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회의 관계
양명지 목사
(두레교회 부목사)
사람은 영육 간에 혼자서는 설 수 없고, 살 수 없다. 영혼과 육체에 모두 해당된다. 그래서 혼자서는 제대로 살 수도, 설 수도 없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바로 가정과 교회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수많은 것들 중에 이 두 가지 선물은 특히나 소중하고, 특별하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거저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교회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소중한 가정과 교회의 관계를 잘 이해하게 되면 주신 선물을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1. 가정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세워진 신적인 기관이다. 동시에 공동체이기에 하나님 백성의 모임이다. 하지만 그저 여러 사람이 한데 뭉쳐진 군중이나 무리는 아니다. 백성의 모임은 단위별로 구분이 가능한데 그 기본 단위가 바로 가정이다.
사실, 가정 보다는 개인이 훨씬 작은 단위이다. 그래서 교회의 규모를 이야기할 때 개인 성도수를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구분이 가능하기에 개인으로 공동체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나 오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원수로 파악하는 것이 훨씬 정확하게 교회의 규모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교회를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효력있는 부르심을 통하여 각 사람을 구원하신다. 그래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교회를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의 기본 단위를 생각할 때, 규모의 정확한 파악만이 아니라 정체성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교회의 언약적 성격이다. 회심은 개인의 차원에서 각 사람이 경험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교회를 언약 백성의 공동체로 부르신다. 구원받은 개인은 혼자 서지 않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생산한다. 다양한 언약적 관계를 맺는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부부도 두 사람 사이에 언약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정도 언약 공동체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도 아브라함 개인과만 언약하지 않으시고, 아직 나지 않은 그의 자손들 모두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스라엘은 자녀들에게 언약의 표로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구약에서부터 가정은 언약공동체로 교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모든 개혁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라도 개혁교회는 교회의 규모를 이야기할 때 가정의 수를 기본 단위로 사용하기도 한다. 정확한 인원수 보다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표현과 고백인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 가정과 교회는 서로 함께 자란다.
가정이 교회의 기본 단위인 것을 이해한다면 가정과 교회의 동반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가정이 자라면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의 성장은 가정의 성장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결혼의 목적 중 하나로 거룩한 자손들을 통한 교회의 확장을 말하고 있다(제24장 제2절). 거룩한 자손은 성경을 통해 믿음을 얻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자 가정의 자녀들을 의미한다. 믿음 안에 자라는 자녀와 이를 양육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이 교회를 자라게 한다는 말이다.
신자 가정에 주신 언약의 자손은 단순히 부모에게만 주신 선물이 아니다. 가정에 주신 부모의 자녀는 가정의 자녀인 동시에 언약의 측면에서 교회의 자녀이기도 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아세례 문답이다. 다른 세례 문답과 달리 유아세례는 마지막에 회중에게 질문한다. “여러분들은 OOO을 하나님의 말씀과 경건한 행위의 본으로써 양육하며,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따르며, 교회의 신실한 지체로서 자라갈 수 있도록 사랑과 기도로서 인도할 것을 서약합니까?” 요즘은 이 예전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으나 가정과 교회의 언약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러한 맥락 가운데 두 가지를 공유하며 함께 한다. 하나는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으로 훈계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신앙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으나 그것은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다.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기준으로 말씀을 읽히고 가르칠 책임이 부모에게 특히 가정의 직분자인 아버지에게 있다. 하지만 교회도 자녀를 함께 양육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여분의 시간을 내어 성경과 요리문답을 가르친다. 무엇보다 가정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가운데 교회와 가정은 함께 믿음 안에서 자라간다.
자녀의 잘못은 가정과 교회가 함께 훈계한다. 사적인 잘못은 사적으로 훈계하고,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공적인 잘못은 부모의 훈계만 아니라 교회의 훈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듣고 배운 말씀이 잘 순종되도록 돌아보고 격려하는 일은 가정과 교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장로의 심방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아닌 가정으로 시행한다. Family visitation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직분자를 만나 가정의 신앙이 어떠한지 함께 살피고, 잘못의 경우 함께 권면하고, 훈계한다. 권징은 단순히 벌을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잘 순종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함께 포함한다.
이렇게 가정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고, 교회가 가정을 풍요롭게 되도록 돕고 살필 때 교회는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가정을 등한시 한 채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것으로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갈 때 그 교회는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3. 가정과 교회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제언
오늘날 가정과 교회의 관계는 개혁교회가 본래 이렇게 하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거나 어느 책에 이렇게 되어 있으니 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현실과 당위가 많이 멀어졌다. 당연한 목회적 돌봄에 대해 사생활이니 왜 간섭하느냐고 반문하는 일도 있고,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것까지 교회가 해야 할 일인지 고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어쩌면 더 나아가 가정과 교회의 관계를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교회는, 특별히 직분자들은 포기하지 말고 가정을 돌아보려고 시도하면 좋겠다. 교회에 주신 직분의 권위가 상실되고 있는 시대에 가정은 직분자들을 불신하고 거절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거부하고, 거절한다고 하여도 교회는 가정들이 말씀 안에 제대로 세워지고 있는지 성심으로 살피기를 애써야 한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신뢰를 회복하고, 진심으로 가정을 섬기는 자제로 다가간다면 하나님이 그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정을 돌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경우에는 겸손한 자세로 교회에 속한 가정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와 직분에 주신 권위는 허락해주고 허락받는 관계가 아니다. 부부와 자녀의 일이 가정의 일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순종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교회의 일이 된다고 해서 강제하거나 주장할 수만은 없다. 사랑으로 가정을 돌아보고, 연약함을 돕고, 바른 방향으로 격려하는 것도 권징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을 자기의 양들을 사랑으로 섬기라고 세워주셨다.
가정은 내부의 사정과 일을 홀로 결정하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 가정의 잘못된 결정과 그 과정 가운데 고립되고 소외된 상태에서 어려움에 처하여 교회의 무관심을 탓하는 일이 빈번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직분자와 공동체가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함께 의논하고, 도움과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관계와 협력을 통해 건강한 신앙생활과 경건한 가정이 세워져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의 중요한 일 일수록 시작과 과정 가운데 교회와 함께 나누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를 신뢰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신뢰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약속에 대한 신뢰이고, 그 다음은 한 몸으로 부르신 공동체에 대한 신뢰이다. 그리할 때, 교회는 산 위의 동네로 구별된 삶을 세상에 보일 것이고, 가정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정의 위기의 시대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천국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여러 은혜와 선물 중에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지만 우선적으로 보존해야 할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가정과 교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더 잘 세워진다. 이기주의와 공동체의 해체를 염려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복이 각자가 속한 가정과 교회에 풍성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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