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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때문에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계14:4-13)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9. 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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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때문에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계14:4-13)
임진남 목사(김제예본교회)
   

사도 요한이 지금 보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은 지상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신앙을 지키고 승리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보면서 단지 천상 교회의 모습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상 교회의 성도들을 보여주신 것은 그들이 지상에서 어떻게 신앙을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였는지를 통해 여전히 지상에 있는 성도들도 동일한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 요한이 시온 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찬송을 부르는 144,000명의 오고가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이긴 신앙이 무엇인지 계속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양과 함께 있는 성도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먼저 그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들입니다 (4). 이것은 문자적으로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자들이 아닙니다. 문맥적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여자는 음녀를 의미합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깁니다. 세상의 왕들과 권세자들이 강요한다고 해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상에 있는 유대교는 음녀와 함께 자신들을 더럽힌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이미 음녀와 함께 더불어 더럽힌 종교집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순결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의 말씀은 결혼생활에 대한 순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아주 순결해야 합니다. 성도는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관계는 분명 순결함을 통해 서로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씀은 영적이고 신앙적인 순결을 의미합니다. 이미 계13장에서 사탄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 즉,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이 강요를 받았고, 하물며 땅에서 올라온 짐승, 다시 말해 유대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을 미혹하게 하며 여자를 통해 영적으로 신앙을 배교하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음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핍박가운데서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신들이 믿는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결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을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대와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교회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로마황제의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다 만들어 놓고 같이 섬겼습니다. 또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로마황제를 섬기는 것은 자신들의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서로 좋은 것이 좋다고 그렇게 백성들을 미혹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인정받고 권세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현대교회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강단에서 다른 복음, 즉 인본주의 사상과 기복주의 사상이 가득한 교회라고 하면 그곳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이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인격과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간악하고 패역한지를 계속 바라보게 하므로 인간 자신들 안에 소망이 없음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교회가 얼마나 목사들로 인해 타락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족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미 일부 교회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란 세속주의 사상입니다. 얼마 전 군대 사령관 부부의 갑질 논란에 대해 우리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부부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두둔하고 나선 어떤 목사는 개도 부잣집 개가 낫다고 그렇게 설교시간에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병들도 높은 사람 집에서 개들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이 일반 군대 생활하는 것 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간들입니다. 일반 성도들이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목사는 좀 정신이 박혀 바르게 지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일반 성도나 목사도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복음뿐입니다. 복음만이 죄인을 거듭나게 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게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강단에서 선포되고 가르쳐지지 않고 단지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따라 가고 있으니 말이 교회이지 타락한 유대교와 같은 것입니다. 화려한 에봇을 대제사장은 여전히 입고 제사를 드렸고,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이 대제사장으로 일했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보면 아! 저 사람은 대제사장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겉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아! 저 사람은 목사구나 그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깐 목사 자신이 내가 목사라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은 교회를 다니는 장로, 권사, 집사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불법은 다 저지르고,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입으로 믿는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행일치해야 합니다. 세상도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못하는 여자가 교회 목사를 존중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목사보다 더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남편도 자신의 아내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타락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그 기준이 바로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순결은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순결한 자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 가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디로 인도하는지 그 곳으로 가는 자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주님을 믿는 신앙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택함 받아 믿음을 선물로 받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1세기 성도들과 교회는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의 절대 소유물들로 첫 열매의 시작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첫 열매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부활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속량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고난도 함께 받는 첫 열매로 하나님의 소유물들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고난을 받는다고 하는 조상들의 가르침이 틀리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고난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정도와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분명 고난과 함께 살아갑니다. 

복음으로 사는 자는 거짓이 없습니다. 진실하기 때문에 언제나 정직합니다. 5절 말씀에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다고 하는 이 말씀은 도덕적인 내용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입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고백에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들의 믿음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삶도 살아갑니다. 흠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제물과 연관 지어 말씀하시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흠 없는 제물을 원하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희생제사로 사용하는 제물에 흠이 없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흠이 없는 제물은 결국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흠이 없는 자들로 서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흠과 티와 허물과 모든 죄를 다 덮어 주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흠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흠이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에게 있어 가장 큰 능력은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오늘날 참으로 우리는 이 거룩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고 없는 시대 속에서 살아갑니다. 거룩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 살면 거룩이 어떻게 드러나겠습니까? 제 말은 우리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살면서 구별된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그 말씀에 순종하면 거룩한 백성들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 조선에 복음이 들어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된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말하면 거짓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거짓을 말한다고 세상이 그렇게 손가락 짓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거룩한 삶을 향해 살려고 하는 열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천사가 나타나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천사가 나타나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곧 시작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십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창조주께서 심판하십니다. 자신의 피조물들을 향해 심판하십니다. 당연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심판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재앙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 때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합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보고 듣고 있는 모든 민족과 방백과 방언과 나라들에게 전할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 분명 아닙니다. 우리는 종말론에 대하여 어떻게 보면 반쪽만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 종말의 심판이 아직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심판의 말씀은 사실 당시 시대를 의미하는 말씀이었습니다 (24장 이하). 이 말씀이 확장이 되어 모든 세대에도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1:8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심판이 도래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보통 성도들이 알고 있는 모든 세상에 복음이 증거되면 그 때 종말의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1:23에서 바울은 이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대로라고 하면 이미 심판은 세상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의 단어들을 대할 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읽는 자들이 원하는 것만 말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심판을 언급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을 마치 세상 끝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쉽게 단정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그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 종말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심판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또 다른 천사가 그 뒤를 따르며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고 음행으로 인해 즉 우상숭배로 인해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의 일관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역을 인간들이 더 이상 훼방하지 못하도록 과거에 사용하셨던 모형들을 다 제거 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제 이 성전은 곧 파괴되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차례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이 큰 성 바벨론은 다름 아닌 소돔과 애굽이 되었다고 하는 계11장의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 제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배에 있기 때문에 같이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음행이 일어나고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머니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시고 함께 하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안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 큰 성이 음녀의 성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거짓을 말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이곳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왔기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오히려 세상을 진노의 심판을 받게 하는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거짓 신앙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없는 종교와 나라와 민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성을 완전히 불로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루살렘에서 구원이 일어난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카톨릭도 그렇고 이슬람도 그렇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거룩한 성이라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독교가 함께 나서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피로만 구원하시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는데 오히려 과거의 유물을 가지고 마치 진리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신앙이고 교회이겠습니까? 성탄절만 되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을 찬양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그 성이 거룩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음녀 바벨론이 되어 버린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저주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곳에서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표를 받는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짐승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을 계속합니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요일3:23)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신앙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죽음의 자리에서까지 오직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도록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는 교리를 배웠습니다. 성도가 인내하며 견디고 끝내 승리한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그것이 좌절과 실패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늘날처럼 왜곡된 복음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잘 살고, 건강하고, 부자로 성공하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과 천상의 복을 바라보고 기꺼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음녀에게 빠진 자들은 밤낮 쉬지 못하고 진노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이제 성도들은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기는 그 죽음의 자리에서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우리는 믿음을 끝까지 인내하며 지켜야 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생명을 빼앗기는 일도 당하는데 성도가 삶을 살면서 정직하고 진실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자신의 행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말과 행위에 있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과 어린양께 합당하게 경배하는 자들은 아들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아들이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는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믿음과 신앙으로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이 있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474&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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