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앙’은 무엇으로 사회에 참여하는가?
개신교 신자들이 종교개혁에 대해 갖는 생각은, 이제 거의 이 사회 정치정당들의 슬로건과 같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매년마다 ‘종교개혁 주일’이 지정되어 있을 만큼 종교개혁의 정신을 잊지 않는 듯하지만, 정작 종교개혁의 후손으로서의 개신교의 모습은 차라리 ‘로마 가톨릭’이거나 ‘재세례파’ 혹은 ‘자유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 각 교단들, 특히 장로교단들의 실태들을 보면 이제는 종교개혁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공통적으로 혼탁한 형편이니, 오죽하면 천주교(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신자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겠는가? 종교적 그럴싸함으로 치자면, 개신교보다는 천주교가 훨씬 번듯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시대에 개신교의 종교개혁, 아니 변화의 조짐은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종교들은 타락했고, 개신교는 점점 안 그럴싸하고, 정치는 입에 올리기 싫을 정도인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니 상당한 사람들은 차라리 ‘아노미’(Anomie)를 기대하는 지경이다. 그와 유사하게 ‘개혁’(Reformation)을 ‘혁명’(revolution)으로 이해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흔히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16세기 유럽의 모습은 로마 가톨릭의 폭압을 분연히 뚫고 일어선 혁명적 광경(光景)쯤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16세기 유럽사회는 정치적‧종교적 변화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격변 가운데 있었고, 특별히 종교개혁진영 내에서도 뮌쩌(Thomas M"untzer, 1489-1525)를 주축으로 하여 농민전쟁을 일으킨 하층민들의 움직임과 영주들의 보호아래 종교개혁의 심벌이 된 루터(Martin Luder, 1483-1546),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등 사제들에 의한 중‧상층민들의 움직임이 (거의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여느 평범한 시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가운데 있었던 시대였다.
한편,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종교개혁들은 거의 사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들과 신흥귀족으로 성장한 상인들을 배경으로 이뤄진 것이고,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 종교개혁의 진영은 재세례파나 자유파 등 마이너리티(minority) 진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민중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만큼의 세력을 형성한 것 자체로 이미 마이너리티로 분류하는 것이 무색하며, 그들의 영향력이 순교를 불사할 만큼이었던 것을 보면 오히려 양동(陽動)적으로 종교개혁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종교개혁에 있어서 개신교진영에는 재세례파, 자유파, 니고데모파 등 수많은 좌경화(leftward) 성향의 개혁그룹들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혼란스런 정황을 이루고 있는 국면이었으며, 신학적으로 우위(優位)와 정당성을 확보한 그룹들에도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다양한 축과 움직임이 혼재(混在)해 있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혼란스런 국면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었던 16세기 어간 유럽의 기독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과 큰 틀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처럼 정치, 사회, 경제, 종교적으로 혼란스런 시대라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세속역사의 거짓말들에도 불구하고, 천하에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적은 단 한 번도(단 한 세대도)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의 큰 흐름은 사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던 영역이었다고 본다. 오히려 종교개혁의 개체들이었던 당시의 신자들이 착념한 것은 진리에 대한 확고한 추구(推究)와 표명(表明)이었는바, 거창한 ‘종교개혁’이라는 타이틀은 어쩌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the absolute)이신 하나님께서 진리에 착념하는 개체들인 신자들을 모아 종교개혁의 상(像)을 역사 가운데 뚜렷하게 보여주셨을 뿐이다.
그런즉 작금의 사회에 참여하는 진정한 개신교도(Protestant)들이라면, 당장의 사회적 이슈나 현상들에 대해 피켓을 들거나, 마이크를 잡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의사(意思)를 표명하는 것으로 사회에 참여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하고 확고부동한 진리를 추구하며 (삶으로) 따르는 자로서 이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개신교의 개혁정신을 계승하는 보수적 신앙인들인 장로교회의 초기 역사 가운데 도출된 프랑스 신앙고백서(1571년 라 로쉘 고백서)는 이와 관련한 중요한 신앙을 서술하는데, 그것이 바로 제5조의 “성경 안에 있는 교리는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이 책의 권위는 다만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지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성경이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사람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이 교리(성경 안에 있는 교리)에 더 첨부하거나 혹은 삭제하거나 그 책을 고치는 것은 전혀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고전, 관습, 다수, 사람의 지혜, 판단, 선포, 칙령, 포고, 회의, 환상, 혹은 이적 등 어떠한 것의 권위도 성경의 여러 책들을 반대할 수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성경에 일치되게 검토되며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따라서 고전, 관습, 다수, 사람의 지혜, 판단, 선포, 칙령, 포고, 회의, 환상, 혹은 이적 등 어떠한 것의 권위도 성경의 여러 책들을 반대할 수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성경에 일치되게 검토되며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는 문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프랑스 신앙고백서를 공표하는 프랑스 개혁 장로교회는, 세속정부와 별도로 양립하는 교회로서가 아니라 세속정부를 포함하는(1559년판 제35조는 그들도 분명 하나님의 진리가 확고해지도록 하는데 쓰이는 도구들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그렇게 공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보수적 개신교 신자들이 사회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진리의 추구’와 함께 ‘진리의 지식’이 참으로 중요하다. 개신교 신자들은 이 사회에 참된 진리(시대를 통해 변치 않는 가치이자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들로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보수적 개신교 신자들에게 바르고 참된 ‘교리(진리의 체계)’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1571년 프랑스 라 로쉘의 신앙고백 제5조는 “…그러므로 우리가 세 가지 신조들, 즉 ‘사도신조’, ‘니케아신조’ 및 ‘아다나시우스신조’를 고백하는 까닭은 이 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아주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고백으로 끝난다.
한마디로 우리가 참된(진리인) 신앙고백을 추구하고 따를 때에(살아갈 때에), 그에 수반되는 당연한 삶의 태도(신자의 삶)가 바로 사회에 참여하는 진정한 개혁의 방법이자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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