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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기(2)

찬송

by 김경호 진실 2018. 5. 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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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기(2)[1]

 

 


 

저자: 반 브뤼헤[2]

 

 

번역: 김재한[3]

 

 

 

 

 

어느 날 밤 그는 배의 키를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모든 종교적인 시도들, 경고들, 하나님의 부르심들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복음을 조롱했었는지를 깨달았다. 뉴턴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나 같은 죄인은 결코 있지도 않았고, 있었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저버렸던 유익들과 비교해보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내 죄는 용서받기에는 너무 크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았다고 생각했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심정으로 기도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복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뉴턴은 자신이 자기의 의지를 의존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복음과 영적인 자유를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그는 자신이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과 어떤 복음 설교도 들어본 적이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분투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는 여호와를 기다림에 있어서 성장하는 것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그는 기록한다. “내가 하는 말은 헛되고 하찮아졌다. 비록 내 마음이 종종 나를 칠 때가 있었지만, 나의 갑옷은 사라졌고, 나는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신성모독을 제외하고 나는 거의 이전과 비슷해졌다. 원수는 줄줄이 이어지는 유혹들을 준비했고, 나는 쉽게 그의 사냥감이 되었다. 거의 한 달 동안 그는 나를 달래어 악한 상태에서 잠자고 있도록 했고, 그러기 몇 달 전부터 나는 내가 유능하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뉴턴은 영국과 안티구아 그리고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오가며 노예 상인으로 계속 일했는데, 그것의 합법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구원받은 자

 

   심지어 이 기간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존 뉴턴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셨다. 마침내 그는 자기 마음의 악에 대해 배웠고, 성경을 읽었고, 그리고 복음 진리를 이해했다. 비록 그는 여전히 마치 자신은 결코 자신의 질문들에 대답해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종종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또 다른 영국 배의 선장에게로 데려가실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 선장은 그가 공적인 기도에 참여하고 신앙의 고백을 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점차 노예 무역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고, 하나님은 그가 항해하는 것이 금지되는 병에 걸리게 하심으로써 그리고 또 다른 직업을 그에게 제공하심으로써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

 

   이 기간 동안 뉴턴은 여전히 배우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셨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만을 얻기에, 우리는 그분이 은혜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실 것을 신뢰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그 분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한 뉴턴은 고전문학과 수학책들을 읽는 것을 중단하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갈라디아서 1장 23-24절을 읽은 후에는 뉴턴에게 설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차 커져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는 말씀을 선포하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원래 뉴턴은 목회 사역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모임들에 계속 참석했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참된 관심이 분리될 수 없음을 신뢰하면서. 마침내 1764년, 그의 나이 39살에 뉴턴은 올니(Olney)에 있는 영국 국교회에서 목회의 책무를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그는 복음 진리에 감사하고, 빛 안에서 그리고 진리의 경험들 안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많은 이들을 발견했다. 그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1773년 새해 설교를 위한 예화로 작사했다. 이 찬송은 1779년에 처음으로 인쇄되어 나왔는데, 오늘날 올니 찬송가(Olney Hymns)로 알려진 책에 실렸었다. 뉴턴이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와 함께 편집한 이 찬송가집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걷기 위하여”(O! For a closer walk with God)”, “귀하신 주의 이름은(How Sweet the Name of Jesus Sounds)”, “샘물과 같은 보혈은(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시온 성과 같은 교회(Glorious Things of Thee are Spoken)”와 같은 찬송가들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설교와 저술을 통해 뉴턴은 국교회와 비국교도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목회 사역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그 영향을 받은 이들 중에는 노예 무역을 법적으로 중단시킨 것으로 신뢰받는 영국 의회의 젊은 국회 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도 있었다. 뉴턴은 1807년 12월 21일에 죽었고,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남기고 교회 묘지에 묻혔다:

 

존 뉴턴, 심부름꾼

한때 불충하고 난봉꾼이었으며 아프리카 있는 노예들의 종이었으나

우리 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자비로 말미암아

보호받고, 회복되고, 용서받았으며

그가 오랫동안 파괴하려고 애썼던 그 신앙을 전하도록 세워졌다.

16년간 이 교구의 부목사였고

28년간 성 마리아 울노스 교회의 교구 목사였다.

 

 

 

 

 

 


[1] 헤리티지 개혁교단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발행하는 공식 교단 매거진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2018년 3-4월 호에 “The Story Behind the Hymn”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받고 게시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반 브뤼헤 목사(Rev. David VanBrugge)는 온타리오 브랜트포드에 있는 은혜 자유 개혁 교회(Grace Free Reformed Church )의 목사이다.

[3]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http://reformedjr.com/board05_02/7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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