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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도다! (계15:1-8)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10. 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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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도다! (계15:1-8)
 
   

먼저 말씀의 제목을 보시면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였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통해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은 변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스스로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를 심판하시고 그들의 모든 자녀들을 다 죽이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한 민족, 제사장 나라, 소유된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가운데 내려지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보통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과 인간이 동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단지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살려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여 주시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이 하는 대로 그냥 두고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였는지 따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가운데 오시기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말씀을 전할 때 언제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봐주고 사랑하였는지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조금도 긍휼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아들의 피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에게 단지 불의 심판을 통해 다 멸망시키는 것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루마리가 인봉된 것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고 하였고, 일곱 나팔을 통해 반드시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반역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잔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이제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심판을 당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반드시 하시겠다고 하는 의지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부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아끼지 아니하신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들만 사랑하시고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마치 현대교회가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은 자신들을 사랑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는 그 어리석음이 현대교회와 성도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거짓 위로를 주는 신앙적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죄를 지은 목사들이 참된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인정해주고 그래도 여전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 때문에 두렵겠습니까?

 

적어도 강단에서 성경을 읽고 설교한다고 하는 그 사역이 자신을 보호하여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교사는 자신의 것을 가지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명령한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할 따름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세속화 되었는지? 그 이유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인간들이 스스로 고안해 낸 신앙을 가지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갈지라도 오직 진리를 가르쳐서 온전한 성도들로 세워야 하는데 아주 급하게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는 것에서 문제가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인간의 생각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이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불태워 버리시겠다고 하는데 신학자들과 일부 목사들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역사를 보면 이미 예루살렘은 불타고 성전은 무너졌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성도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전주곡 하나를 들려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많은 노래들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노래들은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새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들입니다. 그런데 계15장에는 모세의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노래가 왜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까? 모세는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모세가 지은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이 천상에서 모세의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일관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홍해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군대와 죽음 앞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지금 사도 요한이 모세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믿음의 성도들이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홍해바다를 지나서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의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기는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다로 비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유리바다는 불이 섞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유리바다에 대한 설명이 이미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푸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유리 바다는 구약성전 안에 있는 물두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성막 안에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짐승을 잡고 피를 씻어 내는데 사용하는 큰물을 담아 놓은 것입니다. 그 크기는 대략 4m50cm이며, 높이는 225cm인 물을 모아둔 물두멍입니다. 모세가 하늘에서 본 것을 모형으로 만든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이것을 놋 바다라고 부르고 있으며 계4장에서 유리바다라고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청옥을 편 듯한 푸른 바다인 물두멍이 이제는 불이 섞여 붉게 변한 유리바다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이 섞인 것입니까? 그 이유는 계14장 마지막에 이스라엘 온 땅에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마치 그들의 피가 큰 바다를 이룬 것처럼 그렇게 붉게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이긴 자들은 이 붉은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노래가 바로 모세의 노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의 손에서 구원을 받아 홍해를 지나온 구원의 은혜를 노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는 죽임을 당하나 그들은 이미 추수되어 알곡으로 모아졌고 승리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 구원을 받은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신약의 백성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것을 기뻐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노래가 바로 모세의 노래이며, 어린양의 노래인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 당시 교회가 당한 환난은 그야말로 참혹하여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바로의 군대가 바다에서 죽임을 당한 것처럼 이제는 새 언약 백성들을 위해 옛 언약 백성들이 심판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불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12:6). 그 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이 불에 타는 심판을 당한 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이제 이방처럼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황폐하여 다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불타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있는 자들이 오히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그 내용이 아주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그 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자세하게 보면 그것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일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를 다 수장시킨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들은 죽임을 면치 못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지금 죽임을 당한 자들은 애굽시대 때 애굽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같은 유대인으로 한 쪽은 죽임을 당하고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동족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된 인간의 본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세에 집안 식구끼리 원수가 됩니다. 남편이 데려감을 당하면 아내는 버림을 당합니다. 아내가 데려감을 당하면 남편이 버림을 당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원수가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혈족이었고 친족이었으며, 이웃이었던 유대민족 사회에서 한쪽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한쪽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불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족 가운데 누구를 구원하시고 누구를 구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불의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자신들을 구원하시 하나님께서 이제 와서 자신들을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의롭습니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일은 창조 때부터 모든 것이 보시기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옛 이스라엘백성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는 일입니다.

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지 휘필드는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시다가 자신을 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분이시며 그렇게 하신다면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토기장이가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 어떤 불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아주 신실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는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먼저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들이 구약의 이스라엘뿐이겠습니까? 역사적으로도 교회가 부흥하고 왕성해지면서 교회가 타락의 길을 갔던 그 중세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로마교회를 심판하시고 그 곳에서 거룩한 자신의 백성들을 다시 불러내시는 것을 보면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진리가 가르쳐지지 않는 교회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새 언약 백성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과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피로 언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더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면 우리라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12:25) 경고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착각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십자가를 붙이고 사람들을 모은다고 해서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관심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있으면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방민족이 심판을 당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패턴은 구약에서도 똑같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은 주변 나라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이방세력들을 또한 심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자신이 그 만큼 사랑했던 백성들에게 먼저 임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이루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말 의로운 일입니다. 이 일로 인해 주변 이방나라들이 떨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심이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일이 바로 의로우신 일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만약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면 심판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롭기 때문에 심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는 그 일을 성도들이 찬양하는 것을 보고 난 후에 하늘에 증거장막의성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신천지 이만희가 자신이 세운 교회 이름을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는 것을 본따서 만들었는데 그 의미도 잘 알지 못하고 이단을 따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단들은 성경에서 좋은 말씀들을 다 자신들에게 적용합니다. 하나님의 왕국, 여호와의 증인,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등등 이러한 것은 모두다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단들이 사용하니깐 정통교회가 이 말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증거장막성전이라고 요한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교회를 증거장막의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친숙한 표현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아주 극명하게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증거궤와 장막 그리고 성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증거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 또는 언약궤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증거궤가 지성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장막, 또는 성막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이 증거궤가 계속 보존되어 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세운 교회가 1세기 초대교회 당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증거로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 아들의 피가 뿌려져 있었고, 아들이 새 언약으로 주신 계명이 있었으며, 영원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지금 교회를 보고 증거장막의성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배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증거장막의성전으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야 하고, 왜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증거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에 새겨진 증거판이 아니라 성도들 각자 마음에 성령께서 새겨준 그 증거판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성도들 마음에 쓴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도들 마음에 기록된 증거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계속해서 배도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증거장막의성전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일을 의롭다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심판하실 때도 우리는 의로우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냥 아무 이유 없이 심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언약을 멸시하고 세상과 똑 같이 살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들의 피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심판이 더 무서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들의 피로 세운 교회를 통해 계속 증거로 삼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믿지 않고, 아들의 피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심판의 증거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저 좋고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심판을 함께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인간의 구원과 심판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그저 좋은 소식만이 아닙니다. 이 복된 소식,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새 언약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교회가 바르게 선포하지 않고 있다면 그곳은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임에 불과할 것입니다. 부디 지상의 모든 교회가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먼저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할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이 있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495&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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