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심판의 메시지(계16:1-21) | |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은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분명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읽고 가르치지만 그 내용과 의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신 심판의 내용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이미 1세기 시대에 예루살렘과 이방과 그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내려진 심판이었다고 하면 오히려 틀렸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이 아직 이루지지 않은 심판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의 주장으로 인해(쉐런 키에르케고르) 신앙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면 믿음으로 믿으면 된다고 하는 이런 주장이 오히려 기독교를 미신적이며 비이성적인 종교로 타락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치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만 믿으면 된다고 가르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하며 그 역사는 인간들의 지성과 이성으로 충분히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역사와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이 내용이 성경을 통해 아주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탄의 역사는 이러한 것을 사람들이 바르게 배우지 못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거짓선지자들과 거짓교사들과 거짓신학자들 그리고 거짓목사들을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얼마나 왜곡되어 가르쳐 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요한계시록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부들이 이미 요한 계시록이 아주 쉬운 성경이고 누구나 구약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다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목사가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목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먼저 요한계시록을 어려운 성경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성도들에게 바르게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들이 주는 메시지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도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이 아메겟돈은 마지막 종말에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는 곳이라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가르침입니다. 계시록이 앞으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믿어야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더 확실한 증거이며 바른 믿음이겠습니까? 아직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믿는 것과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 확장되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종말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배우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더 올바른 신앙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됩니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역사를 믿는 자들과 이미 2,000년 전에 일어난 심판의 역사와 그것을 믿는 자들과의 차이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심판을 당할 것인지를 다시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통해 이미 이 말씀이 1세기에 다 이루어진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과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단지 역사책을 읽는 이야기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통치의 역사가 계속 이루어질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보면 하나님은 일곱 대접(금잔)을 가진 천사들에게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아 부으라고 하십니다. 2절부터 보면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아 부으면서 내린 심판의 내용들이 보입니다. 먼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종기가 생기고 바다에는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모든 생물이 죽고, 강과 물 근원에 대접을 쏟자 피가 되며 심판의 대접을 해에게 쏟으니 권세를 받은 자가 사람들을 불로 태워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9절까지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 심판의 내용을 간략하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땅에 사는 사람들 즉,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독한 종기가 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종기는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던 심판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우상숭배와 배교를 하는 자들에게 저주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결과입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심판을 받는 자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다음으로 바다는 이방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다에 내려지면 바다가 피로 변합니다.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강과 물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수를 주는 의미인데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전에 심판이 내려집니다. 그곳이 죽음의 상징인 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에게 심판이 내려집니다. 태양은 권세자를 의미합니다. 이 권세자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태워죽입니다. 누구를 태워 죽이는지 역사는 이미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네 가지 심판이 내려지는 대접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한결 같이 과거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왕 바로가 하나님께 강퍅한 모습으로 대적하여 받은 심판의 내용과 아주 같습니다. 물론 9절 이하에 나오는 심판도 동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애굽에게 내렸던 심판의 내용을 왜 이스라엘과 그 주변에 동일하게 내리신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이 소돔과 애굽처럼 타락한 나라와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들은 것처럼 예루살렘성은 우상의 도시 바벨론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 모든 심판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반드시 내려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계시록의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내용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한다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는지 그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만 듣고 만다면 누가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강조되고 반복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 분을 십자가에서 죽였을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잔해하고 파멸로 이끄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보존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냥 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가 바로 십자가의 피를 흘리신 순종이 아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순종이 우리를 아들과 같이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적인 이스라엘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대접의 재앙에서 바다, 즉 이방나라가 심판을 받습니다. 바다가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을 심판하신다고 하는 그 말씀을 우리는 13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로마제국을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 나라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들이 자신의 나라를 마음대로 통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황제들이 100년이 되기 전에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디베리우스(14-37년), 칼리굴라(37-41), 클라우디우스(41-54년), 네로(54-68년), 네 황제 시대-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안(69-79) 등등, 결국 로마황제들이 자신의 나라를 마음대로 통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다가 피가 되었고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생물이 다 죽었으니 누구를 대상으로 통치하겠습니까? 이제는 로마가 보호하였던 이스라엘에 대한 그 보호도 끝났습니다. 오히려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재앙이 내려지는데 그 재앙은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루살렘이 피로 변한다고 하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 내려집니다. 그 속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다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천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그 일을 의롭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각 시대마다 계속 나타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세상 종말에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것입니다. 태어나지도 못한, 어미의 뱃속에 있는 자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도 의로운 것입니다. 누가 심판하는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타락한 죄인은 끝까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외칠 것입니다. 네 번째 천사가 재앙을 내릴 때 이방의 권세자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에 타 죽임을 당하자 그들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비방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겼던 백성들도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비방합니다. 이러한 비방은 모든 죄인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자신의 제자들에게 여러 번 이스라엘의 심판을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의 열심당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으로 로마제국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칼과 창으로 저항하였습니다. 그 당시 거짓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이 너희를 지켜 줄 것이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마치 이사야와 예레미야 시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한 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반드시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백성들을 피신시켰습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성을 떠난 후에 로마 군인들이 성을 파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로마군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여 그 피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굶어 죽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잡아먹었다고 기록합니다. 시체더미 위에 시체들이 싸여 산을 이루고 호수와 강에 썩은 시체들이 가득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들이 겪은 심판의 고통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19:43-44)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대접이 이방인들에게 쏟아집니다.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는 내용입니다. 결국 로마황제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이 섬겼던 신전에 불이 나서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과 이방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롬2:9). 하나님의 심판이 사도 바울에게도 전해졌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먼저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의 백성들이 있는 교회 가운데 또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믿음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오늘날에도 교회에 먼저 임합니다. 교회가 배도하고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긴다면 그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한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아들의 피로 부르신 새 언약 백성들에게 더 큰 신앙의 요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이 계명이 얼마나 큰 명령인지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여섯 번째 내려집니다.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아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국경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에 내려집니다. 예루살렘이 심판 당한다고 하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도망갔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룻의 처를 생각하라”(눅17:32)고 하신 그 말씀처럼 소돔이 심판을 당할 때 뒤를 쳐다보지 말고 도망하는 자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루살렘이 심판을 당하기 전에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무교절을 지킨다고 하는 것 때문에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고 요세푸스는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때 거짓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외쳤고 오히려 싸워 이기자고 하였습니다. 이 전쟁이 바로 아마겟돈 전쟁으로 상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전쟁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늘에서 마지막 7번째 심판을 내리십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나며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나며 한 달란트가 되는 우박이 떨어져 그 성이 파괴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그 나라가 파괴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증언 가운데 아주 신기한 증언이 있습니다. 유대전쟁사에 보면 로마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포위하고 싸울 때 먼 거리에서 아주 큰 돌을 날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돌들의 무게가 일 달란트정도 였으며 이것을 본 유대인들이 하늘에서 마치 흰돌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고 서로 말했다고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하는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심판을 당하고 멸망을 당한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녀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거짓지도자들의 거짓가르침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냥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에도 이러한 거짓 복음과 거짓 가르침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피를 부인하는 자들로 여길 것입니다. 그들 또한 반드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도 요한을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말씀하시여 주시는 것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나라와 권세를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그 모든 통치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을 들어 하늘 보좌 우편에서 왕으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507&msection=2&ssectio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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