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Islam)의 규율은 상당부분에 있어서 구약성경의 율법을 많이 따랐는데, 특별히 돌로 쳐서 죽이는 것과 같은 예(example)들을 여전히 문자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도 빈번하게 IS(Islamic State)에서 샤리아(Sharia)법에 따른 투석형의 처벌이 자행되는 것이다.
이처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에 대해서는 레위기 20장이 잘 나타내고 있는데, 레 20:2절에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접신한 자,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 남의 아내를 간음하는 자,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 등을 열거하며, 그 가운데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바로 부정함과 가증함에 따른 일종의 ‘증오’(죄에 대한 증오)다.
한편, 출 31:12-17절에서는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15절)고 하여, 레위기 20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안식일 규례를 범하는 일까지도 반드시 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레위기 20장에서 나열하고 있는 반드시 죽일 죄들과 달리, 출 31:12-17절에서 언급하는 안식일 규례와 관련한 죄는 가증함이나 부정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매우 약하다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반드시 죽이되, 레위기 20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돌로 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 15:32-36절에는 실제로 안식일을 범하여 죽게 되는 일이 기록되어 있으니,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러 나간 것이 발견된 것이다. 출 16:27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곱째 날인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고 돌아왔을 뿐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보건데, 민수기 15장에 언급된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갔다가 발견된 그 사람의 죄에 대해백성들은 그리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위기 20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반드시 죽일 죄들과 달리, 안식일을 범한 일은 부정하거나 가증스럽게까지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 15:34절은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라고 했다.
하지만 출 31:12-17절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안식일에 일함으로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14절)고 하여, 안식일과 관련한 죄를 무겁고 심각한 것으로 명백히 규정하신다. 그러므로 민수기 16장에서 백성들은 안식일에 나무한 어떤 사람을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시를 받았으며, 다만 그 지시를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6장에 이미 기록하고 있듯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4절)셨으되, 이를 통해 그들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시고자 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민 15:32-36절에서 율법을 준행하지 않은 자는,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간 어떤 사람 뿐 아니라 그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한 온 회중까지 포함된다. 그들은 분명 출 31:12-17절의 안식일 규례를 기억해야 했지만, 정작 민 15:34절의 상황에서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민수기 16장에서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간 어떤 사람만이 아니라 온 회중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민 15:3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고 하시어 이를(옷단 귀의 술을) 보고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계명(율법)을 기억하여 준행”토록 하셨으니, 그것은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39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건데 민 15:32-36절의 그 사건은, 출 31:16-17절에서 언급하는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영원한 언약”이요 “영원한 표징(sign)”이었다. 그러니 민 15:37-4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표징을 옷단 귀에 달도록 하셨던 것으로서, 바로 그러한 이유로 레위기 20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증함과 부정함이 민 15:32-36절에서는 증오의 형태로서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갔다가 발견된 어떤 사람에게 돌을 던지던 회중들의 모습은 IS에서 샤리아법에 따라 실시하는 증오어린 투석형의 모습과 달리, 무거운 침묵 가운데서 이뤄졌을 것이다. 마치 요 8:7절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던 주님의 말씀에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때처럼, 민 15:32-36절 가운데서도 온 회중은 무거운 침묵 가운데 돌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회중이 돌을 들어 나무하러 나감으로 안식일을 범한 어떤 사람을 치도록 하심으로 안식일과 관련한 “영원한 표징”을 삼으셨으니, 민 15:37-40절에서 옷단 귀에 술을 달도록 하셨던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룩한 살인’이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4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나무하러 나간 어떤 사람의 죽음과 온 회중을,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서 옷단 귀에 다는 술(Tzitzit)로 삼으실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날 법한 이러한 의구심과 관련하여 민 15:41절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고 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광야의 온 회중들이 옷단 귀에 다는 술과 같이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사용되었으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르시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언약과 표징에 따라 우리가 진영 밖(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된 것이니,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행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민수기 15장의 온 회중이 안식일을 범한 자를 돌로 친 사건과 옷단 귀에 다는 술은,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어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옷단 귀에 다는 술과 온 회중이 안식일을 범한 자를 돌로 친 그 사건(그 죽임에 온 회중이 동참해야만 했던 사건)을 바라보고(기억하고) 있는가?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고 하셨던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고 거룩한 믿음으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말이다.
장대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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