
섬김에로의 초대 (0) | 2017.12.28 |
사랑을 알아야, 사랑을 맛보아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상태로 변화한다.> 스데반황목사 (0) | 2017.04.21 |
성육신의 참뜻은 나눔과 섬김이다 (0) | 2016.12.27 |
눅 10:38-42. 종교적이지 않은 그리스도인 마리아 (0) | 2016.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