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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차. <사마리아여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3. 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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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차. <사마리아여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




“(14) 예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가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14~20)




1. 사단의 개입




사단은 언제나 주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개입합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주님의 사마리아 여행에도 사단은 쉬지 않고 개입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주님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자 애를 씁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에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거나 의심의 씨앗을 뿌리며 복음의 본질을 흐려놓고자 합니다. 아니면 공공연하게 주님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불순종으로 대적합니다. 이런 사단의 개입 정황을 지금까지 사마리아 여행 중에도 중단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살펴봅니다.




9:51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의 때가 다가왔고 이에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시고 자신의 공생애 사역을 마감하기 위해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요단강으로 이어진 지름길을 택한 대신에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한 사마리아 전역을 다 훑고 지나는 여행이었습니다.

 



52절에 보니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한 촌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누구 때문입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람들의 대적함이지만 그 배후에는 반드시 사단의 미혹함과 대적함이 스며 있는 것입니다.




57절부터 62절에서는 세 사람의 불신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주님이 이끄는 복음대열에 합류하지 못합니다. 여기에도 사단이 개입한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 밭에 제시하는 진리와 생명의 길을 확신하지 못하도록 의심의 씨앗을 뿌립니다.




이에 주님은 70인 제자들을 전역에 파송하고 복음의 씨앗을 강력하게 뿌립니다. 그것이 10:1~24의 내용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사단은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파송하여 주님에게 교묘한 질문을 통해 복음의 행진을 가로막고자 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10:25~37에 있는 한 율법교사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주님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 즉 가난하고 병들고 상처입고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요 이웃이 되심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다음 10:38~42에서 주님은 친구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이곳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곧 생명의 말씀입니다. 모든 죄인은 주님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단과 그 수하들은 말씀을 듣는 일을 가장 싫어하고 경계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충동하기 위해 언니 마르다를 이용하여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하도록 조종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사단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닫혀버립니다. 사단에 속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사단의 영에 미혹되었기에 다른 모든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닫아버립니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그렇게 반응하도록 육체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거나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7)




성경주석가인 핸드릭슨은 지금까지진행된 주님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해석하기를, “앞선 주님의 사역들은 한 가지로 연결되어 끊을 수 없는데 사단이 개입하여 이 연결을 끊으려 한다고 하며, “오늘 본문에서 사단이 갑자기 귀신 논쟁을 들고 나오는 것은 바로 앞에서 주님이 기도를 논했기 때문이며 사단은 무엇보다 기도를 극히 혐오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 해석한 것은 과연 탁월한 해석이라 할만 합니다

 



특히 사복음서 중 마태와 마가에 비해 귀신사역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누가가 이 부분에서만 귀신추방의 사역을 소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단의 교묘한 개입과 방해전략을 알리고자 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주님의 말씀 사역과 귀신들의 활약이 언제나 병행되고 있다는 정보는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귀신의 본질과 그 행동 양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도록 인도합니다. 정확하게 알면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 이제 본문을 더 자세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2. 말 못하게 하는 귀신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하고 많은 귀신들림 받은 사람 중에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귀신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귀신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어떤 이는 아예 말을 못하도록 역사한다는 것은 우리를 정말 경악하게 합니다.




여기서 잠깐, 누가복음에 기록된 마귀와 귀신의 활약상을 정리해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1) 4장에서 마귀는 주님을 광야로 이끌어내고 3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2) 533절에는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그 속에 있는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십니다. 심지어 39절에서는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고쳐주십니다. 이것도 열병의 원인을 귀신의 역사로 본 것입니다.

3) 그리고 한참 동안 귀신이 사라졌다가 827절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거라사 지방에 무덤 사이에 거하고 있는 군대라 이름하는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에게 많은 귀신이 들릴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이들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자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들어 몰사했다는 기록입니다.

4) 91절에서 주님은 비로소 열두 제자에게 먼저 귀신을 제어할 권세와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신들린 한 외아들에게서 귀신을 추방하지 못합니다. 이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라고 질책하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그 아이를 낫게 하십니다.

5) 이에 대오각성한 탓인지 오히려 70인 제자들은 귀신들을 항복시켰다고 자랑하였습니다(10:17).

6) 그리고 오늘은 주님 앞에 벙어리 귀신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은 몸을 아프게 하거나 정신 이상자로 만들거나 하는 귀신이 아니라 단지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벙어리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입을 열면 정말 많은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의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암시받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귀신이 이 사람에게 들어 말을 못하도록 역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의 방해 공작은 교묘하고 치열합니다. 또 이런 방해는 주님과 그 제자들이 전면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은밀한 교란작전입니다.




3. 주님의 대응전략




그러나 주님은 귀신의 전략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간단하게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추방시킵니다. 다른 경우처럼 특별한 말씀이나 표적과 함께 축귀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귀신 들린 사람이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를 아마 주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증거하는 일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단과 그 추종세력들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들은 놀라워하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주님의 사역을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한 마디로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론을 조장하는 주체자를 누가는 더러는‘(some of them) 이라고 소개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들을 바리새인(9:34)이라 하고 마가복음에선 이들을 서기관들(3:22)이라 부르고 있는데 누가는 왜 이들이 누군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도 누가로 하여금 주님의 배려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특정 장소나 무리 중에 이름이나 신분을 밝히면 안 되는 사람이 포함되었다면 누가는 그것을 숨기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친구 나사로와 그가 사는 베다니 동네 이름을 숨겼듯이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만 해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을 볼 때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성경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선 두 개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1) 하나는 예수님이 지금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힙입어 축귀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먼저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이들 서기관들이 예루사렘에서 내려왔다”(3:22)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루살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 소속이 틀림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출현은 이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누려온 종교적 지위나 권리와 유익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침해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들을 낱낱이 조사하고 분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는 자신들이 생각하고 믿고 알고 있던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을 흥분시켰습니다. 2:27-28을 보세요. 여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두고 주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다”(9:2)고 하시자 서기관들은 속으로 주님에 대해 참람하다”(3)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 그래서 이들은 갈릴리에서 온 한 청년인 예수님이 행한 불가사의한 능력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의심의 여지 없이 사단이 준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이들은 사전에 하나의 결론을 가지고 지금 예수님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다른 가능성, 즉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단 한 번의 논의나 노력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다른 모든 것을 짜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을 사람들 앞에서 저 사람이 지금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공표한 것입니다.(이런 고의적인 음모들은 지금도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자신의 정적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미리 설정하고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무차별 공격을 가해 쓰러뜨리는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사악한 의도를 가진 일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시행될 때 참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이라는 이름의 위대하고 거룩한 사역입니다.)

~ 여기서 잠깐 바알세불이라는 용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비슷한 이름이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바알이 에그론에서 숭배될 때 불려진 바알세붑‘(Bellzebub, 왕하1:2, 3, 6)이 있습니다. 난간에서 떨어져 치명타를 입은 아하시아 왕이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내어 알아보았는데 왕은 바로 이러한 미신적인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선 이 이름을 바알세불(Beelzebul)이라 부릅니다. 철자가 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이 말은 주거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설명은 세불이라는 뜻이므로 일종의 말재주를 부린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엔 에그론의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뜻으로 바알세불을 똥의 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자를 사단과 동일시하고 귀신의 왕이라 칭합니다.

~ 그러므로 서기관들의 노림수와 숨은 의도는 사람들을 부추기어 하나님이 아닌 사단이 예수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었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여론몰이를 통해 자신을 합리화하고 세력을 얻으려는 시도나 술책은 모두 사단과 귀신들의 음모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시도는 부지기수였습니다. 순교자 저스틴이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 또는 바벨론의 탈무드 산헤드린 등의 기록에도 예수님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들을 사단이 행하는 마술이나 마법으로 보았다고 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모네 에스레’(‘18’이라는 뜻으로 18개의 기도문을 말함)라는 유대인들의 기도문에는 예수와 그 제자들을 저주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이 얼마나 팽배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들 앞에서 우리는 사단과 그 수하들의 음모와 적의를 잘 파악하고 살아야 합니다.

~ 이에 예수님의 변증은 매우 간단합니다. 한 마디로 이렇게 터무니 없는 말에 대해 같은 편끼리 싸우면 그 나라가 황폐해진다고 일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귀신의 왕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귀신의 왕은 자기 부하들을 쫓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보다 더 어리석고 모순된 말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변증은 이렇게 명쾌합니다. 진리의 문제는 명확하고 분명하여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오류를 수긍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2) 이에 바알세불은 논리 싸움에서 판정패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공격을 시도합니다. , 예수님에게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다른 증거를 보이라는 요구입니다. 사실 육에 속한 자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요구합니다. 믿음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여기기에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에게 또 다른 증거를 보이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자들은 언제나 표적을 구합니다(고전 1: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 이런 무리한 요구에 대해 주님의 대답은 간명합니다. 주님이 보여줄 표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세요.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대답을 정리하면 첫째, 너희들이 바라는 표적은 귀신이 추방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 표적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귀신이 추방되었다는 것은 귀신의 나라가 무너지고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사단과 그 수하들이 지배하는 곳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편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단과 귀신들의 통치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탄핵을 당하면 모든 통치권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그런데 주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세워진 것입니까? 새로운 에덴동산이라도 건설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귀신이 물러간 그 자리, 미혹되었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쫓겨난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눈에 보이는 곳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추방되고 믿음을 새롭게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나라가 여러분의 믿음 안에 세워진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영원한 믿음의 나라를 송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4. 결어




오늘 우리는 사단과 그 수하들인 귀신들이 하나님에게 속한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방해하고 대적하는가를 잘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귀신들의 방해 공작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사단과 귀신들은 계속해서 주님과 제자들의 복음 사역을 방해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지옥에 영원히 감금될 때까지 그들의 대적질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절대로 하나님의 원수 마귀의 대적과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거나 회심하거나 잘못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에 속한 자는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허용하셨습니다. 악은 악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귀를 대적하는 일은 우리의 본연의 사명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4~16)




둘째. 귀신들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귀신들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고 잘 파악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잇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




셋째, 오직 진리 안에 거하십시오. 마귀는 지리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8-9)

~ 세상은 귀신을 쫓는다며 무당을 통해 굿을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한 마디로 귀신 쇼입니다. 쇼를 좋아하는 사람은 쇼로 망합니다. 진실은 쇼를 통해 증거되지 않습니다. 쇼는 진짜가 아니라 가식이요 일시적인 쾌락일 뿐입니다. 귀신에게 홀리지 않고 귀신 놀음 따위에 미혹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맛있게 먹으시길 바랍니다. 오직 말씀만이 귀신을 이기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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