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톤은 야고보서 2:12의 ‘자유의 율법’을 주해하면서 ‘영적자유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만 그의 본성의 모든 능력이 온전하고 자유롭게 표현되며 행복의 모든 능력이 가장 온전히 만족함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구절을 주석한 분들 가운데서 중생의 결과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전체적 세계관을 잘 의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물을 실재하는 대로 보며 그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과 연합하였으므로 그는 그가 해야만 하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승구 박사(합신신대원, 조직신학)의 말이다. ‘야고보서 주해와 설교’라는 주제로 2월 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신반포중앙교회(담임목사 김지훈) 대예배실에서 개최된 제41회 성경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에서 세 번째 발제에서 이승구 박사는 ‘공동체에서의 들음과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네 번째 발제에 나선 최승락 박사(고신신대원, 신약신학)는 ‘바른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인의 중요 자질과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첫 발제와 두 번째 발제는 송영목 박사(고신대 신약신학)와 김경식 박사(웨신신대원, 신약신학)가 맡았다. ( 관련 기사 보기 )
이승구 박사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1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 발제에서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그렇게 들은 ‘말씀을 믿는 것’과 ‘말씀을 행함’이 과연 어떻게 연관 지어 나타내고 있는지를 교회의 정체성과 관련해 논지를 펼쳤다. 이 박사는 “교회 공동체인 우리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구원할 (마음에) 심긴 말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 전체의 빛에서 ‘듣는다’는 것은 그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여 듣고, 바르게 해석한다는 뜻이 함의되어져 있다.”라며,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듣는 해석 공동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공동체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야고보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거나 믿지 않는 것은 ‘진리’를 떠난 것이라고 여겨졌다(약 5:19, 20). 문제는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는데 있다. 실천은 말씀의 열매”라며,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4:6), 누가복음의 세리의 회개의 태도(눅 18:13)와 서로 원망하지 않는 것(5:9)을 함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5:9는 우리 주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주의 백성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을 길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맥락에서 주어지고 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은 경고이면서 동시에 성도들에게 위로(consolation)로 나타나고 있다(Tasker, 121). 이는 심판자이신 주님 자신이 우리의 의의 근거라는 생각에서라야 진정한 위로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더불어 “행위와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서에서도 그 행위와 실천은 진정한 기독교의 복음에 대한 반응일 뿐 공로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주님을 열심히 믿는 행위는 믿음의 진정성을 표현할 뿐”이라며, “진정한 믿음의 구원은 행동의 결과를 낳는다. 말로만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진짜로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갈무리 했다.
최승락 박사는 ‘야고보서 3장의 화행론 관점에서의 접근’이라는 주제로 “말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과 덕목 중 하나다. 말을 행위로 이해하는 관점은 화행론(speech-act theory)의 가장 큰 특징이며 장점이다. 이런 중요한 접점이 있음에도 화행론의 관점에서 야고보서의 전부나 또는 일부에 접근하는 시도를 아직 본 적 없다.”고 화두를 던졌다. 최 박사는 “야고보는 3:7-8에서 혀가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불의 이미지를 사용해 말의 부정적 폐해와 위험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이는 3:13-17에서 두 지혜와 대비시켜 세상 차원의 지혜는 ‘땅위의’, ‘정욕의’, ‘귀신의’라는 단어로 압축해 정리하면서 스스로 악의 체계를 형성하는 혀와 지상적 차원의 지혜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려준다.”며, “그 결과 삶의 수레바퀴 곧 생의 전 과정을 불태우거나 공동체의 분열과 싸움을 낳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두 마음의 문제’를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말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흘러나오는 것은 발화수반적 화행(illocutuonary speech act; Thiselton, 283-99)”이라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 속에서 적합한 사람에 의해, 적합한 형식을 따라 발화되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발화는 효력이 없다. 그 말들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지시켰다. 특히 “민수기 6:24-26의 제사장들의 축복 선언문은 가장 대표적인 축복 화행(선언행위, declarative)의 예로, 제사장들에 의해, 정해진 형식 그대로, 예배적 상황 속에서 선포될 때에 그 효력을 가진다.”며, “모든 희구적(optative) 축복들의 경우 그 발화가 성취되기를 기대할 때는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하나님을 부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주시도록 유발(cause)할 수는 없다.”는 한계는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지혜와 선한 행실 및 온유(겸손)와의 결합은 가장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왜곡되고 진정성 없는 말 행위가 결합되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깨뜨리는 마귀적 결과가 일어나게 된다.”고 경계시키는 한편,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적 화행은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자들로 여김(on-look)으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고전 8:11, 롬 14:3)의 관점이 살아 있기”를 권면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말을 화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록 그가 부정적 기조로 말 행위의 왜곡과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건강하고 바른 말 행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부정할 수 없이 뚜렷하게 놓여 있다.”면서, “우리가 이 시대에 바른 신앙고백의 화행을 할 줄 알고, 이를 우리 삶이 전반 속에, 나아가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 일관되게 확장시켜 나아갈 때 교회는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며 세상을 향하여 다시 얼굴을 들고 ‘말빨’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한국성경신학회(The Korea Research Center of Reformed Biblical Theology)는 개혁신학적 성경신학(Reformed Biblical Theology)을 정립시키고, 이에 근거해서 성경적이고 성경신학적 목회를 하려는 목회자를 돕기 위해 한제호, 조무성, 김성봉, 이승구 교수 등이 1997년 8월 22일(목)에 발족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10월 29일 안양대학교에서 내한한 리차드 게핀 교수의 방한을 계기로 설립된 신학회다. 현재 회장은 박형용 박사가 맡고 있으며 구약과 신학 그리고 조직신학적 관점과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성경적 주제와 신학자들을 연구하고 발표해 <교회와 문화>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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