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보다 더 탁월하시고 우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성경기자가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생자라고 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사람이 되셔서 고난을 받고 죽으심에 이르렀는지를 히브리서 2장 후반부에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곧장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배운 것에 유념하라고 합니다. 비록 사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지만 결국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유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것을 간직하라고 하는 것과 대조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하라고 하는 말씀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들은 것을 기억하면서 그것을 쫒아 살아가는 능력이 그렇게 탁월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어른이 되어도 사회법규를 잘 지키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신들이 듣고 배운 것을 다 흘러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념하라고 하는 것과 떠내려가지 않게 하라” 고 하는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유념하라고 하는 것은 간직하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다면 그 복음을 간직하고 있으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념하라고 하는 의미는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신다고 하는 이 가르침대로 예수님께서 주신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유념하라고 하는 것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항상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떠내려가지 않게” 라고 하는 이 단어는 간직하는 것과 상반되게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통이나 곡식의 가루를 치는 체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들은 아무리 부어도 그 속에 단 한 방울의 물과 한줌의 가루도 간직하지 못합니다. 헛된 수고만 할 뿐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게 아들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사가 전해준 율법을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에스라 이후 율법이 강조되어 사람들을 율법의 속박 아래에 가두기 전까지 이 율법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듣고 순종하는 그런 존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때문에 천사가 전해준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보응, 즉 심판이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줍니다. 하지만 천사가 전해준 이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께서 전해준 복음을 버리고 간직하지 못하는, 즉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이 내릴 때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대한 모습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시대나 오늘 우리시대나 사는 모습은 달라도 사람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들은 것을 간직하고 흘러 버리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은 결국 사도들에 의해 복음을 들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견고하게 서 있지 못하고 계속 자신들에게 전해지는 다른 소리에 흔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이후에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주님을 계속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들의 눈에 무엇인가 종교적인 형태가 보인다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의지하면서 그래도 계속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할 것인데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없고, 살아있었던 사도들도 하나하나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결국 조상들이 가진 유대교 신앙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가진 형제들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 믿음이 정말 참된 구원을, 아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인지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이미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율법과 성전과 그리고 제사제도와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버릴 수도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것들입니다. 2,000년 동안 자신들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아주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면 마땅히 이것들을 간직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들,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그것을 간직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버려도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 말씀 안에 거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그리고 사도들이 유대인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도행전을 통해 수많은 제사장 무리들이 예수를 믿고 수천, 수만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났어도 표적과 기사가 계속 동반되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잠깐 있었다가 핍박의 현장에서는 자신들을 구원해주는 그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누가 계속 예수를 믿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음, 사람들에게 가장 미련하게 보이는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복음을 계속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복음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 복음 외에 다른 것들도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구원이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세상의 것들 때문에 유혹을 받습니다. 기복주의 신앙이 왜 독약과도 같은 신앙인지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말씀들이 더 많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고 세상의 복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간구하여 얻는다고 하는 이 가르침은 사실 모순덩어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성도는 자신의 삶의 성공을 위해, 복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오히려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삽니다. 섬기고 나누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처럼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현대교회의 가르침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잘살 수 없다고 한다면 누가 예수님을 그래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회는 계속 다닐 수가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부자가 된다는 신앙은 기독교의 신앙이 아닙니다. 사실 부자는 세상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아주 큰 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기독교를 세상종교처럼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게 하는 그런 미신 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를 믿고 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진리라고 하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가 전해준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심판이 내려졌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다면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버리면, 믿음을 버리면 결국 심판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아들에 대한 복음을 흘러 버렸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버리는 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복음을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극한의 고통을 받으면 자신이 가진 신앙은 결국 지푸라기처럼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여깁니다. 여기에 참된 신앙에 대한 배움과 지식이 있다면 그 어떤 고난과 고통이 와도 능히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욥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완전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하지 않았지만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능히 구원하여 주실 분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 속에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난을 수용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불평이 있었지만 결국 욥은 하나님을 물질 때문에 섬기지 않았다고 하는 그 참된 신앙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버리고 간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평안하고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갈 때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인데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능력 이상의 복을 소유하면 그 때부터 교만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교회를 나가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잘되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주신 복음을 간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한국현대정치에 관연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하나님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다고 많은 목사들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를 지지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세우는데 앞장서서 일들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고는 자신의 부를 위해 나라와 국민을 속이고 오히려 복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향해 산 것 밖에 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척하면서 마치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착각하는 그런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흘러 떠내려가게 하면서 믿음을 버린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들은 복음의 말씀을 간직하지 않고 흘러 보내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복음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믿음의 사람들을 계속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세상과 타협하면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더 이상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죄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밑으로 흘러 내 보내고 말 것입니다. 메마른 마음에 물을 주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복음을 간직하고 믿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연약한 지체이지만 그 속에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결국 새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떤 시련과 환난이 와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되게 하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 이 복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듣고 간직하는 것이 영광스럽고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안다면 이 복음을 거부하고 등한히 하는 자는 그가 받는 형벌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 이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이 같이 큰 구원”이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아주 풍부합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 구원을 반드시 주시는 것이라고 하는 진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말해 교회의 교사들이, 이 복음의 구원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진정 깨닫는다면 그들은 강단에서 사사로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아무렇게나 떠벌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바로 알고 있는 성도라고 한다면 자신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만 주어진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구원을 찾는 자들은 마치 미친개들처럼 그렇게 돌아다니는 자들이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자신들의 교주들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안산홍을 믿어야 하고 이만희가 참된 목자이고 그가 가르치는 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거짓을 쫒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이 말씀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 이 큰 구원”이란 바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복음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은 단지 율법을 전달해 준 종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율법에 대한 애착을 유대인들이 가진 이유는 바로 천사가 전해준 것이었다고 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을 친히 말씀해 주신 분이십니다. 이 위대한 복음을 천사가 전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먼저 전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얼마니 위대하고 뛰어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전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복음을 전해주셨고, 이것을 사도들이 받아서 지금 히브리서를 기록하는 자들과 성도들에게 전해주었다고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천사가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었다면 사람들은 천사가 전해준 것, 율법과 복음 중에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주신 것이므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복음이 사도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이 사도적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만이 참된 구원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누구로부터 계승하여 받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답해야 합니다. 결국 여기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도 사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 복음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그 내용이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신앙입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누가 새로운 계시를 받아 마치 그것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합니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세운 교회와 구원의 길을 무너뜨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아들을 통해서만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전해진 복음은 사도들을 통해 전해지고 다 증거 되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이 성경의 말씀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등한히 여길 수 없다는 가르침을 우리는 여기에서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가 무엇을 증거해야 하는지 그 책임이 막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부 하나님께서도 이 복음을 모든 표적과 능력과 기사들과 자신의 뜻에 따라 성령을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이제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명백하게 나타났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그리고 사도들을 부르시고 계속해서 이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워 전하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오직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전해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면 됩니다. 이 복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계속 생명을 주시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당시 성도들에게 유념하라고 하는 이 말씀처럼 우리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듣는 것을 계속 유념하고 이 복음이 우리 안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사도시대에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을 확증하셨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의 말씀으로 모든 복음의 내용을 다 확증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표적과 기사가 없다고 해도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다른 곳에서 세우지 말고 오직 이 성경의 말씀 안에서 세워 나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 <요한계시록 설교>(근간)이 있다.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708&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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