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내에서의 이성교제
조재필 목사
(연합교회)
서울의 모 교회 대학부 담당 교역자로 부임했을 때입니다. 부서에 대한 이런 저런 인계를 받는 중에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근래 공동체 내에서 교제하다가 헤어진 커플이 무려 열 몇 쌍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공동체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헤어진 커플들 가운데 현재 교회 출석하는 지체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해당 부서는 소속 지체 중에 90퍼센트 이상이 지방에서 유학 온 지체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렵사리 교회에 정착을 했더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당시 출석 인원이 60~70명이었으니 상당히 많은 수의 청년들이 이별로 교회를 떠났던 것입니다. 다행히 다른 교회에 다시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신앙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부임 직후부터 공동체 내에서의 이성교제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만 했습니다. 부임 초기였고 유학생이 많다는 공동체의 특징을 고려하여 공동체 내에서 교제에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세웠습니다.
첫째, 공개적으로 교제하라.
두 사람이 교제를 결정하면 일정 시간 내에 반드시 공동체에 공개를 해야 합니다. 공개 교제의 목적은 공동체의 지도와 돌봄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개 교제란, 두 가지 차원인데, 공동체 전체에 알리는 차원과 담당 교역자와 소수의 리더에게만 알리는 차원입니다. 공동체 전체에 알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소수만 알고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더와 돌보는 조원이 교제할 경우입니다. 이 경우 공개 교제는 조장으로서의 리더십에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선배 조교들만 알고 있기로 했습니다. 조장은 특별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조원들을 특별하게 돌보아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규칙의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우선 교제에 대해 목회자의 지도가 즉각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청년들은 교제에 대해서 막연한 이해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공개 과정에서 목회자를 통한 교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후 지속적인 돌봄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유익은 공개 교제는 두 당사자를 보호합니다. 의외로 두 당사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일 때가 많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지체들이 교제를 가십거리로 삼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공개 교제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을 지도하고 커플을 조심스럽게 돌볼 수 있습니다.
둘째, 삼말사초에 교제하라.
가능하면 삼말사초 교제를 권장하였습니다. 대학생 선교단체들의 지침인데, 대학 3학년 말, 4학년 초 어간에 교제를 허락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교회에서 강제할 수는 없으나 권장하였습니다. 이 권장 사항은 큰 유익이 있습니다. 1, 2학년 지체들은 아무래도 자기 관리에 성숙하지 못합니다. 이성교제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저는 이를 ‘마취상태’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성교제를 하는 중에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학업, 우정, 신앙 훈련 등에 분명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본인은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저학년의 이성교제는 많은 상처를 남긴 채 끝나는 빈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므로 대학생활에 적응을 하고, 공동체에 정착하고, 일정한 신앙훈련을 마친 이후에 이성교제를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더구나 공동체 내에서의 교제는 더욱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른 시기 교제를 경험한 지체는 공동체 내에서 리더의 위상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리더로서 덕망을 갖추는데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때와 장소를 가려 교제하라.
공동체 내에서 교제하는 지체들은 주목을 받습니다. 그래서 전체 모임, 소그룹 모임 등에서 처신을 잘 해야 합니다. 성숙한 지체들은 모임 중에는 마치 서로 교제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지체들에 대한 배려이면서 모임이 주는 영적 유익을 잃어버리지 않는 길입니다. 커플로서 드러나는 모임 참석은 모임이 주는 유익(영적, 관계적)을 상당히 파괴합니다. 무엇보다 스킨십은 절대 불가합니다. 간혹 모임 중에 커플이 스킨십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지체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공개적으로 무안을 주지 말고 동성의 선배가 조용히 권면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우정을 먼저 쌓으라.
공동체 내에서 교제를 하려는 지체들에게 급격히 ‘연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좋은 ‘친구’로서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연정’과 더불어 ‘우정’을 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성적인 호감으로 시작하였지만, 의지적으로 우정을 쌓아갈 때 두 사람은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성교제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사랑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정과 함께 나타납니다. 부부의 사랑도 세월을 따라 우정이 쌓이면서 견고해집니다. 부부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벗으로 불러주십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도 우정이 자리합니다. 연정, 부부애, 공동체 사랑, 심지어 믿음도 우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정-연인 단계는 서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할 것입니다. 소위 ‘콩깍지’를 쓰지 않고 서로를 살피게 해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정을 쌓아가던 이성교제는, 혹시 연인으로서 관계가 정리되더라도 친구로서 관계는 계속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떠나지 않게 합니다. 연정은 사라졌지만 우정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이성교제는 두 사람의 영성과 경건만 아니라 삶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교제하는 지체들을 세심히 돌보아야 합니다. 강제성을 띄거나 지나친 사생활 침해를 주의하면서 목회적 돌봄을 해야 합니다. 또한 당사자들은 공동체의 돌봄과 지도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의 이성교제는 밖에서의 교제보다 복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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