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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사역자들의 모델 (2)[1]

존 칼빈

by 김경호 진실 2018. 10. 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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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사역자들의 모델 (2)[1]

 

 

 

 

 


 

 

 

 

 

 

 

 

 

 

 

 

 

저자: 롭 벤츄라[2]

번역: 김재한[3]

 

 

 

 

학생으로서 칼빈의 삶

   존 칼빈은 자신의 학업에 완전히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라틴어, 논리, 법, 그리스, 히브리어 등등) 관계없이 그는 열심과 자기 훈련의 정신을 가지고 온전히 학업에 자신을 바쳤다. 워필드 (B. B. Warfield)는 칼빈에 대해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열심있는 학생으로 관심을 기울인 과목들을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익혀갔고, 동료 학생들로부터 그는 같은 학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생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존경을 얻었다.” 칼빈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했던 테오도르 베자 (Theodore Beza)는 자신의 동료를 추억하며 이렇게 적었다. “칼빈은 후에 몽테규 (Mont Aigu) 대학으로 옮겨갔고, 거기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스페인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의 지도 아래서 가장 부지런한 학생이었던 칼빈은 문법 수업에서 동료 학생들을 월등하게 제치고 변증법 (Dialectics), 소위 말하는 인문학 (Arts) 과정으로 넘어갔다.”

   칼빈이 초기 학창 시절에 지켰던 엄격한 시간 계획표에 대해서 파커 (T. H. L. Parker)는 칼빈의 하루는 대게 다음과 같았으리라고 말한다: “아침 일과 -  정해진 경건회 - 를 위해 4시에 일어나서 미사가 드려지는 6시까지 강의를 하고, 미사 후에는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8시부터 10시까지는 토론이 이어지는 수업이 있었고 11시에는 성경이나 성인들의 전기 낭독, 그리고 기도와 학내 공지 사항이 동반되는 식사를 했다. 12시에 학생들은 오전의 일과에 대해 질문 받았다. 그러나 1시에서 2시까지는 공적인 낭독이 있는 휴식시간이었다. ... 이제 오후 기도 시간이 찾아오고, 그 기도 시간 이후에는 오후 토론 수업이 있었다. 시종을 드는 이들이 책을 낭독하는 저녁 식사 시간과 겨울에는 8시, 여름에는 9시에 시작되는 잠자는 시간 사이는 더 많은 질문이나 예배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되었다.”

   칼빈이 학생 시절 살았던 이런 열심, 엄격함, 그리고 훈련으로 채워진 삶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특징일 것이다. 전 생애를 걸쳐 칼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쉼 없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일한 사람이었다. 어떤 분야를 공부했든지 간에, 칼빈은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학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공부하는 모든 분야에서 학문적 탁월성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칼빈의 겸손한 삶

   참된 겸손이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반드시 정기적으로 열망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겸손할 때, 설교자들은 가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 (빌 2:1-8). 디도서 1장 7절에 있는 사도의 말, 목회자는 “자기 고집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몇 마디 말에서 이제 우리는 성 바울의 의미를 파악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라고 부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자기 고집대로”하지 않고, 기꺼이 배우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온유해야 하고, 조용한 영을 가져야 한다. 교만하지 말고, 다른 이의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고 행실에 있어서도 친절해야 한다.”

   칼빈의 겸손에 대해 윌리엄 와일만 (William Wileman)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칼빈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제네바에서 트로일렛 (Troillet)이라는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탐했던 이가 많은 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죽음이 그에게 임박했을 때, 그는 그 동안 자신이 함부로 대하고 잘못을 범했던 목사를 보고자 했다. 칼빈은 그 죽어가는 사람에게 지체 없이 달려왔고,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로했다. ... 그는 분노가 많고 편협하다고 비난 받았다. 그런 비난은 그것을 말하는 이의 입술에 묻어 있는 잘못된 은혜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찬시의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에 대한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의 논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천성적으로 기질이 불 같았던 루터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비난했다. 칼빈이 여기에 끼어들었다. 불링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루터가 당신에게 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대한 독설을 담은 긴 글을 출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당신께 침묵하고 있어달라고 감히 요청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이들이 그런 식으로 아무런 해명의 기회도 없이 공격받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정략적으로 어떤지는 결정하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먼저 루터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어떤 인내와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어떤 기민함과 효과적인 배움을 가지고 지금껏 자신을 적 그리스도의 왕국을 뒤집어 엎고 구원의 교리를 전파하는데 헌신하였는지를 말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비록 루터가 나를 마귀라고 부를지라도,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너무도 커서 나는 기꺼이 그를 하나님의 탁월한 종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편지는 칼빈의 겸손한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비록 이 편지의 다른 곳에서 그는 루터의 행동에 대해. 예를 들어, 그는 루터가 “그에게 천성적으로 주어진 그 맹렬함을 진리의 원수들에게 대항해서 사용하고 주의 종들에 대해서 휘두르지 말 것을” 소망한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칼빈이 여전히 루터를 하나님의 참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려고 하려고 했지, 분노나 교만으로 그에게 반응하려 하지 않았음을 본다.

   슬프게도 오늘날에는 펜을 들어 언어로 다른 이들을 쉽게 공격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칼빈은 그러지 않았다. 앞서 인용한 글들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잘못을 범한 이들을 기꺼이 용서하려고 하고 자신에 대해서 중상모략한 이에 대해서도 그를 그리스도가 선택하신 종으로 보려는 사람을 본다.

 

(존 칼빈 사역자들의 모델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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